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룬 지 어느덧 7년이 되었다. 아들이 어느새 일곱 살이 되었고 막둥이 딸도 곧 돌이 다가온다.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인생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라고 여겼다. 특히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는 가족이 더 생긴다는 생각에 그 상황이 새롭고 감사하기도 하였지만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마음 한편으로 ‘내가 가정을 잘 꾸릴 수 있을까’ 하는 책임감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남편, 아빠의 역할이 처음인 순간이 있을 테지만 나는 유독 엄살을 많이 부렸다.
아내는 항상 “우리 아이한테 부드럽게 말을 건네주고 사랑 표현을 많이 해줘. 지금 이 시간은 절대 다시 오지 않아”라고 타박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 원래 아이 싫어하는 것 알지? 내 핏줄이라 이 정도면 진짜 발전한 거야!”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내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1년쯤 전이었다. 가장의 책임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누구에게도 구애받고 싶지 않아 무작정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행의 설렘도 잠시였다. 떠난 지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가족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좋은 경치를 보아도 감흥보다는 ‘내 가족과 같이 보고 싶다’는 마음만 굴뚝같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음식, 풍경 모두가 더없이 훌륭했지만 여행의 감흥은 오래가질 않았다. 버킷리스트로 원하고 원했던 곳을 직접 눈으로 보았어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던 것이다.
숙소에 돌아오면 적막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평소에 좀처럼 안 하던 영상통화를 했다. 여섯 살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 언제 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데 미안한 마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의 얼굴에도 서운함이 읽혔다. 아내도 나처럼 여행을 즐기고 싶을 텐데, 아내의 어깨에도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의 짐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짊어진 짐만 생각하며 투정만 부렸으니 나는 이기적인 남편이고 아빠였다.
그날 밤, 나는 새벽이 되도록 잠들지 못한 채 뒤척거리다가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무심하게 넘겨보았다. 우리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보다 젊었던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그 장면은 분명 나와 아내와 아들이 공유한 순간이었을 텐데도 처음 본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야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동안 가족과 나름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너무 빈약했다.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가족에게 무심코 했던 행동과 말 한마디가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고백컨대 나는 그런 적이 너무 많았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이기적이었다. 회사에서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예민해질 때가 있다. 안 좋은 감정을 충분히 털어내지 못한 상태로 귀가할 때면 아내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내 눈치를 보며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기분을 가족에게 풀었을지도 모른다. 고맙게도 아내는 내색하지 않았다. 두부는 영양가 높고 완벽한 식품이지만, 잘못 다루었다간 으깨진다. 가족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가족은 가장 완벽하고 가까운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아빠가 처음이라서, 남편이 처음이라서 항상 서툴고 어색하다. 유독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테니 변명거리가 될 수 없음을 안다. 아내 역시 모든 것이 처음이었을 테니 어찌 힘이 들지 않을까. 책으로, 미디어로 배운 나의 감정 표현 방식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시간은 단 1초라도 돈으로 살수 없다”는 어느 영화의 한 대사가 유독 내 마음을 흔든다. 시간이 참 무심하게 흘렀다. 어느새 일곱 살이 되어버린 아들과 적잖이 마음고생을 한 아내를 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내리면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환하고 따뜻하게 불 켜진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는 항상 “우리 아이한테 부드럽게 말을 건네주고 사랑 표현을 많이 해줘. 지금 이 시간은 절대 다시 오지 않아”라고 타박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 원래 아이 싫어하는 것 알지? 내 핏줄이라 이 정도면 진짜 발전한 거야!”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내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1년쯤 전이었다. 가장의 책임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누구에게도 구애받고 싶지 않아 무작정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행의 설렘도 잠시였다. 떠난 지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가족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좋은 경치를 보아도 감흥보다는 ‘내 가족과 같이 보고 싶다’는 마음만 굴뚝같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음식, 풍경 모두가 더없이 훌륭했지만 여행의 감흥은 오래가질 않았다. 버킷리스트로 원하고 원했던 곳을 직접 눈으로 보았어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던 것이다.
숙소에 돌아오면 적막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평소에 좀처럼 안 하던 영상통화를 했다. 여섯 살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 언제 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데 미안한 마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의 얼굴에도 서운함이 읽혔다. 아내도 나처럼 여행을 즐기고 싶을 텐데, 아내의 어깨에도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의 짐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짊어진 짐만 생각하며 투정만 부렸으니 나는 이기적인 남편이고 아빠였다.
그날 밤, 나는 새벽이 되도록 잠들지 못한 채 뒤척거리다가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무심하게 넘겨보았다. 우리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보다 젊었던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그 장면은 분명 나와 아내와 아들이 공유한 순간이었을 텐데도 처음 본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야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동안 가족과 나름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너무 빈약했다.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가족에게 무심코 했던 행동과 말 한마디가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고백컨대 나는 그런 적이 너무 많았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이기적이었다. 회사에서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예민해질 때가 있다. 안 좋은 감정을 충분히 털어내지 못한 상태로 귀가할 때면 아내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내 눈치를 보며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기분을 가족에게 풀었을지도 모른다. 고맙게도 아내는 내색하지 않았다. 두부는 영양가 높고 완벽한 식품이지만, 잘못 다루었다간 으깨진다. 가족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가족은 가장 완벽하고 가까운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아빠가 처음이라서, 남편이 처음이라서 항상 서툴고 어색하다. 유독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테니 변명거리가 될 수 없음을 안다. 아내 역시 모든 것이 처음이었을 테니 어찌 힘이 들지 않을까. 책으로, 미디어로 배운 나의 감정 표현 방식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시간은 단 1초라도 돈으로 살수 없다”는 어느 영화의 한 대사가 유독 내 마음을 흔든다. 시간이 참 무심하게 흘렀다. 어느새 일곱 살이 되어버린 아들과 적잖이 마음고생을 한 아내를 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내리면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환하고 따뜻하게 불 켜진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