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황혼에 접어들면서 뜻하지 않게 만신창이가 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부 투자기관에서 비교적 건실하게 직장생활을 했다고 자부한다. 인생의 위기는 퇴직 후에 들이닥쳤다. 지난 12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우울증은 저장강박증과 편집성 인격장애로 발전하여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저장강박증이란 어떤 물건이든지 그것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저장해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장애를 의미한다. 단순히 취미로 물건을 모으는 것과는 다르다.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이 물건을 모으지 못하게 되면 심한 경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편집성 인격장애는 타인의 행동을 의심하고, 타인의 의도를 불신하는 증세를 말한다.
아내는 병이 깊어지면서 지나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갔다. 철따라 불필요한 의류와 주방기구들을 바꾸고 사들이는 쇼핑 중독에 빠져들었다. 그런데다 시도 때도 없이 지인들과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에 따른 지출은 늘어만 갔다.
이러한 아내는 급기야 졸혼을 요구하며 가까운 곳으로 별거에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월마다 지급되는 연금도 아내가 독차지하게 되었다. 홀로 남은 나의 생활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출금을 갚느라,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지니고 있던 반지와 자동차까지 팔아 보탰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지난 3월이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강사직 일자리를 찾아보았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각급 학교 학사 일정까지 마비되는 바람에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절박한 심정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뛰어들었던 일이 그만 사기죄로 걸려들어 구속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수형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내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
아내는 병이 깊어지면서 지나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갔다. 철따라 불필요한 의류와 주방기구들을 바꾸고 사들이는 쇼핑 중독에 빠져들었다. 그런데다 시도 때도 없이 지인들과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에 따른 지출은 늘어만 갔다.
이러한 아내는 급기야 졸혼을 요구하며 가까운 곳으로 별거에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월마다 지급되는 연금도 아내가 독차지하게 되었다. 홀로 남은 나의 생활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출금을 갚느라,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지니고 있던 반지와 자동차까지 팔아 보탰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지난 3월이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강사직 일자리를 찾아보았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각급 학교 학사 일정까지 마비되는 바람에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절박한 심정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뛰어들었던 일이 그만 사기죄로 걸려들어 구속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수형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내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이 황혼에 접어들면서 뜻하지 않게 만신창이가 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나를 도와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가담한 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비록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일지라도 변명이 될 수가 없었다. 깊이 뉘우치며 속죄하고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실패한 인생이라는 좌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60여 년을 살아왔는데 삶의 의미가 물거품처럼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나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존엄한 나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학대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새날의 꿈 덕분이다. 나의 잘못된 행위를 속죄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아내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도 걷어낼 수 있었다. 속죄의 열매가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었으니 그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다. 지난 12년간 어려운 고비 속에서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를 끝까지 지켜온 사랑. 언젠가 출소하면 ‘사랑’이 새날을 알리는 여명의 빛으로 나를 응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속죄의 열매가 ‘전화위복’의 꿈으로 변하면서 새 하늘, 새 땅을 내디딜 그날이 저만치에서 걸어오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존엄한 나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학대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새날의 꿈 덕분이다. 나의 잘못된 행위를 속죄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아내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도 걷어낼 수 있었다. 속죄의 열매가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었으니 그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다. 지난 12년간 어려운 고비 속에서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를 끝까지 지켜온 사랑. 언젠가 출소하면 ‘사랑’이 새날을 알리는 여명의 빛으로 나를 응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속죄의 열매가 ‘전화위복’의 꿈으로 변하면서 새 하늘, 새 땅을 내디딜 그날이 저만치에서 걸어오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