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놀라워하는 것 중에 꼭 꼽히는 것이 있는데,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키는 것과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는 것, 쓰레기 분리수거와 음식물을 분리배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뭐가 그리 놀랄 일인가 싶지만, 사실 이런 나라는 찾기 힘들다. 몇 가지 다른 설명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도 되도록 잘 사용하고 후세에게 잘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퍽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이러한 가치를 공공의 합의를 통해 사회적 규칙으로 삼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질타의 시선을 보내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이런 사회적 안녕(Social Well-being)이이 높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꽤 많은 나라가 아닌가 싶다. 그 많은 열강의 침략과 원치 않았던 전쟁, 기아와 가난, 외환위기, 그리고 당면한 코로나19까지 숱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고 심지어 위기를 겪기 전보다 더 강해졌다.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의 대학에서 한국학을 개설하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이러한 특별함 때문이리라. 하나하나 개인으로는 나약하고 특별할 것 없을지라도 ‘하나’로 뭉치는 순간 우리는 강력해진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의식 저 깊은 곳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특별한 DNA가 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비무장지대(DMZ) 부근에서 목함지뢰 폭발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나는 국방부로부터 건강한 군인정신에 관한 연구를 의뢰받아 연구원들과 함께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를 직접 방문하며 몇 달째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북한군이 매설해 놓은 목함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전군에 비상이 걸리면서 진행 중이던 연구에도 제동이 걸렸다. 모든 부대의 외부인 방문이 금지된 것이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아 좌절하던 중에 당시 언론을 통해 드러난, 사고 정황과 사고를 겪었던 수색대대 소대원들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보인 대처 행동과 동료애에 감동을 받은 나는 그들이야말로 훌륭한 군인정신의 표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연구를 더 충실하게 해낼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고, 국방부의 승인을 얻어 사건을 겪은 팀원들을 만나 심층면접을 할 수 있었다.
지뢰가 터지고 자욱한 연기 속에 겨우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팀장이던 중사가 본 것은 몇 미터 떨어진 철책에 날아가 거꾸로 매달린 부사관이었다고 했다. 폭발로 피범벅이 된 다리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부하가 정신을 잃을까봐 수도 없이 이름을 불렀다는 그는, 그때 어서 부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라. 나무 뒤에 적이 숨어 자신들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또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워 어떻게든 함께 살아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의무병은 입대 전 여행에서 세월호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 중 한 명이어서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는데 힘든 외상 사건을 겪고 나서 그가 선택한 길은 입영 연기가 아니라 오히려 남들이 기피하는 가장 힘들다는 수색대 자원이었던 것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더 많은 학생을 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어 혹 다시 그런 위기상황이 닥칠 때 사람들을 더 잘 구하고 싶어서 의무병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지뢰가 폭발했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열상감시장비(TOD)로 포착했던 TOD 관측병, 그리고 부상자들을 싣고 평소에도 위험해 몹시 조심해서 다닌다는 꼬불꼬불 산길을 어떻게 운전해 내려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던 운전병까지, 이들은 모두 입대한 지 1년 남짓 된 스물한두 살의 대학생이었다. 한 팀에 속해 있던 하사관도 겨우 스물서너 살이었으며 팀을 이끈 중사도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이었다.
몇 년 전 비무장지대(DMZ) 부근에서 목함지뢰 폭발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나는 국방부로부터 건강한 군인정신에 관한 연구를 의뢰받아 연구원들과 함께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를 직접 방문하며 몇 달째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북한군이 매설해 놓은 목함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전군에 비상이 걸리면서 진행 중이던 연구에도 제동이 걸렸다. 모든 부대의 외부인 방문이 금지된 것이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아 좌절하던 중에 당시 언론을 통해 드러난, 사고 정황과 사고를 겪었던 수색대대 소대원들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보인 대처 행동과 동료애에 감동을 받은 나는 그들이야말로 훌륭한 군인정신의 표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연구를 더 충실하게 해낼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고, 국방부의 승인을 얻어 사건을 겪은 팀원들을 만나 심층면접을 할 수 있었다.
지뢰가 터지고 자욱한 연기 속에 겨우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팀장이던 중사가 본 것은 몇 미터 떨어진 철책에 날아가 거꾸로 매달린 부사관이었다고 했다. 폭발로 피범벅이 된 다리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부하가 정신을 잃을까봐 수도 없이 이름을 불렀다는 그는, 그때 어서 부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라. 나무 뒤에 적이 숨어 자신들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또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워 어떻게든 함께 살아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의무병은 입대 전 여행에서 세월호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 중 한 명이어서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는데 힘든 외상 사건을 겪고 나서 그가 선택한 길은 입영 연기가 아니라 오히려 남들이 기피하는 가장 힘들다는 수색대 자원이었던 것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더 많은 학생을 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어 혹 다시 그런 위기상황이 닥칠 때 사람들을 더 잘 구하고 싶어서 의무병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지뢰가 폭발했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열상감시장비(TOD)로 포착했던 TOD 관측병, 그리고 부상자들을 싣고 평소에도 위험해 몹시 조심해서 다닌다는 꼬불꼬불 산길을 어떻게 운전해 내려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던 운전병까지, 이들은 모두 입대한 지 1년 남짓 된 스물한두 살의 대학생이었다. 한 팀에 속해 있던 하사관도 겨우 스물서너 살이었으며 팀을 이끈 중사도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이었다.
자기의 이익보다 타인의
안녕을 우선하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다.
안녕을 우선하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안위보다 동료의 안전을 우선했고,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직면한 위험에 맞서는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이것은 군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문화권을 통틀어 자기의 이익보다 타인의 안녕을 우선하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다. 개인과 타인의 연결감과 일체감은 고귀한 정신을 지닌 덕을 갖춘 이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역대 우리나라 흥행순위에서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는 <명량>(2014)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은 세계 그 어떤 장군과 비교해도 자랑스러운 명장(名將)이자 지장(智將)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고초 끝에 마침내 해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후 거북선 맨 아래 바닥 칸에서 노를 젓던 더러워진 손으로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아, 근디…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랑가 모르겄네”라며 땟국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빙긋이 웃던 평범한 수군(水軍)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진정한 숨은 주인공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여전한 고질적인 문제들에 분개하다가도,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 때문이다. 행복은 되돌려 받으려 하기보다, 오히려 기꺼이 내어줄 때 얻어진다.
역대 우리나라 흥행순위에서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는 <명량>(2014)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은 세계 그 어떤 장군과 비교해도 자랑스러운 명장(名將)이자 지장(智將)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고초 끝에 마침내 해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후 거북선 맨 아래 바닥 칸에서 노를 젓던 더러워진 손으로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아, 근디…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랑가 모르겄네”라며 땟국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빙긋이 웃던 평범한 수군(水軍)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진정한 숨은 주인공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여전한 고질적인 문제들에 분개하다가도,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 때문이다. 행복은 되돌려 받으려 하기보다, 오히려 기꺼이 내어줄 때 얻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