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여름이었던 것 같다.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두었던 흙에서 무언지 모를 새싹들이 올라왔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마트에서 식재료로 구입한 파프리카 씨라고 한다. 딸아이가 장난삼아 뿌려놓은 파프리카 씨앗이 싹을 틔웠고 어항 정도 크기의 플라스틱 상자 속엔 온통 새싹들로 가득했다. 흩뿌리듯 던져놓은 씨앗이 발아를 해 싹을 틔우다니 놀라웠다. 이 새싹들을 제대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상자 속 새싹들은 위치에 따라 제각기 다른 성장을 보였다. 아마도 햇볕을 받는 위치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 싶다. 싹들이 자라면서 상자는 비좁아졌고, 그럴 때마다 난 어리고 약한 싹들을 뽑아주었다. 식물의 세계에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아 달갑지 않았지만 상자가 비좁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성장이 더딘 싹들은 거름이 되었다. 발코니 햇볕이 좋아서인지 싹들은 잘 자랐고 나는 이 신기한 현상에 더욱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었다.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새로운 화분과 상자에 옮겨 밀도를 낮춰주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하얀색 꽃이 고추 꽃과 비슷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엔 드디어 열매가 맺혔다. 처음 경험하는 파프리카 농사는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파프리카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다. 총 아홉 그루가 살아남아 11월 말의 차가워진 날씨에도 쑥쑥 크고 있다.
처음에 싹을 틔웠던 상자에는 두 그루가 남아 있고 나머지 일곱 그루는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루마다 10여 개씩의 파프리카 열매가 영글어가고 있다. 아직은 초록색 열매라 파프리카라기보다는 피망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아이들 주먹만 한 크기의 열매를 볼 때면 생명의 경이로움에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파프리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베란다에 ‘나의 파프리카 농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든다. 파프리카 농원에는 파프리카뿐만 아니라 알로에 두 포기와 이름 모를 나무 두그루가 섞여 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하얀색 꽃이 고추 꽃과 비슷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엔 드디어 열매가 맺혔다. 처음 경험하는 파프리카 농사는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파프리카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다. 총 아홉 그루가 살아남아 11월 말의 차가워진 날씨에도 쑥쑥 크고 있다.
처음에 싹을 틔웠던 상자에는 두 그루가 남아 있고 나머지 일곱 그루는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루마다 10여 개씩의 파프리카 열매가 영글어가고 있다. 아직은 초록색 열매라 파프리카라기보다는 피망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아이들 주먹만 한 크기의 열매를 볼 때면 생명의 경이로움에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파프리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베란다에 ‘나의 파프리카 농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든다. 파프리카 농원에는 파프리카뿐만 아니라 알로에 두 포기와 이름 모를 나무 두그루가 섞여 있다.
마트에서 구입한 파프리카의
씨를 뿌렸더니 신기하게도
싹을 틔워 열매까지
주렁주렁 열렸다.
씨를 뿌렸더니 신기하게도
싹을 틔워 열매까지
주렁주렁 열렸다.
얼마 전부터 나는 퇴근하고 나면 파프리카 농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소일하고 있다. 휴일에도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부터 찾게 된다. 거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 ‘나의 파프리카 농원’을 한두 시간 동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밤에는 발코니 등불에 반짝이는 식물을, 낮에는 햇살에 빛나는 초록의 광채를 느끼면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물을 주고나면 금세 생기가 도는 것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사람 같은 모습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처럼 파프리카와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게 농부의 마음일까?
날씨는 점점 차가워져가고 발코니의 온도도 떨어져 파프리카를 바라보기가 미안해진다. 화분과 상자들을 거실로 들여놓을까도 생각했지만 가족의 반대로 들이지 못했다. 발코니 창이 추위를 막아주긴 하겠지만 부족하다는 마음에 나는 큰 비닐봉지를 구해 식물들에게 씌워주기로 했다. 특히 밤에는 이불을 덮어주듯 반드시 비닐을 씌워두었다. 녀석들이 추위에 떨까봐 안달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식물들과 교감하는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나의 파프리카들은 건강한 편이지만 노랗고 빨간 파프리카 열매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은 색깔이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이들을 돌볼 생각이다. 완숙한 열매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있겠지만 이들과 교감한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자랄 수 있도록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생명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이 파프리카를 보면서 희망을 품고 생명의 위대함을 실감하고 있다.
날씨는 점점 차가워져가고 발코니의 온도도 떨어져 파프리카를 바라보기가 미안해진다. 화분과 상자들을 거실로 들여놓을까도 생각했지만 가족의 반대로 들이지 못했다. 발코니 창이 추위를 막아주긴 하겠지만 부족하다는 마음에 나는 큰 비닐봉지를 구해 식물들에게 씌워주기로 했다. 특히 밤에는 이불을 덮어주듯 반드시 비닐을 씌워두었다. 녀석들이 추위에 떨까봐 안달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식물들과 교감하는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나의 파프리카들은 건강한 편이지만 노랗고 빨간 파프리카 열매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은 색깔이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이들을 돌볼 생각이다. 완숙한 열매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있겠지만 이들과 교감한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자랄 수 있도록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생명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이 파프리카를 보면서 희망을 품고 생명의 위대함을 실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