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자 친구와 나는 어느 노래 가사 내용처럼 차를 한 대 구매했다. 그것도 중고차가 아닌 신차였다. 신이 난 여자 친구는 차에 이름을 지어주
었다. 본따 코코. 우리는 본따 코코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꽤 긴 여행을 했다. 풍찬노숙하다시피 하는 여행이었지만 즐거웠다. 2019년 한 해 동안 무
려 3만 3,000km를 달렸다. 산이고 바다고 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는 곳마다 새로운 여행지였으니 다음 여행지를 고르기도 아주 쉬웠다. 전국을
종횡무진하다 보니 다음 여행지를 탐색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어떤 날은 서로 “이제 어디 갈까?”만 연발하다가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웬만한
곳은 다 가본 곳이어서 갈 곳 잃은 어린아이처럼 휴대폰 속을 뒤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다음 여행지를 찾아 헤매다가 여자 친구가 문득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은하수가 잘 보이는 국내 명소들의 사진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은하수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 있구나.”
은하수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 있구나.”
여자 친구는 넋을 놓은 채 휴대폰 속 은하수 풍경을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친구는 도심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어서 촘촘히 펼쳐진 별들과 은하수를 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나는 군복무를 하던 시절에 수없이 많은 은하수를 본 경험이 있었다. 쏟아져 내릴 듯 밤하늘을 흐르는 은하수의 장관을 여자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 여행지는 ‘은하수 여행’으로 정했다. 여자 친구도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국내 은하수 관측지들에 대해 사전 조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은하수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달빛이 강하거나 달이 오래 뜨는 날은 피해야 했다. 구름이 많은 날은 당연히 어려웠다. 신기하게도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 날도 관측이 어렵다고 했다. 그런 날은 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엇보다 11월까지가 은하수를 관측하기에 좋다고 했다. 가을이 막바지로 치닫는 시점이라 우리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은하수를 구경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곳은 경남 합천의 황매산이었다. 우리는 은하수를 관측하기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을 기상청과 천문 사이트를 통하여 확인한 후 출발했다. 황매산은 정상 부근에 오토캠핑장이 있어 차로 이동하기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3시간을 달려 드디어 황매산 오토캠핑장에 도착하였다. 가을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황매산의 가을밤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얼른 차에서 내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은하수를 보고 싶은 마음에 돗자리와 DSLR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겼다. 좀 더 위로 가면 은하수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산 정상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차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군 복무 시절 보았던 은하수 그대로였다. 머리 위로 펼쳐진 은하수의 장관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자 친구도 탄성을 질렀다.
3시간을 달려 드디어 황매산 오토캠핑장에 도착하였다. 가을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황매산의 가을밤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얼른 차에서 내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은하수를 보고 싶은 마음에 돗자리와 DSLR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겼다. 좀 더 위로 가면 은하수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산 정상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차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군 복무 시절 보았던 은하수 그대로였다. 머리 위로 펼쳐진 은하수의 장관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자 친구도 탄성을 질렀다.
주변은 온통 억새밭 천지였다. 억새들이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참 특이했다. 사르락사르락하는 소리가 마치 서로 대화라도 나누는 듯했다. 억새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참을 걸어 올라가 드디어 황매산 고지에 다다랐다.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진 곳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은하수의 장관을 찬찬히 육안으로 감상했다. 은하수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다. 드문드문 포착되는 별똥별은 보너스라고 가을의 멋진 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이 마치 대형 스크린 같았다.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큰 아이맥스스크린으로 은하수와 별들을 감상하는 기분도 들었다.
너무나 황홀했다. 박준 시인이 그의 시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노래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밤하늘의 장관을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시심이 떠올라 나지막이 “가을은 은하수의 제철이다”라고 중얼거렸다. 은하수의 감동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우리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다음 여행지의 제1 조건으로 ‘은하수가 보이는 곳’을 꼽았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안동, 의성, 평창, 강릉, 안면도, 장수 등으로 종횡무진하며 은하수를 즐겼다. 가을이 짙어질수록 붉게 물든 이파리처럼 우리의 사랑도 더 붉게 물드는 것 같았다. 그후 불행한 실수로 나는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때 여자 친구와 함께했던 가을의 풍경이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종종 주고받는 편지에도 우리가 함께 보았던 은하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나는 사회에 복귀하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은하수를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간절해질수록 수용생활은 더욱 반듯해진다. 여자 친구도 꿋꿋하게 열심히 생활에 전념하며 재회의 시간을 기다릴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과 행복했던 추억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가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쯤이면 황매산 밤하늘엔 은하수가 강물이 되어 흐를 것이다.
어느새 가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쯤이면 황매산 밤하늘엔 은하수가 강물이 되어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