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가족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차마 입 밖으로도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못나고 부족한 아들이었습니다. 지난해 저는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나버리셨습니다. 평생을 제 옥바라지하시느라 보내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사회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썼으나 어머니를 잃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방황이 또 시작되었고 방탕한 삶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저의 방탕한 삶은 언제 열심히 살았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구나.”
홀로 남은 아버지였습니다. 올해 일흔다섯 살의 연로하신 아버지. 문자메시지를 보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습니다. 저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얼굴은 반쪽이 되시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가 외로이 소파에 앉아 어머니의 사진을 보라보고 계셨습니다.
천하에 이런 불효자가 있을까요. 숨이 멎을 듯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죄송한 마음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후 저만 슬픈 줄 알고 살았습니다. 저만 힘들고 괴롭고 아픈 줄 알았던 겁니다. 아버지의 슬픔을 돌아볼 줄 모르는 못난 아들이었구나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버지 모시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새로 집을 얻어 이사도 했습니다. 그렇게 새 출발을 하고 싶었지만 이사한 지 5일 만에 또다시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방탕했던 삶의 대가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치장을 거쳐서 이곳 00구치소에 수감되기까지 너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구나.”
홀로 남은 아버지였습니다. 올해 일흔다섯 살의 연로하신 아버지. 문자메시지를 보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습니다. 저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얼굴은 반쪽이 되시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가 외로이 소파에 앉아 어머니의 사진을 보라보고 계셨습니다.
천하에 이런 불효자가 있을까요. 숨이 멎을 듯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죄송한 마음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후 저만 슬픈 줄 알고 살았습니다. 저만 힘들고 괴롭고 아픈 줄 알았던 겁니다. 아버지의 슬픔을 돌아볼 줄 모르는 못난 아들이었구나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버지 모시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새로 집을 얻어 이사도 했습니다. 그렇게 새 출발을 하고 싶었지만 이사한 지 5일 만에 또다시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방탕했던 삶의 대가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치장을 거쳐서 이곳 00구치소에 수감되기까지 너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인천에서 이곳 00구치소까지 접견을 오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차마 할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홀가분해지려고, 내 마음속 무거운 짐을 덜어내려고 하는 사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심으로 하는 사과라면 아버지의 마음속 상처를 치유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애써 잊고 사시는데 또다시 상처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컸습니다.
그런데 영어의 몸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슬픔만큼이나 큰 것이 아내를 잃은 남편의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홀로 힘들어하실 때 위로를 해드리며 강건한 모습을 보여 드렸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간의 못난 행동이 너무나도 죄송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질 못했습니다. 매주 접견 오신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난 잘못을 하늘에 계신 주님께 깊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자.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은 아버지의 마음을 치유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이것이 정답은 아닐 테지만 해답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고 기대를 하고 기다리면 주님의 역사는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간절한 기도가 해답입니다. 기도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이 정답으로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거듭나는 삶 속에서 내일이라는 시간이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 되고 있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저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마음속 아픔을 치유해 주실 것을 말입니다. 이렇듯 저는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기도로써 말입니다.
그런데 영어의 몸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슬픔만큼이나 큰 것이 아내를 잃은 남편의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홀로 힘들어하실 때 위로를 해드리며 강건한 모습을 보여 드렸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간의 못난 행동이 너무나도 죄송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질 못했습니다. 매주 접견 오신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난 잘못을 하늘에 계신 주님께 깊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자.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은 아버지의 마음을 치유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이것이 정답은 아닐 테지만 해답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고 기대를 하고 기다리면 주님의 역사는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간절한 기도가 해답입니다. 기도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이 정답으로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거듭나는 삶 속에서 내일이라는 시간이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 되고 있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저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마음속 아픔을 치유해 주실 것을 말입니다. 이렇듯 저는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기도로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