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세상,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생활이 오늘도 우리 앞에 있다.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지하철까지의 거리는 예전 집과 비슷했다. 전과 확실히 달라진 것은 아파트 바로 앞으로 마을버스가 다닌다는 것이다. 처음 이사 올 때는 마을버스가 15분 간격이었는데 수입이 좋지 못한 것인지 배차를 줄여서 어느 순간부터 20분 간격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양손가득 짐 있는 날이나 속없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마을버스가 꽤나 고마운 존재였다. ‘만만디(慢慢的) 총각’은 바뀐 마을버스 기사에게 내가 붙인 별명이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기사 분은 두 명이다. 해가 바뀌면서 전에 몰던 나이 지긋하신 기사분이 젊은 남자를 보조석에 태우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그 젊은 남자가 마을버스를 몰게 되었다. 대개의 기사 분들은 차가 밀릴 때는 천천히 몰다가도 앞에 차가 없거나 정류장에 손님이 없으면 조금 속도를 내어 차를 모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도 덩달아 빨라진다. 평소 때는 거의 신경을 안 쓰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하여 약속시간이 늦어 괜히 마음이 앞서는 날에는 그 자그마한 과속 하나가 그렇게 고마울 때가 없다. 신난다. 그런데 새로 운전대를 잡은 젊은 총각은 좀 달랐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산전수전 다 겪은 시골 노인장 마냥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도로에 차가 없을 때도 그렇고 손님 없는 정류장을 지날 때도 그렇다. 어찌 보면 가속 페달이 아예 없는 차량 마냥 느릿느릿한 것이 영락없는 만만디(慢慢的)다. 붙임성 있는 성격이 못 되어 아직 한번도 만만디 총각과 제대로 말을 섞은 적이 없어 그의 고향이 그쪽인지, 어쩌다보니 성격이 그리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유로움을 넘어 느려 터진 달팽이 버스가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회의는 아침 7시 40분에 시작되지만 아침도 먹고 대충 일과를 준비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7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4~50분 거리에 있는 회사지만 새벽 일찍 집을 나서게 된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3월 초의 출근길, 일교차가 크다고는 하지만 봄기운이 풀린 새벽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 목도리도 장갑도 생략한 출발은 얇은 겨울 상의 한 벌로 넉넉하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출근길 아침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을 집에서 대충 먹고 갈 것인가 그냥 출근해서 직원 식당에서 먹을 것인가부터, 역까지 걸어가 바로 지하철을 탈 것인가 아파트 앞에서 기다려 마을버스를 타고 환승할 것인가까지 사소한 고민은 줄을 잇는다. 조금 서둘러 새벽 5시 57분에 집을 나서면 역까지 걸어가도 새벽 6시 10분에 연산역에 들어오는 열차를 바로 탈 수 있지만, 머뭇대다 새벽 6시 넘어 집을 나서는 날엔 새벽 6시 6분에 아파트 앞 정류장에 도착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마을버스를 제시간에 타면 새벽 6시 8분 정도에 역에 도착하므로 조금 잰걸음으로 총총대며 뛰어가면 새벽 6시 10분에 도착하는 열차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기에 여유가 있어 어제 보던 기사를 잠시 검색하느라 지체했더니 어느새 새벽 6시, 늦었다 싶어서 오늘은 마을버스를 타고 가 열차로 환승을 하기로 한다. 아무도 없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서 토닥토닥 바닥을 두드리며 주위를 맴도는데 예감이 썩 좋지 않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마을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다. 혹시 만만디 총각인가, 불길한 예감이 등허리를 스쳐 지난다. 새벽 6시 7분이 조금 넘어서야 마을버스가 온다.
역시나 만만디 총각이다. 불과 1~2분 차이지만 이 시간엔 꼭 교차로에서 정지신호가 걸리고 그러다 보면 새벽 6시 10분이 넘어서 마을버스가 지하철 입구에 선다. 늦었다.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헉헉거리며 승강장까지 전력질주를 해본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지하철이 막 떠난 텅 빈 승강장, 6시 12분이다.
떠난 열차는 다시 오지 않는다. 잠깐 뛰어온 숨에 등짝까지 땀이 밴 속옷의 축축함을 느끼며, 다음 열차가 들어오는 새벽 6시 22분까지 나는 만만디 녀석을 원망하며 계속 툴툴거려야 한다. 아침시간의 ‘12분’이란 ‘여유’와 ‘부산함’을 가르는 엄청난 시간이다. 덕분에 나는 쓸데없는 부산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냥 평소처럼 새벽 5시 57분에 출발했다면 만만디 녀석과 마주치지 않았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의 늑장보다는 마을 주민의 안락한 출퇴근을 책임지는(?) 자로서 마을버스를 늦게 운행하여 나의 부산함을 만들어 낸 만만디가 아쉽다.
어쨌든 하루는 시작되고 나는 또 달린다. 누군가는 새벽같이 지하철을 운행하고, 누군가는 버스를 몰고, 누군가는 거리를 치우고, 누군가는 먹을 것을 판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수고 덕분에 나는 내 차를 몰지 않고도 회사까지 무사히 출근을 한다. 그리고 내가 지불하는 차비라는 이름의 작은 돈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단란한 가정을 지켜내는 윤활유가 된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고 사는 존재다. 누군가에게 나는 도움을 주겠지만 누군가에겐 생각하지 못한 손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로 인해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세상,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생활이 오늘도 우리 앞에 있다.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삶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기에 여유가 있어 어제 보던 기사를 잠시 검색하느라 지체했더니 어느새 새벽 6시, 늦었다 싶어서 오늘은 마을버스를 타고 가 열차로 환승을 하기로 한다. 아무도 없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서 토닥토닥 바닥을 두드리며 주위를 맴도는데 예감이 썩 좋지 않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마을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다. 혹시 만만디 총각인가, 불길한 예감이 등허리를 스쳐 지난다. 새벽 6시 7분이 조금 넘어서야 마을버스가 온다.
역시나 만만디 총각이다. 불과 1~2분 차이지만 이 시간엔 꼭 교차로에서 정지신호가 걸리고 그러다 보면 새벽 6시 10분이 넘어서 마을버스가 지하철 입구에 선다. 늦었다.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헉헉거리며 승강장까지 전력질주를 해본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지하철이 막 떠난 텅 빈 승강장, 6시 12분이다.
떠난 열차는 다시 오지 않는다. 잠깐 뛰어온 숨에 등짝까지 땀이 밴 속옷의 축축함을 느끼며, 다음 열차가 들어오는 새벽 6시 22분까지 나는 만만디 녀석을 원망하며 계속 툴툴거려야 한다. 아침시간의 ‘12분’이란 ‘여유’와 ‘부산함’을 가르는 엄청난 시간이다. 덕분에 나는 쓸데없는 부산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냥 평소처럼 새벽 5시 57분에 출발했다면 만만디 녀석과 마주치지 않았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의 늑장보다는 마을 주민의 안락한 출퇴근을 책임지는(?) 자로서 마을버스를 늦게 운행하여 나의 부산함을 만들어 낸 만만디가 아쉽다.
어쨌든 하루는 시작되고 나는 또 달린다. 누군가는 새벽같이 지하철을 운행하고, 누군가는 버스를 몰고, 누군가는 거리를 치우고, 누군가는 먹을 것을 판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수고 덕분에 나는 내 차를 몰지 않고도 회사까지 무사히 출근을 한다. 그리고 내가 지불하는 차비라는 이름의 작은 돈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단란한 가정을 지켜내는 윤활유가 된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고 사는 존재다. 누군가에게 나는 도움을 주겠지만 누군가에겐 생각하지 못한 손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로 인해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세상,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생활이 오늘도 우리 앞에 있다.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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