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하루하루 나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절망을 넘어
꿈을 꾸게 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보람인가.
꿈을 꾸게 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보람인가.
일등에 대한 기억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 가을 대운동회 때였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모시고 읍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 어린 아들의 운동회를 구경하러 오셨다. 기억하건대 김밥이나 맛있는 먹거리도 없었다. 그나마 햇고구마와 이른 옥수수를 찐 게 별미였다. 이윽고 어머니의 관심은 여섯 명씩 함께 내달리는 경기였다. 멀리서도 어머니는 용케 나를 알아보았다. 어김없이 일등을 했으니까.
또 있다. 유격 훈련을 받을 때다. 비교적 생활이 편한 남쪽 후방 부대에서의 군 생활은 나에겐 큰 혜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군기가 엉성한 부대원들에게 지휘관은 유격 훈련만큼은 예외 없이 일 년에 한 번씩 엄격하게 받도록 명령했다. 일주일 동안 생지옥 체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유격 훈련 과정을 엄중히 심사하여 낙제점수를 받게 되면 다시 일주일을 더 받게 했으니 몸과 마음이 사뭇 긴장하여 지독한 훈련에 참여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 훈련에서 일등이라는 쾌감을 누렸다. 어찌 보면 너무 비인간적인 선착순 훈련이었다. 극한 코스 훈련을 앞두고 긴장감을 극복하도록 사전에 숨 가쁜 피티 체조와 봉체조를 마쳐갈 즈음 빨간 모자를 쓴 조교는 느닷없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저기 멀리 보이는 산 중턱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오는 선착순 게임이었다. 일, 이, 삼 등은 나머지 훈련을 면제받는 특별한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낌새를 헤아리고 있어서 이번만은 기필코 일등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결국 일등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고 말았다. 그 통쾌함이라니.
공부에서 일등을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 길은 멀었다.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는 고작해야 한 학년에 육십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일등은 내 몫이 아니었다. 단지 손을 꼽는 몇 명 축에 들긴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성적도 그리 뛰어날 리 만무했다. 수학 과목이 없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은 크나큰 성취였다. 한 가지 더 자랑스럽게 생각나는 것은 정서가 메마르지 않도록 전 교도관들을 대상으로 한 교정문예 현상공모에서 시와 수필로 두 차례나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뿌듯했다. 시 한 편을 투고하기까지 무려 몇 달을 씨름했던 산고의 열매였다.
그렇지만 정작 직장 생활에서 승진이나 근무 평정에서는 뒤쳐졌다. 조직적인 시스템에 지혜롭게 적응하지 못한 게 분명하지만 스스로 생각건대 내 양심과 소심한 인성 탓이 컸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동생들은 출중했다. 둘째 아우는 스물네 살에 중등교사가 되어 서른아홉에 장학사로 승진하였고 마흔일곱에 교장 자리에 앉았다. 타고난 성실함과 부지런함의 결실이었다. 수의사라는 전문 직업을 가진 셋째 아우도 겸손한 성품과 신실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천 명이나 되는 조합의 조합장으로 신임을 얻고 있다. 법대를 나온 막내아우 또한 승승장구하여 굴지의 보험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자랑스럽기만 하다.
생각할수록 감사하다. 나도 이렇게 정년을 넘기고도 일하고 있다. 오래 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하루하루 나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절망을 넘어 꿈을 꾸게 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보람인가.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가치 있는 아름다운 직업이다. 큰 소리 안 내기, 미워도 다시 한번, 친절하게 응대하기, 친절을 넘어 칭찬해주기, 진심으로 건강을 염려해주기, 또 먼저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격려해주기 등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내 안에 빛이신 그분을 전하고 싶다. 정작 이런 일에 일등이 되고 싶은 거다. 이 직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로 내 속사람이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게 앞서가는 인생이 아닐까.
또 있다. 유격 훈련을 받을 때다. 비교적 생활이 편한 남쪽 후방 부대에서의 군 생활은 나에겐 큰 혜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군기가 엉성한 부대원들에게 지휘관은 유격 훈련만큼은 예외 없이 일 년에 한 번씩 엄격하게 받도록 명령했다. 일주일 동안 생지옥 체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유격 훈련 과정을 엄중히 심사하여 낙제점수를 받게 되면 다시 일주일을 더 받게 했으니 몸과 마음이 사뭇 긴장하여 지독한 훈련에 참여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 훈련에서 일등이라는 쾌감을 누렸다. 어찌 보면 너무 비인간적인 선착순 훈련이었다. 극한 코스 훈련을 앞두고 긴장감을 극복하도록 사전에 숨 가쁜 피티 체조와 봉체조를 마쳐갈 즈음 빨간 모자를 쓴 조교는 느닷없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저기 멀리 보이는 산 중턱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오는 선착순 게임이었다. 일, 이, 삼 등은 나머지 훈련을 면제받는 특별한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낌새를 헤아리고 있어서 이번만은 기필코 일등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결국 일등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고 말았다. 그 통쾌함이라니.
공부에서 일등을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 길은 멀었다.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는 고작해야 한 학년에 육십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일등은 내 몫이 아니었다. 단지 손을 꼽는 몇 명 축에 들긴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성적도 그리 뛰어날 리 만무했다. 수학 과목이 없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은 크나큰 성취였다. 한 가지 더 자랑스럽게 생각나는 것은 정서가 메마르지 않도록 전 교도관들을 대상으로 한 교정문예 현상공모에서 시와 수필로 두 차례나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뿌듯했다. 시 한 편을 투고하기까지 무려 몇 달을 씨름했던 산고의 열매였다.
그렇지만 정작 직장 생활에서 승진이나 근무 평정에서는 뒤쳐졌다. 조직적인 시스템에 지혜롭게 적응하지 못한 게 분명하지만 스스로 생각건대 내 양심과 소심한 인성 탓이 컸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동생들은 출중했다. 둘째 아우는 스물네 살에 중등교사가 되어 서른아홉에 장학사로 승진하였고 마흔일곱에 교장 자리에 앉았다. 타고난 성실함과 부지런함의 결실이었다. 수의사라는 전문 직업을 가진 셋째 아우도 겸손한 성품과 신실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천 명이나 되는 조합의 조합장으로 신임을 얻고 있다. 법대를 나온 막내아우 또한 승승장구하여 굴지의 보험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자랑스럽기만 하다.
생각할수록 감사하다. 나도 이렇게 정년을 넘기고도 일하고 있다. 오래 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하루하루 나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절망을 넘어 꿈을 꾸게 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보람인가.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가치 있는 아름다운 직업이다. 큰 소리 안 내기, 미워도 다시 한번, 친절하게 응대하기, 친절을 넘어 칭찬해주기, 진심으로 건강을 염려해주기, 또 먼저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격려해주기 등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내 안에 빛이신 그분을 전하고 싶다. 정작 이런 일에 일등이 되고 싶은 거다. 이 직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로 내 속사람이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게 앞서가는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