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신기한 인연을 만납니다. 시작도, 이어지는 방식도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인연 말이지요. 지난해 가을, 서울 필동에서 열리는 예술통 축제에 갔습니다. 골목마다 의미 있는 예술 작품과 재밌는 즐길 거리가 잔뜩이었죠. 사람들은 북적였고 분위기는 가벼웠습니다. 그때 골목 중앙에 설치된 간이 무대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한 남자가 섰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크기가 다른 병 몇 개를 이용해 신기한 조형물을 만들어 보였습니다. 작은 병 위에 큰 병을 세울 땐 위태로워 숨죽이고 지켜봤지요.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해 냈습니다. 큰 박수가 터져나왔죠.

- 저는 세상에서 실패를 가장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는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 작가였어요. 처음 접해보는 예술이고 처음 듣는 그의 이야기였죠. 그의 예술은 마음의 중심에서 시작합니다. 나의 중심을 잡고서 모든 사물의 중심을 생각하는 것이죠. 밸런싱 아트라는 것은 결국 세상의 중심 잡기입니다. 그의 일화는 흥미롭기 그지없습니다. 두바이에 가서 작은 나무 조각 위에 오토바이를 세우거나, TV 쇼에 나가서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를 한쪽 다리로 세우거나. 아주 깜짝 놀랄 만한 퍼포먼스로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죠.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결코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라는 것은 끈질긴 노력과 도전의 산물일 테니까요.

- 세상의 모든 것에는 무게중심이 있어요. 그걸 찾아내면 되는 거고요.
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무조건 긍정합니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좀 창피하면 그만이잖아요. 하하.
그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놀라웠습니다. 철학을 공부한 것도 예술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그는 이미 어떤 경지에 오른 사유를 갖고 있었죠.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몇 십 년째 북한산에 오르고 있었어요. 마음이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더울 때나 추울 때도 그저 묵묵히 산을 올랐다고 해요. 가장 먼저 봄의 새순, 여름의 물소리를 만나고, 제일 먼저 가을 단풍, 겨울의 서리를 마주쳤다고 해요. 매일 가도 산은 어느 계절, 어떤 순간도 같은 적이 없어 마음은 절로 겸허해지고 감사를 배웠다고요. 그러면서 산에게 강인한 체력과 정신을 선물받았다고요.

저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어느 좋은 날에 북한산 백운대를 가보겠다고 겁도 없이 따라나섰다가 결국 중도 포기하고 말았죠. 예술도 체력이고, 사랑도 체력이고, 인생도 체력입니다. 변남석 작가는 예술 체력을 끝없이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산에서 자연의 돌로 만들어내는 순간의 조형 작품, 강에서 건진 돌로 쌓아 올리는 아름다운 설치 작품, 전시장에서도 그의 독특한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죠. 그의 밸런싱 아트는 순간의 예술입니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초집중하여 이루어내는 어떤 경지지요. 숨이 멎을 듯한 긴장을 즐겨야만 가능한 일이고요.
북한산 실패 후에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가기에 만만한 산들을 오르고 있어요. 남산, 북악산, 인왕산, 대모산 등 산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산을 천천히 오르고 내려옵니다. 산을 오르며 나무와 함께 호흡하고 땅과 함께 발산합니다. 온몸으로 푸름을 받아들이고 온 맘으로 맑음을 껴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체력이 좋아지고 더불어 삶도 건강해지겠지요. 마음의 중심을 찾고 삶의 균형도 맞추어가겠지요. 우리 교정인들에게도 몸과 마음의 건강과 균형은 몹시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음의 중심을 생각해보며 뒷산에 오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다가 북한산 정상에서 마주칠지도 모르지요. 희망 사항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