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 좋은 차를 갖게 된다면 누구나 기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의 소유가 주는 기쁨은 일주일만 지나도 현격히 줄어들며,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감퇴한다. C는 원한다면 언제든 명품매장을 돌며 신상 핸드백과 구두를 살 수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물질을 수단으로 행복에 다다르기에는 우리 인간은 매우 복잡한 유기체이다. 마음이 허전할 때 물질로 채우려 드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잠깐 발을 녹일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옷장을 채운다고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아래 그림처럼 우리 인간은 결코 물질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공허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사랑’과 ‘의미’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추상적이며, 따라서 불확실하고 어렵다. 반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물질은 확실한 만족감을 준다. 이런 까닭에 사랑이 고플수록, 심리적으로 미성숙할수록 손쉬운 물질에 집착하는 것이다. 물질이란 모름지기 자신이 적절히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는 정도까지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림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다양한 안녕의 위계를 나타낸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심리적으로 성숙한 지혜를 갖추어야 누릴 수 있는 행복이며, 참다운 행복을 위해서는 이 모든 안녕이 조화롭게 추구되어야 한다. 주부 C와 같은 공허감을 느낄 땐 물질적 만족보다는 차라리 ‘신체적 안녕’을 추구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의 몸도 일종의 물리적 속성을 가진 개체라는 측면에서 몸을 잘 돌보고 필요한 물질을 적절히 취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될 테니 말이다.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는 것, 적정량의 음식을 제때 먹는 것, 적절한 만큼 일하고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신체적 안녕’을 통해 행복에 이르는 방편이 된다. 의식주나 고용상태 또는 소득수준 등의 객관적 지표에서 다소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을 잘 돌보는 ‘신체적 안녕’을 꾀한다면 정신건강을 위태롭게 할 위험을 낮출 수 있고, 행복할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자기(self)라 할 수 있는 몸은 우리 자신의 일부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외부의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 내면, 즉 정신이 약하다는 방증일 수 있으며, 조절과 절제에 필요한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일 수 있다. 더불어 본질적으로는 자존감이 낮은 데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신적 측면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을 말한다. 자존감이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특성이 있기에, 남의 눈에 비치는 겉모습에 치중하는 어리석음이 유발되기 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듯도 하다. 그러나 기억하자. 자존감은 정신적인 면, 심리-내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둘 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자칫 외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 치중하다 보면, 자아가 약해지게 되고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결국 아무리 물질을 채워도 마음은 공허한,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야 마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