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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January + Vol.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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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칼럼

운동의 세계로 들어선 뜻밖의 손님, 채식

이준섭 문화칼럼니스트

새해를 맞아 운동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자연스럽게 동물성 단백질 보충에 대한 관심과 제품 구매도 상승하는 중. 이런 가운데 최근 채식으로 경기력이 향상됐다는 프로 운동선수들과 관련 책, 다큐멘터리, 논문 등이 속속 등장하면서 운동과 채식의 색다른 만남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채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이다

새해를 맞아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과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은 건강과 보기 좋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닭가슴살, 달걀, 유청 단백질 보충제, 지방을 걷어 낸 붉은 살코기 등 동물성 단백질을 즐겨 먹는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단백질 보충이 중요한 프로 운동선수들 중 채식을 선언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채식 후 오히려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향상된 경기력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22년 야구팀 SSG 랜더스의 KBO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한 만 38세의 백전노장 투수 노경은 선수는 2020년 초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투수코치의 권유로 다큐멘터리 영화 <더 게임 체인저스(The Game Changers)>를 시청한 것이 계기다. 그는 채식과 유제품, 달걀을 함께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으로서 엄격하게 식단 관리를 했으며 남다른 노력에 힘입어 롯데 자이언츠의 중요한 선발투수 자원으로 활약했다. 나아가 지난해 SSG 랜더스로 이적한 뒤에도 12승 평균자책점 3.05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채식으로 경기력 향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런가 하면 아스팔트 대신 산길, 초원, 사막 등 자연의 길을 뛰는 스포츠인 트레일 러닝의 자타공인 국내 1인자 김지섭 선수는 열량 높은 음식을 섭취한 다음날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 뒤 2019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채식에 돌입했다. 이후 2022년 6월까지 국내 모든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채식과 함께 세계 최고 대회인 프랑스의 울트라 트레일 몽블랑(Ultra-Trail du Mont Blanc®, UTMB) 순위권 입상을 목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이른바 ‘채식주의 운동선수’는 해외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테니스 스타 선수 비너스·세레나 윌리엄스(Venus·Serena Williams), 포뮬러 자동차 경기 중 하나인 FIA포뮬러원월드챔피언십(FIA Formula One World Championship)의 황제 루이스 해밀턴(Lewis Carl Davidson Hamilton),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EPL)를 거쳐 현재 AS 로마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크리스 스몰링(Christopher Lloyd Smalling) 등 각 종목 최상위권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채식을 실천하고 있으며 그 숫자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속속 밝혀지는 채식의 장점

우리는 어릴 적부터 ‘육식=단백질=힘’이라는 공식이 진리라고 배워 왔다. 하지만 동의병원 슬관절센터장이자 채식을 권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 모임인 ‘베지닥터’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송무호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를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우리 몸의 에너지원은 단백질이 아니라 탄수화물이며 근육 형성에 필요한 단백질도 식물성 원료로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채식을 하면 혈관이 깨끗해지고 심폐기능이 향상되기에 근육에 산소와 더 많은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다’며 채식이 보통의 선입견과 달리 일상생활과 운동의 충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혈관 건강은 운동 능력과 깊이 연관돼 있다. 영양분을 담은 피가 온몸에 잘 돌아야 근육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더 게임 체인저스>에서는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한다. 운동선수 3명에게 하루는 동물성 브리또를, 다음날에는 식물성 브리또를 제공하고 피를 뽑아 혈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동물성 브리또를 먹은 날의 혈장이 식물성 브리또를 먹은 날에 비해 흐리게 나타났다. 즉, 채식을 함으로써 피가 더 잘 돌 수 있는 혈관 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마라토너이자 웹사이트 ‘육식하지 않는 운동선수’의 최고경영자인 맷 프레이저(Matt Frazier)가 쓴 저서 <채식하는 운동선수>에도 채식의 강점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우리가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아미노산 때문인데 아미노산은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에도 풍부하므로 굳이 동물성 단백질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기에는 N-글리콜리뉴라민산, 내독소, 헴철과 같은 염증성 분자로 구성된 단백질이 함유돼 있는 반면에 식물성 단백질에는 염증을 줄이고 미생물 군집과 신체 기능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항산화제, 파이토케미컬, 미네랄, 비타민 등이 두루 들어 있다는 점도 채식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식생활의 정답’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전문가들은 균형적 대사, 근육 및 면역 세포 형성 등을 위해 동물성 단백질을 적당량 섭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훌륭한 성적을 내는 운동선수들은 근육량을 타고났거나 채식으로 인해 몸이 받는 스트레스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또한 육식과 채식 중 어느 하나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시대가 지났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짜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운동 상황과 몸 상태에 따라 육식을 함께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채식과 육식을 적절하게 병행하는 유연한(Flexible, 플렉시블) 채식주의자(Vegetarian, 베지테리언)인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을 자처하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이렇듯 식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과 논의가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식생활에는 왕도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나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식생활을 찾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채식이 몸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도 있지만 체질상 육식 위주의 식단이 몸에 잘 맞는 사람도 존재한다. 앞서 이야기한 채식주의 운동선수들은 채식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는 동시에 채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식생활의 지평을 넓혀 준 공로자들이지만, 이 식단이 우리 모두의 모범 답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새해가 된 김에 당장 오늘부터 음식에 대한 몸의 반응에 귀 기울이며 이것저것 고루 먹고 열심히 운동하자. 이것이 바로 ‘건강한 2023년’의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