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럴까? 사람은 역시 고쳐 쓸 수가 없는 걸까? 이 말은 정말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무척이나 잔인하고 슬픈 말처럼 느껴진다! 이 말을 내뱉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왠지 타인에 대한 의심과 편견만이 가득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나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사람이란 게 웬만해선 착해지거나 나아지지 않고 나쁜 쪽으로만 더욱 악화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런 선입견은 징역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더욱 확고해져 한층 더 나를 옭아매었던 것 같다. 한동안 이 문제 때문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나부터 바꿔보자!’라는 게 그 첫걸음이었다.
나는 종교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만약 존재했더라도 이미 죽었다’라고 한 유명한 철학자의 말을 멋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나는 성악설을 지지하며 신 같은 건 나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이 의지하고 기댈 무언가가 필요해서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라 여겼다. 그런 반항적인 사고 때문이었을까. 핑계처럼 보이고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로 인해서 나의 청소년기의 시절을 온갖 비행과 말썽과 일탈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껏 나이를 먹어 오면서까지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사실, 처음 1년짜리 천주교 교리를 시작한 것도 열심히 교리를 공부해서 오히려 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해 보이겠다는 굳은 결심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난 그렇게 1년짜리 지루하고 따분한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잠만 잤다. 하품이 나오고 쏟아지는 졸음을 견딜 수 없었다. 교리 선생님이 눈치를 주실 때마다 괜히 왔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1분이 1시간 같았고 1시간이 1주일 같았다. 갈 때마다 매일 “딱 이번 한 번만 가고 그만두자!”, “이 정도면 됐어. 포기하자.”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종교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만약 존재했더라도 이미 죽었다’라고 한 유명한 철학자의 말을 멋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나는 성악설을 지지하며 신 같은 건 나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이 의지하고 기댈 무언가가 필요해서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라 여겼다. 그런 반항적인 사고 때문이었을까. 핑계처럼 보이고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로 인해서 나의 청소년기의 시절을 온갖 비행과 말썽과 일탈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껏 나이를 먹어 오면서까지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사실, 처음 1년짜리 천주교 교리를 시작한 것도 열심히 교리를 공부해서 오히려 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해 보이겠다는 굳은 결심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난 그렇게 1년짜리 지루하고 따분한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잠만 잤다. 하품이 나오고 쏟아지는 졸음을 견딜 수 없었다. 교리 선생님이 눈치를 주실 때마다 괜히 왔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1분이 1시간 같았고 1시간이 1주일 같았다. 갈 때마다 매일 “딱 이번 한 번만 가고 그만두자!”, “이 정도면 됐어. 포기하자.”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던, 반론하고자 했던 질문에
이제야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다고?
내 대답은 No다!
이제야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다고?
내 대답은 No다!
그렇게 봄이 가고 가을이 갔다. 2주에 한 번 교리공부에 나가면서도 도대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는 나날이었다. 오기가 생겼던 것일까? 혹시나 이번 일을 계기로 언제나 포기하고 도망치기만 했던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던 걸까? 스스로도 납득이 안 가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날들이 지나가고, 벌써 1년째가 다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교리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2주 뒤 벌써 1년 과정이 끝나네요. 교리가 끝나면 곧바로 세례를 받을 겁니다. 축하합니다.” 해맑게 미소 짓던 선생님이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제가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느님을 믿지도 않는데요?”나는 반문했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빙그레 웃고 있었고 나는 그 후 2주 뒤 기어이 세례를 받고야 말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엉망진창인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아닌 줄 알았는데 내가 바뀌었단다.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허나 주변의 형들이나 아는 분들이 내가 많이 달라졌단다. 억지로라도 기도문을 외우고 성호경을 긋고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됐던 걸까? 주변 사람들이 어쩐지 요즘 내가 차분해지고 신중해졌다고 한다.
나보고 인상이 폈다고, 사람이 좋아졌다고 한다. 변화란 그런 걸까. 자신이 변하는 걸 자신도 모르면서 어느새 조금씩 나아지고 성장해있는 그런 것일까. 요즘에서야 느낀다. 내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다르게 봐준다면 분명 나는 달라진 것이라고.
결국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던, 반론하고자 했던 질문에 이제야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다고? 내 대답은 No다! 끈기 있게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달라질 거라 믿지 않았던 그 누군가도 반드시 달라질 수 있다. 그런 희망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누구나 바뀔 수 있다는 말을 세상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미래를 소망해본다.
지난 1년간의 인내와 고통은 이 달콤하고도 짜릿한 결실을 위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내가 보기엔 난 아직도 엉망진창이지만, 엉망진창인 채로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신부님, 교리 선생님, 주변분들에게……. 모두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
나보고 인상이 폈다고, 사람이 좋아졌다고 한다. 변화란 그런 걸까. 자신이 변하는 걸 자신도 모르면서 어느새 조금씩 나아지고 성장해있는 그런 것일까. 요즘에서야 느낀다. 내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다르게 봐준다면 분명 나는 달라진 것이라고.
결국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던, 반론하고자 했던 질문에 이제야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다고? 내 대답은 No다! 끈기 있게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달라질 거라 믿지 않았던 그 누군가도 반드시 달라질 수 있다. 그런 희망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누구나 바뀔 수 있다는 말을 세상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미래를 소망해본다.
지난 1년간의 인내와 고통은 이 달콤하고도 짜릿한 결실을 위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내가 보기엔 난 아직도 엉망진창이지만, 엉망진창인 채로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신부님, 교리 선생님, 주변분들에게……. 모두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