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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지영(아트위드 대표/예술 칼럼니스트)
백윤조 <WALK>
걷는다. 봄의 만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뚜벅뚜벅 걷는 일.
꽃들의 활짝에 유난 떨기도 뭣하고, 나무들의 푸른 기지개에 호들갑 떨기도 눈치 보인다. 그저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서 걷는다. 적당한 보폭으로 알맞은 속도에 맞춰서. 봄을 흘깃거리며 바람에 등 떠밀리며. 마스크 안에서도 들숨은 상쾌하게 날숨은 경쾌하게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너무 멀리 볼 것 없다. 발 아래만 보아서도 안 된다. 시선은 수평으로 자세는 반듯하게,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도록.
걷는 일은 많은 예술가의 사랑을 받았다. 괴테도 베토벤도 매일 산책을 하며 위대한 문장과 선율을 건져 올렸다. 또박한 글자처럼 걷다 보면 마음이 금세 온건해진다. 즐거운 음표처럼 걷다 보면 기분이 점점 유쾌해진다. 산책이 삶의 루틴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분명 특별한 매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일 것이다. 걸으면서 매력을 채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만만치 않게 잘 걷는 작가가 있다. 걷는 사람을 그리는 백윤조 작가. 언제나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그녀의 배낭엔 마치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헐렁하다. 삶의 자세같다. 운동화는 오래 걷기에 좋은 트래킹화. 생을 오래 길게 걸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백윤조 작가는 주로 걷는 사람을 그린다. 걷고 있는 그녀 자신이거나 우리 모두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무슨 일이 있어도 정체되지 않는 사람들.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겐 생기가 필요하다. 활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로 마음은 위축됐고 잠시 멈춤으로 모든 게 경직됐다. 모두가 애쓰고 있고 있는 힘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은 괜찮지 않고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엇? 평상심과 활력이다. 이 시절에 적응하고 나름의 생기를 회복하는 것. 자기 앞의 생에 집중하고 활기를 잃지 않는 것.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고쳐 앉는 것, 잃어버려도 좋을 책 한 권 옆에 끼고 씩씩하게 걷는 것. 물론 무작정 걷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단 걸으면 에너지가 움직인다. 온몸의 생동하는 근육과 슬몃 배어나는 이마의 땀이 살아있음을 증거한다.
물론 쉽지 않다. 전염의 시대에 타인을 더욱 경계하게 됐고, 병리적으로 특정된 사람들을 너무 쉽게 혐오하게 됐다. 불행은 조용한 친구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가 덜컥 손 잡아 오는 것만 같은데 우리는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다. 그저 불행 따위 나는 아닐거야, 나만 아니면 돼 하는 교만한 안일함으로 버틸 뿐. 평소에 보이지 않던 나약한 본질이 실체있는 공포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우리는 움직인다. 걷는다. 뛴다.
활력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고쳐 앉는 것, 잃어버려도 좋을 책 한 권 옆에 끼고 씩씩하게 걷는 것. 물론 무작정 걷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단 걸으면 에너지가 움직인다. 온몸의 생동하는 근육과 슬몃 배어나는 이마의 땀이 살아있음을 증거한다. 건강한 활력이 온몸과 마음에 퍼져나간다. 진짜 충전이란 생의 행간에 생기가 들어차는 것이다. 삶의 오선지에 리듬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걸어야 한다. 그림 속 사람처럼 씩씩하고 활기차게. 밝고 명랑하게. 이처럼 예술은 치유고 활력이다. 정중동.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는데도 마음이 들썩인다.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벌써 저만큼 성큼성큼 앞서나간다. 아직은 적당히 거리 유지가 필요하고 마스크도 필수지만, 우리는 생의 동행자들. 끝까지 함께 걸어야 한다. 마주 보고 활짝 웃어야 한다. 서로에게 반드시 닿아야 한다. '활력'이 우리를 제대로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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