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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겨울!

강원도 평창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눈밭, 코끝 빨개지는 알싸한 공기…. 내게 ‘겨울다움’은 이런 빛깔과
온도로 기억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올해 겨울은 겨울다움을 잊은 듯하다. 어느새 겨울의 막바지인 2월.
더 늦기 전에 진정한 겨울 풍경을 머리와 마음에 저장해두고 싶다. 겨울이 길고도 짙은 강원도 평창으로 나선다.
글·사진. 김수진

고즈넉한 겨울, 오대산 월정사 일대

뽀드득, 뽀드득. 순백의 눈길을 한 여자가 걷는다. 한 남자는 몇 발짝 거리를 두고 조심조심 뒤따른다. 그러다 남자는 고백한다. “그 핑계로 내가 계속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너와 같이.” 남자와 여자는 몇 해 전 큰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도깨비’ 속 김신과 지은탁이다.
드라마는 고백의 장소로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택했다. 눈으로 뒤덮인 순백의 숲길은 고백의 낱말들을 더욱 애절하게 우리에게 전달했다. 아름드리 전나무 약 1800여 그루가 늘어선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2011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약 1km 구간에 걸쳐 이어지며 길이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다. 초록빛 가득한 계절에는 싱그러움을, 눈꽃이 만발하는 겨울에는 황홀경을 선사한다. 전나무숲길 끝에는 월정사가 앉아 있다.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는 주변 자연환경이 수려할뿐더러 사찰 자체의 역사적 가치도 높다.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는 동시에 문화재도 탐방해보자.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다각다층석탑인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 48-1호)과 탑 앞의 석조보살좌상(국보 48-2호)-현재 월정사 경내의 좌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인근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은 놓쳐서는 안 될 관람 포인트다. 팔각 구층석탑 뒤로는 월정사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적광전(寂光殿)이 있다. 월정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적광전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보통 석가모니불을 모시면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적광전이라 부른다. 특이한 점은 월정사 적광전에는 실제로는 석가모니불이 있다. 이는 오대산이 화엄사상을 널리 전파했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적광전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설경과 문화재라는 일석이조의 여행은 선재길을 따라 상원사까지 이어진다. 월정사와 말사인 상원사를 잇는 약 9km의 선재길은 도로가 놓이기 전부터 많은 스님과 신도가 다니던 길이다. 편리한 찻길이 생긴 이후에도 선재길은 운치 있는 트레킹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단풍 명소라 가을에 가장 번잡하지만 뽀드득거리는 눈길을 걷기 위해 겨울에 찾는 이들도 많다. 상원사는 절집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보와 보물이 여럿 있다. 현존하는 온전한 형태의 통일신라 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인 상원사 동종(국보 36호), 예불 목적으로 제작한 국내 유일의 동자상인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221호) 등이 대표적이다. 월정사 일대는 조선 시대 5대 사고 중 하나인 오대산사고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오대산사고는 월정사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한국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타 이후 복원했다. 사고에 보관 중이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국보 151-3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반출됐다가 환수했다. 원본은 현재 서울 소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이나 월정사 주변의 박물관에서 영인본을 볼 수 있다. 2019년 10월 개관한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이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 오대산사고본 영인본을 상설 전시한다.
① 선재길 ② 상원사 ③ 월정사

이국적인 겨울, 대관령 3대 목장

오대산 월정사 일대가 한국적인 겨울 풍경을 보여준다면 대관령의 목장은 이국적인 겨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너른 고원 지대로 이뤄진 대관령에는 목장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삼양목장, 하늘목장, 대관령양떼목장이다. 비슷한 듯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대관령 3대 목장은 흔히 ‘한국의 알프스’라고 묘사되곤 한다. 1972년 개장한 삼양목장은 2007년 관광지로 개방됐다. 긴 목책로를 따라 산책하며 젖소와 양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발 1140m에 위치한 전망대가 핵심 명소 중 하나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동해까지 내다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산줄기를 따라 늘어선 대형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정취의 정점을 찍는다. 하얀 풍력발전기는 푸릇푸릇한 초원 위에서도 돋보이지만 새뽀얀 눈밭 위에서는 몽환적인 그림을 연출한다.
하늘목장은 1974년 조성됐으며 2014년에야 일반에 문을 열었다. 자연 순응형 체험 목장을 표방하며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천천히 걸어서 돌아보거나 트랙터 마차를 타고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다. 대관령양떼목장은 삼양목장과 하늘목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그만의 서정을 보여준다. 초지 위에 오롯이 선 움막이 베스트 포토존이다. 겨울의 목장은 다른 계절과는 결이 다르다.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양 떼가 노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대신 광활한 환상의 설국을 만나게 된다.
  • ④ 대관령 삼양목장
  • ⑤ 용평리조트

다이내믹한 겨울, 알펜시아리조트 & 용평리조트

대관령의 근사한 겨울 풍경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스키장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주 무대였던 알펜시아리조트와 국내 대표 스키장인 용평리조트가 모두 대관령에 위치한다. 평창동계올림픽 설상 경기 개최지로 선택된 대관령은 그야말로 눈의 왕국이다.
알펜시아리조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대비해 조성됐다. 동계올림픽 때 스키점프,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 경기가 열렸다. 스키점프 경기가 열렸던 스키 점핑 타워는 현재 일반인도 관람 가능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알펜시아리조트와 대관령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스키점프 경기장을 관람하는 스페셜 관광 코스도 선택 가능하다. 캐나다 휘슬러와 몽트랑블랑, 미국 아스펜 등 세계적인 리조트를 벤치마킹한 리조트 빌리지와 설질 좋은 스키장도 알펜시아리조트의 자랑이다.
알펜시아리조트와 이웃한 용평리조트 스키장은 다채로운 슬로프로 인기가 높다.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도 용평리조트에서 개최됐다. 스키어가 아니어도 괜찮다. 왕복 7.4km의 관광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1458m)까지 가보자. 케이블카로 이동하면서, 또 정상에 올라 각각 다른 높이에서 설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정상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흔히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수식어를 갖는 주목 등 희귀목도 많다. 운이 좋은 날이라면 겨울에만 피는 꽃, 상고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INFO

평창 대관령의 별미
대관령의 특별한 자연환경은 눈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풍경뿐 아니라 입으로 즐기는 풍성한 맛도 탄생시켰다. 대관령의 덕장에서 차가운 겨울바람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탄생한 황태와 청정 자연에서 자란 대관령 한우가 유명하다. 칼칼한 맛의 오삼불고기 또한 횡계 지역의 명물이다. 싱싱한 배추와 부추를 듬뿍 얹어내는 중식당 ‘진태원’의 탕수육도 대관령의 인기 별미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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