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의 애착관계
집에 TV가 없는 나로서는 ‘요즘 TV에서 누가 핫한가?’ 알 리 만무한데 그럼에도 확 떠오르는 인물과 단어가 있었으니... 금쪽이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오00 박사와 ‘애착관계’라는 단어이다. 2700년 어느 즈음에는 우리나라가 완전히 소멸할 정도로 요즘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아이가 귀하고 그만큼 부모-자녀 관계도 중요해져서인지 오00 박사가 출연하는 ‘금쪽같은 내새끼’와 같은 육아상담 프로그램이 인기인 듯하다.
‘애착(愛着)’이란 간단히 말하면 부모나 특별한 사회적 관계의 인물과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를 의미한다. 많은 심리학적 연구들에서 생애 초기의 부모와의 애착관계는 성장 후 대인관계의 질이나 문제 행동을 예측하는 중요 변수로 밝혀졌다. 금쪽이 방송에서도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보일 때에 전문가들은 부모 혹은 주양육자(부모가 아니라도 누구나 주양육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 이들과 아이들의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학생들과 함께 관람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케빈은 자신의 16번째 생일날 체육관에 친구들을 가둬놓고 활을 쏘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이미 그전에 아빠와 어린 여동생은 살해한 상태였다. 이 열여섯 살 소년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끔찍한 대량 학살을 하기 전에 소년은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된다. 어린 여동생의 애완동물을 죽여 싱크대 배수 구멍에 넣어두거나 에바(엄마)의 편애를 받는 여동생의 눈을 사고로 위장해 실명하게 하는 등 이미 심각한 일탈 행동을 해 왔던 케빈을 가족으로부터 분리시켜야겠다는 내용의 대화였다.
사실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는 않았는데 소위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였다. 물론 기질이 까다로운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발달 과정 중에 적대적 반항장애1)(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ODD)나 품행장애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가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던 에바에게 ‘원치 않았던 아이’였던 소년은 적대적 반항장애, 품행장애,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발전하는 외현화 장애 발현의 수순을 그대로 밟게 된다.
1) 적대적 반항장애(ODD): 분노, 과민한 기분 등 부정적 정서로 논쟁적, 반항적, 보복적인 공격 양상을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이는 장애
외현화 장애는 분노 등 부정적 정서의 조절이 어렵고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장애로 애착 형성 시기 부모(특히 어머니)와의 나쁜 관계가 장애가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원치 않았던 임신으로 태어난 소년은 끊임없는 울음으로 엄마의 자유를 구속하고 엄마는 공사장의 소음을 소년에게 되돌려 준다. 다섯 살까지 말을 하지 않던 소년에게 에바가 “케빈, 엄마라고 불러봐~.” 라고 말하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싫어!” 란 말을 내뱉는다.
서로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모자(母子)는 소년의 발달 과정 안에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엄마를 ‘엿 먹이기 위해?’ 배변훈련을 강하게 거부하던 케빈을 에바가 홧김에 집어 던져 팔을 부러뜨리기에까지 이른다. 이미 일반적인 모자 관계는 아니다, 당연히 이들 사이에 ‘안정적인 애착’이란 찾아볼 수 없다.
안정적인 애착의 조건은 주양육자(안타깝게도 주로 어머니)의 신뢰할 수 있는 양육 태도로 알려져 있다. 신뢰는 양육자의 책임 있고 일관된 태도로 형성된다. 그렇다면 에바는 나쁜 양육자였던 것일까? 에바는 비록 원치 않았던 케빈을 낳아 살짝 불행해지긴 했지만 엄마로서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케빈의 양육을 위해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고, 케빈과 관계를 호전시켜 보고자 둘째를 임신하기도 한다.
범죄의 원인론에서는 범죄자들이 어린 시절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던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도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했고 이춘재는 성학대를 경험했다. 잔혹한 성범죄를 행하고 치료 장면에서 불행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담자들을 만나곤 한다. 알코올 중독과 요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마약 등 약물 중독의 문제를 가진 내담자들의 어린 시절 속에도 백설공주 동화 속 계모와 같은 부모들이 학대자로 등장한다. 나는 치료 장면에서 내담자들의 애착유형을 탐색하곤 하는데, 실제 안정 애착 유형보다는 불안정 애착 유형을 많이 만나게 된다. Bartholomew와 Horowitz(1991)는 성인애착을 4개의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안정형 애착 외에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 모델과 타인에 대한 부정적 모델을 발달시킨 이들은 각각 집착형, 거부형, 두려움형의 불안정 애착유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원치 않았던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부정적 자기 모델을 발전시켜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아동성범죄자 되기도 하고, 아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관심도 가질 수 없었던 코카인 중독자의 아이는 부정적인 타인 모델을 발전시켜 대인관계를 아예 거부하거나 상대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하는 강간범이 되기도 한다. 본인의 정신적 문제 때문이든 아이에게 도무지 안정적인 사랑을 줄 수 없는 열악한 환경 때문이든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아이를 거의 죽을 만큼 때렸던 폭력 가정의 아이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두려움형의 애착유형을 발달시키는데 가장 좋지 않은 예후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로 성장하는 것이다.
소년이 어찌 품행장애2)(Conduct Disorder; CD)를 넘어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되었는가? 란 질문에서 출발했다. 되짚어 보니 ‘이거 원,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되는 것은 부모 탓이로구먼!’ 이런 결론을 내리기 십상인데... 그렇다면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부모가 문제일까? 이야기 중 한 학생이 엄마와 자신의 고질적인 갈등 관계에 대해 말했다.
자신은 심리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상담도 꾸준히 받고 노력하고 있지만 갈등의 맞은 편에 있는 엄마는 절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도 않고 ‘상담 따위는 개나 줘’ 태도를 고집하기에 이 갈등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학생은 중독의 문제가 있어서 그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역시 주양육자로 인한 불안정 애착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주양육자를 치료해야 하는데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게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치료자로서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로 초점이 모아졌다.
범죄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기에 ‘범죄자를 치료하기 이전에 주양육자를 치료해야 하는가?’란 질문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의견은 분분했고 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각자 범죄자를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고민해 보도록 했다.
2) 품행장애(CD): 공격적 행동을 기반으로 타인의 권리 침해, 사회적 규범 위반을 하는 장애, 종종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연결됨
물론 안정적인 애착관계 형성을 위해 주양육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부모들은 제대로 애착관계의 노력을 하지 않아 이 많은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걸까? 나는 안 풀리는 내 인생을 한탄하면서 부모님 탓을 많이 했다. 내가 이렇게 대인관계에서 눈치를 보는 것은 평가적인 엄마 탓이야, 늘 중요한 순간 위축되는 것은 ‘아들, 아들’ 했던 아빠 탓이야!
개인상담과 무수히 많은 집단상담에 참여했는데(물론 우리 부모님은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신 적이 없다) 나는 여전히 대인관계에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이런 내가 치료자로서 자질이 있는가 의문을 가졌던 세월도 길었다. 치료장면에서 만나는 애착관계 문제를 가진 내담자들에게 나는 그들의 부모님 탓을 잘 하지 않는다. 내담자의 역사를 잘 들어보면 부모들이 나름 노력한 흔적들이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아주 조금이라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내담자가 겪었던 상처에 대해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진다.
내담자들은 본인의 상처를 치료자와 함께 나누는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발달하고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 물론 이 과정은 개인의 특성에 따라 더 길어지기도 더 짧아지기도 한다. 안정적인 애착관계란 어느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노력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젖을 빠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주양육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이제 나는 많은 것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누군가의 양육자가 되어야 하는 나이로 성장했다. 나도 ‘느린 학습자’인 탓에 여러 치료과정을 거치고 있음에도 건강하고 안정적인 양육자로 성장하는 여전히 긴 여정 중이다.
누군가는 ‘마음 자리가 넓어진다, 마음에 근육이 생긴다’ 라는 등의 표현으로 이 성장을 묘사한다. 난 여전히 삶이 잘 풀리지 않고 관계도 미숙한 사람이지만, 내가 십여년 간 치료자로서 내담자들의 발달 과정에서 줄다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들의 양육자가 되고 그들이 나의 양육자가 되는 상호적인 애착관계를 맺고 있기에 그런 것 같다. 나만큼이나 천둥벌거숭이 같던 내담자들도 치료 과정 속에 마음속 자리를 조금씩 조금씩 내게 내어주고 있기에...
내가 만나 본 교정 시설의 치료자들은 한결같이 당신의 내담자들을 ‘금쪽같이’ 여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애착 대상이 되어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매번 눈물겨웠다. 그 과정 중에 금쪽이들이 탓하는 목소리(feat. ‘난 좋은 치료자가 아니야’ 자기비하 랩)에 좌절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치료는 내담자와 치료자의 상호작용 속에 이뤄지는 법! 교정 금쪽이들은 더 이상 소년 소녀가 아니기에 스스로 누군가의 양육자로서 성장해야 한다.
영화의 말미에 18세가 된 케빈을 만나러 간 에바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교도소를 나선다. “성인 교도소로 가게 되면 지금까지 소년수로서 받았던 보호는 사라지게 될 거야...” 초겨울 새벽 공기만큼이나 냉랭하고 분명한 에바의 어조에서 금쪽이에게 필요한 애착관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