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런 변이 있나
살다 보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미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어려운 잘못을 고백해야 하는 사람처럼 사동 출입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수백 번, 수천 번 드나든 곳이건만, 그 순간은 차마 그 문턱을 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우왕좌왕, 좌왕우왕, 갈팡질팡하기를 몇 차례, 결국 온수배식을 마치고 돌아온 사소가 출입문 밖의 나를 발견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사소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주임님, 설마…?”
그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에 나는 목이 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서두에 언급했던 그런 순간이다. 내 잘못도 아닌데 민망하고, 난처하고, 미안한 순간. 그러나 그렇다 해도 어찌하리. 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인 걸. 나는 결국 그녀에게 내가 해야 할 말을 전했다.
“네. 또 그렇게 됐네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아닙니다. 바로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분명 듣기 싫은 말이었을 텐데. 고맙게도 사소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서둘러 사소실로 들어갔다. 청소용구를 챙겨오기 위해서다.
오늘 하루만 세 번째,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힘들 일은 우리는 매번 생길 때마다 해야만 한다. 피할 수 없고, 게으름 부릴 수도 없다. 무슨 일이냐고? 그건 바로 치매 노인의 변치우기다.
“으아아아아!”
냄새가 빠지라고 열어둔 보호실 문밖으로 노인 수용자의 광기어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노인의 변 냄새도 같이 실려 오는 기분이었다. 벽이며 바닥이며 방충망이며, 온통 똥 칠갑을 해놓은 그곳을, 이제 사소와 내가 같이 치워야 한다.
가끔은 내가 교정기관에서 일하는 건지,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현재 한국은 고령화 사회다. 그러나 작금의 저출산 문제를 보면, 아직 고령화 사회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단 느낌이 든다.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이상, 이제 한국은 초고령화, 초초고령화, 초초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교정기관 또한, 예외 없이 초초초고령화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 교정계는 그 초유의 사태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현장에서 치매 노인 몇 명 관리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 따른다.
치매 노인하면 많이들 힘없이 누워 거동을 못 하는 무해한 노인을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치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인 치매 환자들도 많다. 그리고 교정기관에는 유달리 폭력적인 치매 노인들이 수용자로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치매 노인이 무슨 범죄? 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죄목은 정말 다양하다. 많이들 공무집행방해가 있다. 공공기물을 훼손하다가 말리는 경찰관을 폭행해서 들어오는 노인이 꽤 있고, 그 외에도 주거침입, 폭행, 절도, 심지어 사기까지 있다. 참 요상하기도 하지. 자기 몸도 잘 못 가누는 노인이 사기는 또 어떻게 치는 건지. 아무튼 그들의 죄목보다 당장 현실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돌봄이 필요한 약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옆에서 누가 밥을 잘 먹는지 봐줘야 하고, 대소변 실수를 하면 처리를 도와줘야하고, 때맞춰 약을 먹여줘야 하고, 소란을 피우면 달래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노인 거실에서 다른 노인 수용자들과 잘 지내는 것이다. 폭력성이 없는 치매 수용자의 경우, 대체적으로 같은 거실의 수용자들이 잘 돌봐준다. 폭발적 업무량에 시달리는 수용동 담당 근무자가 현실적으로 치매 수용자를 24시간 지켜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같은 거실 수용자들이 그들이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잘 보고 근무자에게 알려주는 일이 교정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폭력성이 있는 치매 수용자다. 같은 거실 사람들도 처음엔 참고 잘 지내보려고 해도, 치매 수용자는 끝도 없이 같은 거실 수용자를 괴롭게 한다. 계속해서 다른 수용자가 자기 물건을 훔쳐 갔다고 의심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루 종일 하거나, 쉽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거나, 대소변을 전혀 가리지 못하거나, 늘 주변인을 위협하는 치매 수용자는 결국 혼거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같은 거실 사람들과 마찰을, 싸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독거를 시키게 되고, 그러면 그때부터 담당 근무자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들은 간식을 달라며, 혹은 내보내달라며, 아니면 망상적 발언을 하겠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 비상벨을 누르거나, 대소변 실수를 하거나,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거실 내 물건을 파손하여 다른 수용자의 평온한 수용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그러면 수용인원을 아득히 초과한 지 오래인 교정시설에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근무자는 안 그래도 부족한 업무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치매 수용자를 보살펴야 한다. 밥을 먹지 않으면 가서 먹는 것을 도와주고, 너무 움직이지 않으면 혹여나 욕창이 생길까 자세도 바꿔주고, 대소변 실수를 하면 치워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혈압약, 당뇨약 같이 꼭 먹어야 하는 약도 시간 맞춰 먹이고, 소란을 피우면 또 가서 진정시켜야 한다. 언제까지? 그들이 출소하거나, 이송 갈 때까지…….
“막막하네요…….”
사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막막했다. 보호실 치매 수용자가 방충망에 대변을 아주 진득하게 발라 놨다. 사소는 수세미로 방충망을 닦아보려고 했지만, 방충망 사이사이 낀 대변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 이 방충망을 창문에 끼워두면, 바람이 불 때마다 보호실은 변 냄새로 가득 찰 게 분명했다. 이걸 어쩐다, 고민하던 중에 사소가 다른 층에 세척용 호스가 있는 것을 기억해 냈다. 세척용 호스의 수압으로 방충망을 청소해보자는 것이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다른 층에서 세척용 호스를 가져와 보호실 옆 화장실 개수대에 연결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화장실에 있는 사소에게 신호를 주었다.
“살살, 살살 틀어봐요!”
끼릭, 쏴아아. 내 신호에 맞춰 사소가 수도꼭지를 돌렸고, 곧 호스가 꿀렁댔다. 그리고……. 촤아악!
“끄아아악!”
호스를 든 사소와 그 옆에 있던 나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아니나 다를까, 세척호스의 강한 수압이 방충망을 시원하게 청소해줌과 동시에 사방으로 물을 튀겼다. 나는 그 물을 맞으며 비명을 질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힘들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교정시설이란 무엇인가?
교정시설은 수용자가 교정을 위해 들어오는 곳이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십수 년 후에 이곳은 더는 교정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수용자의 요양을 위한 시설이 되어버릴 것이 자명하다. 고령화 사회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실질적인 법 제도의 개정이 필요하다. 후문정책으로 가석방 후에 요양기관에 연계하는 것을 활성화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치매로 인한 범죄엔 수감보단 병원 치료 먼저 선행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치매는 물론 아직 정복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찍부터 약을 먹으면 좀 나아진다지 않는가. 그것도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치매 거실을 만들고 요양보호사를 특채로 뽑아 치매거실마다 상주하게 하는 건 어떨까 싶다.
물론 내가 앞서 제시한 모든 대안들은 다 단점이 있지만, 그런 완벽하지 않은 대안이라도 우리들이 머리를 모아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함께 생각해 본다면, 언젠간 좋은 대안이 나오겠지. 머뭇거릴 때가 없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이대로 넋 놓고 있다간 아무런 준비 없이 초초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럼 그때, 아니 이런 변이 있나!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하루 종일 변만 치우다 퇴근하는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막막한 교정 현실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모두 잘 먹고, 잘 싸시길. 일견 천해 보이는 말이어도,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이거야말로 가장 큰 축복의 말이라는 걸. 그러니까 다시 한번, 모두 잘 먹고, 잘 싸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