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전문가 칼럼

AI시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해자 교육 중심으로

글 · 김춘희 경북북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

교도소에서 교육을 진행할 때면, 수용자들은 “피해자 지원기관에서 왜 가해자 교육을 하느냐,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그 대답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아주 강렬한 메시지로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들지만, 그들을 격려할 만한 답변을 하게 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나누고, 출소 후 자신의 위치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피해자와 가족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용서임을 전할 때 숙연해지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다르게 살아보고자 마음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교육에 임하고자 늘 다짐한다.
먼저 경찰 단계, 검찰 단계, 법원 단계를 지나서,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에겐 어떤 회복적 사법이 의미가 있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이나 검찰이 가해자를 위한 미란다 원칙은 고지하는 데 비해, 범죄피해자를 위한 미란다 원칙은 존재조차 없다. 또한 가해자를 지원하는 예산에 비해, 피해자를 지원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생각하면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위한 직업훈련, 인성교육 등 많은 예산을 들여 다양한 교육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건강한 사회복귀를 통해 다시 한번 멋지게 살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그들을 골탕 먹이거나 애먹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형기만을 잘 마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와 단절된 시간의 갭을 줄이고자 함은 틀림없다.

첫 번째 단계: 피해자 공감하기(易地思之)

피해자지원센터에 의뢰되는 피해자를 만날 때마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절규>라는 그림을 그릴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자연 현상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심리상태가 뭉크의 일생을 불행하게 했던 것임을 알기에, 뭉크처럼 평생 힘든 삶을 살아갈 피해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고자 몇 가지 사례를 이야기하려 한다.
하나, 수능을 마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고생에게 한 손님이 “이쁘다, 며느리 삼고 싶다”라고 말하며 마스크를 벗기고 뽀뽀하며 껴안았다. 당신이 부모라면 울고 있는 딸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여고생의 아버지는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느냐”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한마디에 처참히 무너져서 칼로 팔과 다리를 촘촘한 그물망처럼 다 그으며 자해했다. 정신과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느라 대학 진학도 못 하였다. 누군가는 피해자가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나 회복 탄력성은 다 다르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여고 3학년, 그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불쾌한 감정에 대해 공감 또한 받지 못하였다.
둘, 센터에서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이란 책을 읽고 ‘앤에게 편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너가 책 속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 대신 큰 소리로 싸워줬다면, 무너지지 않았을 텐데 하고 서글프기도 했어, 아직 이쪽 세상에선 겁이 많아 앤. 하지만, 다가올 인연에 당차게 예쁘게 살아보려고 마음먹어 본다”라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는 “나도 꿈이 있었거든요. 모든 것을 상실한 채,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고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리 없는 쾌락 앞에 희생된 이 꽃 같고 별 같은 아이들의 상처는 언제쯤 아물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도 시간이 지나면 일반인에게는 쉬이 잊힌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아가고, 범죄 이전의 삶으로 회복될 수도 없다. 그들은 “감정도 멈추고, 삶도 멈추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공감하기”를 통해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고 피해자가 살아가는 참담함을 경청한다. 가해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의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까? 적어도 교육받는 그 순간만이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참회하고, 다시 잘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기를 바란다.

두 번째 단계: 가해자의 고충 이해하기 “가해자인 나도 힘들어요!”

피해자도 힘들지만, 수용자들도 힘들다고 한다. 수용 생활, 부모님의 임종을 못 지켜본 것, 자식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찬 것, 재판 과정에서 부모의 눈물, 수감 후 지인들의 무관심, 아빠 노릇, 남편 노릇 못한 것 등등.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피해자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용기 내는 수용자들도 간혹 있다.
어떤 60대 중반 아버지는 나지막이, 아이들 생일, 여름휴가, 졸업식을 한 번도 함께하지 못한 무심한 아버지라고 말한다. 그리곤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면서 3살 된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냈는데, 그 아들이 28년 만에 찾아와 “아버지랑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 줄 아시냐, 공중목욕탕 가서 아버지 등 밀어주고, 아버지 내 등 밀어주는 것, 그거 한번 하고 싶었는데 안 해주었다. 곧 결혼하여 자식 낳으면 아버지 안 보여 주겠다”고 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28년 만에 찾아온 아들은 아버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늘 지켜봤을 것이다. 가해자이자 아버지인 그에게 “수감생활을 잘하고 출소 후에 아버지가 있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면 태어나는 아이를 보여 주겠다 뜻이 아닐까요?”라고 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교육자의 입장으로서 그들에게 소중한 것을 알려주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여 그들이 사회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단계: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

교도소 내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20대 초반의 앳된 수용자가 자신은 디지털 성폭력으로 수감되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출소 후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마치 밥상을 차리듯 정성껏 그렸다. 뚝배기에선 김이 오르고 주변으로 반찬 몇 가지와 수저 한 벌이 놓인 단아한 밥상, 참여자들은 “출소 후 혼자서도 밥 잘 챙겨 먹으며 잘 살겠다는 다짐 같다”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출소 후 대학 진학을 할 것이며, 정성껏 차린 따뜻한 집밥 한 끼는 사람들을 든든하게 해준다.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집밥 같은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다짐이다”라고 말했다. 순간 모두 박수를 보냈다. 이 한 사람의 그림은 강사의 백 마디 말보다 힘이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우리 삶을 혁신하고 많은 분야에 적용되어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가져야 할 삶의 철학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수용자들은 출소 후 자신의 삶을 걱정했다. 무엇보다 건드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역린(逆鱗)이 건드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며 자극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자극에 바로 반응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자극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통해 마음의 품을 넓고 깊게 해야 한다. 수감 중에는 어떻게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독(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여행하며, 그들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꿈꾸고,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출소 후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마스크 댄스도 추고, 봉화 은어 축제에서 맨 손잡이로 은어를 잡아 현장에서 숯불구이도 해서 먹고, 산 정상에 올라 대자연의 너른 품에도 안겨보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도, 미술관에서 옛 그림도 만나는 등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삶을 여행하자. 그런 삶이 반복되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행복하니, 설령 누군가에게 자신의 역린이 자극받는 일이 있어도 그 순간은 고요히 지나가리니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도소에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수용자들이 어떻게 교육에 임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법으로도, 시스템으로도, 교도관도, 부모, 자식도 해줄 수 없다. 어떻게 마음먹고, 생각하고, 행동할지는 오직 그들만의 선택이다. 다만,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하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은 교도관과 사회 구성원의 역할이다. 그들이 삶 속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깨닫고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인간관계가 왜 중요한지를 깨우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가해자에게 수용 기간은 자신을 깊숙이 돌아보는 시간이다. 봄의 새싹이 매서운 한파를 견뎌내듯, 추운 지방의 나무가 뚜렷한 나이테를 만들어가듯이 내적 성숙을 이뤄내는 인고(忍苦)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이겠지만 새싹을 피우기 위해, 인생의 나이테를 촘촘히 만들기 위한 반드시 필요하다.

교정 아카이브 다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