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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도관이 천사라고?

글 · 현대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모든 사람에게 수호천사가 하나씩 붙어서 지켜준다는 신앙이 천주교에는 내려옵니다. 성경에 보면, 눈먼 아버지 토빗을 대신해서 길을 떠나는 토비야 옆에 천사 라파엘이 함께 합니다. 라파엘은, 길을 모르는 토비야 곁에서 잘 이끌어 줍니다. 길만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토빗을 격려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토비야의 아내와 토빗을 치유합니다. 라파엘이 이렇게 인도자, 치유자의 역할을 한 천사라면, 가브리엘은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전령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 탄생을 즈카르야와 마리아에게 알리는 역할을 천사 가브리엘이 하지요. 천사라고 하면, 흔히 착한 모습만 떠올리는데, 싸움꾼 천사도 있습니다. 미카엘 천사는 사탄과 싸웁니다. 전쟁에서 다른 천사들을 이끌고 악마와 싸우는 장면을 요한 묵시록에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밖에도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에덴 동산을 지키는 문지기 천사도 있고, 소돔이 멸망할 때, 롯과 그 가족들을 재촉하면서 구원하는 천사들도 나옵니다.

천사(天使)라는 말 자체가 하늘의 사자라는 뜻이듯, 천사는 본성이 아니라, 직무를 뜻합니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을 말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인간에게 와, 길을 안내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며, 하느님의 뜻을 알립니다. 악마와 싸우기도 하고, 중요한 장소를 지키기도 하고, 구원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천사가 본성이 아니라 직무라는 말은, 자신이 맡은 그 직무에서 벗어난다면 더 이상 천사라고 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면 그는 타락천사, 곧 악마일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본디 한 존재였는데, 천사 자신의 직무 왜곡 혹은 소홀이나 게으름으로 인해 악마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반성을 하게 합니다.
구치소에 구속되어 있었다는 신자를 만났습니다. 구속되어 신입 조사를 받을 때, 천주교라고 답했더니, 조사를 맡은 교도관이 자신도 천주교 신자라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천주교 기도문을 쓰윽 건네주더랍니다. 그게 너무나 큰 위로였다고 하더군요. 기도하고 기도했더랍니다.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저에게 몇 번이고 강조하였습니다.
교정 사목을 한다고 하지만, 저는 강당에서 대규모로 만날 뿐입니다. 종종 개별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기는 합니다만 짧습니다.

반면에 교도관들은 수용자들을 참 밀접하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수용자들에게 천사가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하고 있습니다. 계호를 하면서 수용자들과 함께 길을 걸어갑니다. 계호가 길을 안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교도관(矯導官), 바로잡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공무원이지 않습니까. 라파엘 천사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상처를 치유하였듯이, 교도관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 어린 눈빛이 수용자들에게 얼마나 위로와 격려, 응원이 되는지 모릅니다. 분명 구치소의 여러 장치나 시스템으로 자살을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교도관의 그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오히려 더 살게 하는 의지와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교도관이 심리 상담 공부한다고 들었습니다. 캄캄한 수용자들에게 더 전문적으로 길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이제 더 이상 자신과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훌륭합니다. 마치 에덴 동산을 지키는 이름없는 천사처럼, 외정문, 내정문을 지키는 교도관들도 있습니다. 낙담에 빠진 수용자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 민원과 업무를 하는 교도관들도 멸망 직전의 소돔 가운데 있는 롯의 가족들을 끌어내는 천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악마와 싸우는 미카엘 천사가 중요한 것처럼, 기동대도 천사의 역할입니다.
1960년대 말, 사형 확정자들이 많던 시절, 사형 집행 전에 하느님이라도 알기를 바라면서 하느님 말씀을 절박하게 마치 가브리엘 천사처럼 전하던 교도관의 행동으로 우리 위원회는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은 종교 담당 교도관들이 그 역할을 하겠지요. 하지만 종교 담당 교도관들만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면, 천사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해 내실 것입니다.
아, 까먹지 않으셨죠? 사탄도 원래 천사였다는 것 말입니다. 자신의 직무를 소홀하거나, 아니면 그 직무를 자신의 욕망,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면, 천사가 아니라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교도관, 참 중요한 직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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