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피디의 시각으로
바라본 교도관
절도, 사문서위조, 명예훼손, 군사시설 보안관련 위반, 그리고 아동학대 특례법 위반 등등. 이건 교도소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전과 많은 어느 범죄자의 기록이 아니다. 바로 나의 죄명들이다. 지난 7년간 나는 수많은 사건의 ‘피의자’로 살아왔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이 사실부터 안다면, 나를 정말 질이 나쁜 사람이라고 크게 오해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인성이 아닌 직업 때문이다. 내가 SBS 교양국 PD이자, <그것이 알고싶다> 연출자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그것이 알고싶다>를 연출했다. 그 프로그램을 연출했다고 하면, 간혹 나를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나는 SBS라는 기업의 일개 사원일 뿐이다. 단지 조직의 인사명령에 따라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부서’로 발령받았던 것이다. 월급쟁이 입장이니, 당연히 발령받은 부서에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야했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나의 업무때문에 장장 7년 동안 여러 수사기관에 서 소환당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나를 ‘피의자’로 만든 사람들의 면면도 참 다양했다. 절도 혐의로 고소한 사람은 내가 만든 방송이 나간 직후, 준강간을 저지른 죄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 사람과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불법 오피스텔 성매매 수십곳을 운영하다, 현장에서 모두 체포됐다. 물론 그 체포의 순간도 우리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나를 고소한 사람중에는 웹상의 여러 유명 순위나 차트를 조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 역시 우리 취재를 통한 확보된 증거로 기소되어, 법적인 처벌을 받았다. 권력을 악용해 불법을 저지른 죄로 실형을 받고 해임된 공무원 역시 나를 상대로 고소했다. 그 외에도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나를 만난 여러 수용자들이 나를 고소했고, 덕분에 나는 30대의 대부분을 ‘피의자’의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
괴롭고 고달팠지만, 솔직히 말하면 마냥 힘들진 않았다. 아니, 나는 꽤 살만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내 노력을 인정해준 덕분이었다. 소위 말하는 ‘그알PD’로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일이 많다. 특히 고소를 당하면 당할수록, 더 많이 칭찬하고 격려해준다. 모순된 일같지만 실제로 정말 그렇다. 아니, 월급받으려고 회사에서 시킨 일을 한 것뿐인데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되다니. 게다가 ‘피의자’인데도 격려와 응원을 받는다니, 솔직히 세상에 이런 직업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딱 2년 전, 비슷하게 고소를 많이 당하는 직업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이 예상하는 것처럼, 그 직업은 바로 교정공무원이다. 그들은 ‘그알PD’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이유로 고소를 당한다. 그래서 처음엔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심지어 고소를 하는 주체가 수용자라는 점도 비슷하니 말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칭찬은 커녕 그 어떤 격려도 받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나의 직업은 세상 정의롭고 사명감 넘치는 사람처럼 과도하게 포장되기도 한다. 반면, 교도관의 이미지는 너무 좋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 속 교도관들은 몰래 수용자에게 담배를 팔며, 온갖 비리에 눈 감는 존재다. 심지어 교도소장실은 모든 로비와 불법행위가 발생하는 범죄 현장으로 표현될 정도다. 그걸 보며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교정공무원을 ‘간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니 간혹 현장에선 수용자들조차, 교도관은 못할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엔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직업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순사’라 불리던 형사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드라마나 영화 속 형사들 역시 비리 그 자체였다. 불법업소에서 뒷돈을 받고, 친한 사람의 범죄마저 덮어주는 존재였다. 흥행했던 영화 <투캅스>만 떠올려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즘 사람들은 ‘수사’에 대해 물으면, ‘과학수사’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프로파일러’는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야 하는 인기있는 전문직종이 되었다. 그리고 <용감한 형사>라는 흥행 프로그램에서는, 전국의 일선 형사들이 매주 한 명씩 자신의 사건을 들고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형사가 존중받는 직업으로 바뀌는 것이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군인들은 이미 수년 전에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군부대 내부의 모습을 낱낱이 공개했다. 연예인들의 리얼한 체험을 바탕으로 군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특수부대원이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전직 특수부대원들은 현재 유명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기도 한다.
또다른 제복공무원인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다. 소방관은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해도 근무처우가 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시민들이 연민을 갖고 바라봐야할 직업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소방관 역시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열정 넘치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수다. 그들 역시 10년 전 방송된 <심장이 뛴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각지의 소방서를 있는 그대로 공개한 적이 있다. 그들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 우리 사회를 위해 일하는지, 매주 1시간씩 시민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매년 6월 6일, 현충원에 모이는 제복공무원 중 여전히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직업은 교정공무원이 유일하다. 교도소 근무의 보안규정상, 대중 노출이 어렵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인 역시 보안을 철저히 준수해야 하고, 경찰이나 소방관도 실시간으로 사건에 대응하며 지켜야 할 비밀이 매우 많은 직업이다. 물론 작년에 방송된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를 통해 서울남부구치소, 서울남부교도소, 그리고 청주여자교도소의 내부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출했던 나는, 교정본부에서 제작에 크게 협조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아쉬웠다. 나보다 수백 배는 훌륭한 교도관들이 이렇게 많은데, 세상에 알려지지 보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칭찬이나 격려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가슴 아팠다.
조금 다른 이유로,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유명한 ‘부산 돌려차기사건’의 피해자다. 그 분과 종종 대화를 하다보면 그런 얘길 하곤한다. 가해자의 보복범죄를 막을 수 있는 건, 교도관밖에 없다고 말이다.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부산 돌려차기사건’의 가해자는 공공연히 피해자에게 보복하겠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런 가해자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은 20년 남짓. 그 시간동안 가해자를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교도관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먼훗날 피해자를 구해줄 사람이 교도관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범죄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교도관들이 더욱 떳떳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교도관이 드라마 속 ‘간수’가 아닌, 수용자와 상담하고 교화시키는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제는, 모두가 나서야할 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교도관들이 여러 압박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한 발 더 나아갈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순간에도 새로운 범죄의 최전선에서 우리 사회를 지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교도관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