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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록의 의미

글 · 정미리 대전지방교정청 분류센터 교위

분류센터에서 정밀분류심사는 수용생활기록부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기본적인 신상을 확인하고 나면 범죄기록과 수용생활 중 징벌은 없었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그렇게 다양한 내용의 기록을 읽어나가다 보면 내가 만날 수형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점차 그려진다. 그렇게 분류센터에서 각종 기록을 살펴볼 때 각 기관의 분류심사과(분류실)도 함께 바쁘게 움직이는데, 심리검사를 사전 실시하여 판결문 등과 함께 분류센터로 송부하고, 면담 일정을 상의해 당일 면담 과정까지 지원한다.

그렇게 도착한 자료들을 읽고, 심리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직접 면담이다. 면담 중 기록된 부분을 확인하고, 본인이 직접 작성한 내용도 구체적으로 더 질문한다. 또 심리검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 상태도 확인하면서 앞으로 원만한 수형생활을 할 수 있을지, 출소 후 재범가능성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해 나간다. 물론, 우리가 미래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예측을 위해 과거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방식을 살피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말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정밀분류심사 면담 중 만난 수형자는 하나같이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날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라는 마음의 소리가 함께 따라오지만, 일단 내 마음의 소리는 줄이고 말하는 태도에 주의를 기울여본다. 언어보다 비언어가 주는 정보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의 소리가 견딜 수 없이 커지는 날이면, 나는 수형자의 하소연은 잘라내고, 심사에 필요한 정보들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수형생활 중 마음가짐은 어떤지, 하고 싶은 작업은 있는지, 접견은 누가 오고 있는지, 잘못을 인정하고는 있는지 등을 질문하고 면담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먼저 수용생활기록부를 읽고, 직접 만나 면담을 마치고 나면 다음은 이를 통합하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기록과 면담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은 수형자 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수형자의 경우, 기록은 타인에 의해서, 면담과 심리검사는 자기 보고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크게 확인되는 것 같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그 차이들을 살피며 목적과 의도가 있는 일치와 불일치를 찾고, 그러한 특성이 범행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평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나는 교정기관에서 일하기 전 민간기관에서 정신질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했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면담하고 평가해 왔는데, 교정기관 내 평가와 면담은 정신병원이나 다른 민간기관에서의 평가와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고 느낀다. 특히 수형자를 평가할 때는 기록과 관찰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많은 재범위험성 평가 도구들이 그 평가 근거를 공식화된 기록에서 찾으라고 권고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정밀분류심사를 위해 기록은 매우 중요한데, 나에게 기록은 개인적으로도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내가 교정기관에서 일하기 전 상상한 교도관은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그 생각은 더 견고해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기록에 있다. 정밀분류심사를 하기 위해 살펴본 수용생활기록부에는 사회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수많은 교도관들의 수고가 묻어 있었다. 형을 집행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것들은 물론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또는 어떤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에 불과해 보일 수 있는 것들도, 안전이라는 큰 숲을 이루는 작은 나무들로 그 역할들을 감당해 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나는 아직은 미비하지만 안전한 숲의 쓸모 있는 나무 하나로 노력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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