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전문가 칼럼

교정(矯正)의 창(窓)

글 · 최용준 (現) 부산구치소 교정정책자문위원 / (前) 부산구치소 교정관

많은 법정 기념일이 달력에 작은 글씨로 인쇄된 것을 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법정 기념일이 있다. 30년을 넘게 근무하다 퇴직한 교정직 공무원은 교정의 날을 기억한다.
매년 10월 28일.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로부터 되찾은 자주적인 교정행정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법 집행의 마지막 단계인 교정현장이, 그 현장의 교정공무원이 78년 넘는 세월을 대한민국이 자주적인 국가로서 유지해 올 수 있게 한, 버팀목의 한 축이라는 자부심이 들게 하는 기념일이다.
추억은 힘든 과거를 미화하고 합리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교정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많은 희로애락이 퇴직한 지금에 와서는 그저 잘 견뎌내고 참아낸 시간으로 다가온다.
법조인은 법(法)의 창(窓)으로, 법창야화(法窓夜話)로 현장에서의 경험담과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의료인은 의창야화(醫窓夜話)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언급하며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이야기한다. 힘들었던 기억을 추억으로 소환해서 자신들의 직업적 소명의식을 고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알리면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홍보하기 위해서 그런 언행을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직업적 이야기를 한다는 그 자체부터가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정직 공무원으로서 30년을 넘게 근무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공무원으로 입직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근무가 야간 근무부서에 배치를 받아 근무하는 야간업무이다. 당시에는 야간 보안과 세 개 부가 매일 밤을 교정현장에서 특히, 구금되어있는 그들의 수용 거실 창을 바라보면서 24시간을 보내게 된다. 오전 9시 이전에 출근해서 다음 날 9시 이후에 퇴근하는 보안과 야간근무.
교정직 공무원이야말로 창(窓)을 바라보며 근무하는 직업인이다. 교정(矯正)의 창(窓)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넓은 밖의 세상이 아닌 수용 거실의 좁은 창이었다. 근무 연수가 얼마 되지 않던 그 시절에는 선배 교정공무원의 언행이 곧 교본이었고 지침서 역할을 했다. 언제나 현장이라는 단어에 익숙해 있었으며, 범죄인에 대한 반감이 높았던 기억이 난다. 야간근무는 한 근무지에 전야 근무와 후야 근무로 나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전야 근무자는 보안과 앞마당에 집합해서 호명으로 확인한 후 근무지로 투입된다. 여름에는 모기와 더위로 체력적 소모를 해야 했고, 겨울에는 추위와 연탄불로 인해 몽롱함과 싸워야 했다. 그래도 전야 근무자는 새벽 1시경에 침상에서 오전 6시까지 취침을 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후야 근무자는 다음 날 퇴근 시까지 근무했다. 보통 여름이나 겨울을 보낼 즈음에 사직서를 쓰고 퇴사하는 직원이 늘어난다. 공무원으로서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고, 군 복무를 생각하게 하는 근무형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한솥밥을 먹고 한 침상에서 잠을 자는 같은 부 야간 직원들의 동료애는 컸던 기억이 난다. 낮 근무를 하는 근무일에는 퇴근하면서 술 한잔을 기울이며 직장 이야기를 하면서 ‘공무원’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새로운 직원이 같은 부로 전보되거나 신규 직원으로 발령받게 되면, 비번 일 아침에 운동장에 모여 축구 시합을 하면서 같은 부가 된 것을 축하하며 축배를 들기도 했다. 그때만큼은 야간으로 인한 힘든 기억보다 새로운 단합을 위한 동료애가 컸다. 90년대 초에는 자가용도 몇 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직원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대중교통으로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다 보니 퇴근 후 술자리는 매우 빈번했다.
동료애가 강했던 만큼 함께 발령을 받거나 함께 채용시험에 합격한 동기들의 연대는 끈끈했다. 그만큼 자주 만났고, 만나면 주로 술자리였으며,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어려웠던 지난 근무를 잊게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직장 하위문화가 형성되었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지나면서 근무 여건이 개선되어 갔다. 급여에 대한 개선은 직장 보직에 대한 의식 개선으로 이어졌으며, 야간근무를 선호하는 직원이 생기게 되었다. 국가 공무원으로서의 교정공무원 위상이 좋아지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
명절에 친척을 만나거나 결혼을 주선하는 자리에서 직업 이야기할 때에는 교정직 공무원이라는 표현 대신 법무부 직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교정직 공무원들이 모여 있을 때는 교도소나 구치소의 근무와 수용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개선 의지를 보였지만, 일반인에게는 직업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교정기관이 이전하려고 하면 아무도 살지 않는 산이라도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서 교정기관 이전 반대 현수막을 거리 곳곳에 건다.
법 집행의 마지막 보루(堡壘)라고 하는 교정현장에서 범죄인의 구금확보와 재사회화를 위한 교정교화에 노력하고 있는 교정공무원이지만 근무 여건과는 별개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많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국가 공무원으로서 교정공무원에 대한 인식 개선은 교정공무원 자신의 직업 소명의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교정공무원 채용에서 전문분야 전공자인 변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을 채용해서 수용자 처우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 신규 직원은 교정공무원 합격을 축하하는 선물로 가족으로부터 신형 자가용을 받았다고 한다. 직업과 생활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의식은 많이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 관점에서 교도관이라는 직업이 안성맞춤인 듯도 하다. 그에 반해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더딘 것으로 보인다.
교정공무원이 존재하기에 ‘국민이 편안하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유지될 수 있다는 자부심. 국가 공무원으로서 교정공무원은 퇴직하면서 갖는 추억의 기간이 아니라, 근무하면서 나타나는 현재의 보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100세 시대인 지금의 퇴직은 제2의 인생을 위한 또 다른 선택의 시기이다. 60세에 퇴직하더라도 근무한 만큼, 또는 그 이상 더 영위해야 할지도 모르는 삶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모든 만남의 시작은 낯선 존재였으며 처음이었다”

비교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만남을 시작하자.

교정(矯正)의 창(窓)에서 바라본 지금의 교정은 현재의 나 자신을 존재하게 한 터전이며, 가족을 형성할 수 있게 한 창조자이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한 길잡이이다.

교정 아카이브 다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