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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교도관으로,
그리고 상담자로 살아내기

글 · 전병미 청주여자교도소 심리치료센터 교감

‘어떻게 하면 교도관과 상담자 두 가지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그럴 때면 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현장 전문가로서 생각이 많아진다. 아침에는 수용자 거실에서 거실검사를 하고 오후에는 그 수용자와 심리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주는 부담감을 알기에 말로는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교도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교정이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상담자이기에 수용자가 교정시설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너무나도 상반된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는 것이 고민스럽고 어렵기만 하다.
교회직으로 채용되어 수용자 교육 교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이십여 년이 되고 심리치료 업무를 하며 집단상담 진행자로 살아온 시간이 십여 년이 되었다. 긴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된 경험의 틀로 교정(矯正)을 보는 것에 익숙한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게 적절할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여전히 부족한 교도관이지만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작게나마 시사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사례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 사례는 심화교육생 집단상담을 하면서 겪었던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던 한 구성원(이하, 도라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단 초기였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기라서 신뢰감을 쌓기 위해 별칭, 좋아하는 계절과 이유 등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변화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지, 자신의 변화단계는 어디에 속해있는지,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어떤 상태이고 싶은지를 다루고 있었다. 다른 구성원이 도라지 소개가 끝나고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월급은 얼마인지 질문하자 도라지는 뚱한 표정으로 직업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화를 버럭내며 복도로 뛰어나갔다.
당시에는 집단상담 경험도 적었고 이런 수용자를 만난 적이 없었던 터라 너무 당황스러웠고 얼른 잡아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다. 다행히 도라지는 복도 끝에서 화장실 쪽으로 몸을 틀었고 나는 헐레벌떡 뛰어가 창문 앞에 서 있는 도라지와 이야기하게 되었다. 집단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이유를 묻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변변찮은 머리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농사밖에 없었는데 다른 직업은 없었냐는 질문이 자신을 형편없는 놈이라고 하는 소리로 들렸다면서 자신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대한 후회와 잘못을 구하였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다시 집단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도라지는 다른 구성원의 말투가 맘에 안 들어서, 피드백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아서, 진행자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복도를 여러 번 뛰어갔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던 어느날, 나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교정시설의 안위를 책임지는 CRPT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CRPT가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가려던 도라지를 즉시 체포하여 도라지는 조사실에 격리되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뼈저린 반성문과 센터 직원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도라지는 훈계 처리되었고 이후 개인상담을 통해 갈등에 대한 부정적인 처리방식에 대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대화방법을 훈련하였으며 이후 프로그램 중 갑자기 교육실을 뛰쳐나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사례 속의 ‘좋은 상담자’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 정신분석의 말로 Acting out을 풀이해보면 ‘스스로 인식하거나 인식한 상태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갈등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랬다. 나는 이런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구성원을 잘 설득하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잘 해내는 상담자이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혼자서 해보려고만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도움자가 있었고, 그 도움을 받는 것이 실패한 상담자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교도관으로서 잘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도관인 상담자’로 살아내려면 구성원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 필요한 경우 관련 직원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고, 동시에 상담자로서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구조화하고 목적과 기법 등 내담자에게 맞는 적합한 상담도 해야 하는 것이다. 도라지의 사례는 이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사례였다.
두 번째 사례는 상담 장면에서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같은 거실에 있는 수용자 때문에 도저히 혼거할 수 없으니 독거하도록 요청하는 구성원(이하, 탱크)에 대한 이야기이다. 탱크는 사전면담을 할 때부터 자신이 얼마나 좋은 가정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는지를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구성원이었고 다른 구성원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초지일관 주장하면서 다른 구성원에게 골치아픈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심화교육 프로그램은 두 명의 진행자가 함께 진행하게 되는데, 불안정한 애착으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어 범죄로 이어진 구성원들에게 모델링이 되기도 하고 전이과정을 통해 안정적인 애착 경험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진행한다. 나의 짝꿍 선생님은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으면서도 잘못된 행동에 대해 따끔하게 혼내시는 분이었고 그래서 서로 좋은 시너지를 내면서 집단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선생님과 나는 탱크의 불만과 자신의 영웅담이 섞인 과거의 이야기를 2시간 이상 들어줄 때도 있을 만큼 애를 썼는데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불평으로 진행자들이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을 만큼 지장을 주었을 때 발생한 일이다.
상담시간을 50분으로 정해두었음에도 탱크는 50분이 넘도록 혼거에 대한 불편감을 쉼없이 쏟아내었고 진행자가 집단을 하고 난 뒤라 지친 상태이기에 다음 상담에 다룰 내용을 안내하고 상담을 마무리하려 하였다. 그런데 동료 선생님께서 탱크와 따로 이야기를 더 하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둘만의 공간에서 선생님의 따끔한 훈육이 시작되었다. 동료 선생님은 다양한 수용자를 다룬 경험을 갖고 있는 상담자였고, 내담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수용자로서 거실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의 이기적인 생각과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고 수정해야 할 이유에 대해 탱크의 태도를 예로 들어 자세히 지도하였다. 그리고 타 구성원에 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상담하고 있는 진행자의 심정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해 주었다. 불평과 불만으로 감사는커녕 당연한 듯 행동했던 탱크는 강력하지만 세밀한 지도에 입을 닫게 되었고, 그 날 이후 탱크는 진행자인 나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다른 구성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라며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Eric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를 살펴보면 각 단계 마다 해결해야 할 위기와 갈등이 있으며 그 단계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게 될 때 얻게 되는 경험들을 기본적인 덕목(Virture)으로 불렀다. 이러한 덕목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에 매 순간 위기를 잘 넘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탱크의 경우 학령전기인 3단계에 머물러 있어 자신의 한계점이 무엇인지 탐구함으로써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어야 하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고 목적성이라는 덕목을 얻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탱크에게 ‘수용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 교도관의 입장에서 지시적으로 설명하였고, 왜곡되고 이기적으로 얼룩진 사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탱크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교도관과 상담자의 역할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것처럼, 우리 역시 때로는 교도관의 입장에서 단호하고 엄격하게, 또 때로는 상담자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성폭력사범 프로그램 ‘책임있는 성’에서 지켜야 할 원칙 7가지 중에 ‘경계(經界)’라는 것이 있다. 진행자로서 이 경계를 설명할 때 ‘국경’을 예로 들곤 한다. 유럽에 가보면 맞닿아있는 국가들간 국경을 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코로나팬데믹이 발생하자 국가들은 외국인에 대한 경계를 살벌히 함으로써 국경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였다. 국경은 그 역할이 있기에 분명 존재해야 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우리는 국경의 경비를 강하게도, 혹은 약하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교도관과 상담자 사이에도 그러한 역할 경계가 있다. 필요에 따라 교도관으로서 위기상황에는 경계를 강화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되, 상담자로서 내담자의 안정된 심리 상태를 끌어내야 할 때는 경계를 완화하여 지지적이고 공감적인 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나들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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