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정시설의 디자인 특성 및
기준에 관한 연구(상)
교정행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정 선진국’으로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국가를 쉽게 떠올릴 것이다. 그에 비해 독일의 교정행정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인적, 물적 교류도 드문 게 현실이다. 하지만 국외출장을 준비하며 사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독일 교정행정을 이끄는 두 원칙은 자유형은 자유 박탈에 족하고 더 이상의 고통을 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교정시설의 환경은 가능한 외부사회와 유사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외부와의 접촉은 가능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수용자들은 작업에 대한 임금을 받는다. 동료 수용자들과 다양한 그룹을 만들어 활동할 수도 있다. 쉬는 시간과 개인 프라이버시(privacy)를 보장받는다. 거실 안에서 포트 등을 이용해 물을 끓여 자유롭게 커피와 차를 마신다. 심지어 소형 과도로 과일을 깎아 먹기도 한다. 담배도 거실과 운동장 등 지정된 장소에서 자유롭게 피울 수 있다.
교도관들은 입소 단계에서부터 수용자의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상담을 하고, 사회 내 다양한 전문가와 연결해준다. 심지어 구속으로 인해 처리하지 못한 개인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주려고 노력한다. 수용자들은 특별하게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서는 차단벽이 없는 곳에서 교도관의 감시 없이 접견을 할 수 있다. 특히 형기를 마친 보안처분 수용자들에 대한 처우는 교정시설 안에 있는 일반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물론 독일 교정행정과 비슷한 행정은 유럽 여러 선진국에서도 볼 수 있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특별한 교정 이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운영원리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현지에서 방문한 독일의 교정시설은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JVA Schwalmstadt),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제1 교정시설(JVA Frankfurt am Main Ⅰ), 뮌헨 스타델하임 교정시설(JVA Stadelheim) 세 곳이었다. 이 가운데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시에서 1시간 30여 분 떨어진 외곽에 있었을 뿐, 나머지 두 개의 교정시설은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들 시설을 살펴보면서 독일 교정시설의 디자인 특성 및 기준을 탐색해 보았다.
현지 조사는 그 현장의 실감과 살아 있는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점에서 자료연구와는 다르다. 교정시설의 환경이 수용자의 처우와 사회복귀에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며 수용자의 심리적 안정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따라서 구체적인 교정시설 방문 기록을 세밀하게 기술하고자 했다. 다만, 시간 관계상 주요 사항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이 허락되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하며 추후 독일 교정행정기관과 공식적이고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도 한국 교정행정의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의 교정행정에 대한 대체적 지식을 얻고 난 뒤, 독일 교정시설1)에 대한 현지 출장을 통한 참관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지식적 측면에서의 정리나 독일 교정행정에 대한 일반적 소개보다는 현지 방문조사의 특성에 맞추어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느낌을 충실히 전달하고자 했다. 전체의 개요보다는 방문한 기관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주안점을 둔 보고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문해 살펴본 개별 기관들에 대한 조사 내용을 종합해 보면 독일 교정행정과 교정시설의 디자인 특성 및 기준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Justizvollzugsanstalt(요스티스볼츠혹스안슈타트)는 독일의 교정시설을 뜻하는 말로 JVA로 약칭해서 표기한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correctional facility)’이라는 의미이다. 과거 독일에서는 교정시설을 가리키는 말로 Zuchthaus(주흐타우스),Gefängnis(거팽니스), knast(크나스트), Einschließung(아인슈리스홍) 등의 다양한 용어를 사용했다. 대체로 감옥, 교정시설, 형무소 등의 의미이다. ‘Justizvollzugsanstalt’라는 용어는 1977년 1월 독일 연방정부에서의 ‘형벌집행법(Strafvollstreckung)과 행형법(Strafvollzug) 제정 시 교정시설을 뜻하는 용어로 처음 등장했다. 현재 독일의 교정행정에서는 한국과 같이 교정시설을 교정시설과 교정시설로 구분해서 표기를 하지 않으며 ‘Justizvollzugsanstalt’로 통칭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 30여 분을 달리다 보면 ‘슈발름슈타트(Schwalmstadt) 시’가 나타난다. 시원하게 뚫린 아우토반(autobahn) 주변으로 펼쳐진 푸른 초지와 짙은 ‘탄넨바움(tannenbaum: 전나무)’숲이 주는 풍광은 이방인들의 마음에 평화로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슈발름슈타트 시에서 다시 동쪽 외곽으로 10여 분을 가다 보면 ‘치겐하인(Ziegenhain)’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가 우리 일행이 방문할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JVA Schwalmstadt)’2)이 있는 곳이다. ‘치겐하인’ 마을의 남쪽 입구에는 사냥용 화승총을 들고 있는 남자 조각상 하나가 있다. 별 모양의 요새 조형물 위에 서있는 조각상은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예상했던 대로‘치겐하인’은 과거 군사 요새가 있던 곳이다. 1537년부터 1546년 사이 치겐하인에는 영주의 숙소, 무기고, 곡물 저장고, 성당 건물 등이 들어섰다. 조각상 주변의 안내판에는 과거 치겐하인 요새의 간략한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한눈에 봐도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별 모양 요새(star fort)’3) 초기 모습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명에는 ‘치겐하인’ 요새가 1618년부터 1648까지 유럽을 휩쓴 30년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견고함을 자랑했다고 나와 있었다. 당시 헤센 주에는 4개의 요새가 있었으나 이곳만이 유일하게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2)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JVA Schwalmstadt)’은 2022년 OTT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Netflix)의 프로그램 ‘지상 최악의 교정시설에 가다(Inside the world’s toughest prisons)’ 시즌 4에서 방영된 곳임
3)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 등의 다각형 요새의 주변에는 해자를 파 방어력을 극대화한 요새는 ‘(성형요새: 成形要塞, trace italienne)’라고 부르며, 이를 더욱 발전시킨 프랑스 공병감 ‘보방’의 이름을 따서 ‘보방요새’라고도 부름 https://en.wikipedia.org/wiki/Star_fort
눈길을 돌려 찬찬히 조각상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마을 전체가 깊은 해자(垓字)로 둘러싸여 있었다. 현재 해자의 폭은 30미터 정도이나 과거에는 해자가 두 겹으로 해자의 전체 폭이 65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규모의 거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3미터가 넘는 깊이의 해자 속에는 중세시대의 각종 병장기와 1·2차 세계대전 당시의 흔적 등이 발굴된다고 한다.
조각상에서 해자를 가로질러 놓인 다리 위를 지났다. 좌측으로 짙은 암갈색의 직사각형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좌측 상부 벽면에 뾰족한 첨탑이 돌출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 교회 건물로 보이기도 했다. 이곳은 우리가 참관할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부속 시설로 55세 이상의 남성 노인 수형자들이 생활하는 교정시설이였다. 일종의 ‘슈발름슈타트 지소(kornhaus)’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시설은 1882년 곡물 저장고를 여자 교정시설로 활용하여왔던 곳이라 하는데 2005년부터 여자 교정시설에서 노인 교정시설로 기능이 바뀐 상태였다. 고색창연한 건물은 도로와 울타리가 없이 붙어있었으며 촘촘한 창문 가림막 틈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직원에게 들은 바로는 이곳은 55세 이상의 남성 수용자들로 범죄성이나 폭력성이 낮은 수용자들로 24시간 거실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작은 지소 건물 안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인 교정시설에서 북쪽으로 100여 미터 걸어 올라가다 보면 넓은 ‘파라데 광장(paradeplatz)’과 맞닿은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 건물이 나타난다. 사실 말이 교정시설이지 건물의 외관만 놓고 보면 주변 중세시대의 건물과 비슷해 쉽게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광장 중앙의 ‘치겐하인’ 교회 옆에 있는 교정시설 정문이 여기가 교정시설임을 알려주는 정도랄까.
교정시설 정문 근무자실은 도로에 바로 인접해 있었다. 유리는 짙은 색으로 코팅되어 있어 내부를 들여다보기에 쉽지 않았다. 교정시설을 국가 보안시설로 관리하며 1, 2, 3지대 방호개념을 적용하는 한국의 교정시설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얼핏 보면 방호에 취약한 구조인 듯 보이지만 교정시설의 접근성 면에서는 주변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정시설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정문 근무자실 앞에 있는 인터폰 수화기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근무자실 통유리 하단에 투입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을 통해 외부인은 신분증 및 각종 서류를 근무자실 안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외부와 직접 연결이 되지 않으면서도 업무를 편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잠시 확인 절차를 마치고 정문 출입문이 열렸다. 정문 출입문은 모두 3개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출입문은 절대 동시개문하지 않으며 한 번에 3인 이하로 출입을 허용한다고 했다. 두 번째 출입문을 통과하고 나면 세 번째 출입문 사이에 외부 출입자를 검신·검색하는 공간이 나온다. 차례로 검신을 기다리는 동안 정문 근무자가 휴대폰과 카메라의 구내반입은 절대 금지임을 알려주었다. 시설 관련한 사진 자료를 확보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정문 근무자에게 방문자에 대한 검신·검색에 대해 물어보았다. 방문자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절차를 적용한다고 한다. 직원의 경우는 1년에 한번 불시에 소지품을 검사한다고 했다.
검신기 옆을 둘러보았다. 삼각대 스탠드 위에 부착되어 있는 특이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담당 근무자에게 물어보니 ‘APC-100 firearms’4)제품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총기 안전장비의 일종이었다. 권총 등의 탄창을 제거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오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장비라고 한다. 권총 등의 총기를 사용하고 난 근무자는 총기를 반납하기 전 이 장비 투입구에 총구를 끼운 상태에서 탄창을 제거하고 격발 이상 유무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총기 투입구 안에는 강화 고무막과 내부 흡수체가 1, 2차로 탄도의 충격을 흡수해주어 총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에서도 권총 등의 총기 오발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이 장비의 한국 적용 문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문 근무자실 내부는 한국 교정시설의 정문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별도의 탕비실이 있어 근무 직원들이 간단한 음식 준비 등을 할 수 있는 점은 좋아보였다. 벽면에는 선반 수납장이 부착되어 있었다. 세어보니 모두 190개였다. 수납장 안에는 직원 개인별 열쇠가 보관되어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열쇠 모습이 이채로웠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전 직원(소장 포함)은 개인별 열쇠를 지급받는다고 한다. 개인 열쇠를 정문 근무자실에 반납을 하고 나서야 정문 밖을 나갈 수 있는 데는 예외가 없었다. 정문 근무자실 앞에 머물며 느꼈던 점 하나. 오래된 시설이라 공간이 좁다는 불리한 여건을 무척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외부 방문자의 사물 보관함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은 별도의 사물 보관함을 설치하지 않고 세 번째 통문이 있는 벽면 전체가 철골구조의 사물 보관함이라는 사실. 통문의 안과 밖의 채광률을 높이고 냉·난방 유지의 효과도 보며 안전하게 사물을 보관할 수 있는 점이 돋보였다.
4) 제조사 홈페이지 참조: http://firearms-safety.com/products_apc100_demo.html
세 번째 통문을 지나자 동행 직원인 에버하르트 만쯔(Everhard Manz) 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57세인 그는 21세부터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며 60세 정년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는 교도관의 일이 힘은 들지만 보람도 많다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만쯔 씨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회의실로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요르그 바흐만(Jörg Bachmann) 소장(Leiter)이 들어왔다. 소탈한 모습의 바흐만 소장의 허리춤에도 교정시설 열쇠가 매여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테이블 좌석에 앉은 바흐만 소장은 허리춤에 있는 열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열쇠 뭉치의 끝부분에는 가는 가죽끈이 두겹으로 묶여 있었다. 열쇠 분실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일 듯.
바흐만 소장은 2007년부터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 소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했다.5) 독일의 교도관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처음 임용되어 근무를 시작한 교정시설에서 정년까지 근무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소장 역시 퇴직할 때까지 한 기관에서 계속 근무하는 게 원칙이라고. 순환보직으로 인사이동이 잦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생경해보였다.
5) 요르그 바흐만(Jörg Bachmann) 소장은 2021년 10월 퇴임하였으며 현재는 군터 플렉(Gunter Fleck) 소장이 후임으로 근무하고 있음
물론 순환보직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효율적인 인원 재배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쌓게 해서 궁극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능숙한 관리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순환보직은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사적 이익을 쫓아서 부적절한 결정을 내릴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기도 한다. 조직 내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상호 업무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협업에 의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도관은 국민의 안전과 사회를 보호하고 수용자를 교정교화하는 직업적 특성이 있다. 따라서 고도의 전문성과 책임감 그리고 업무 연속성이 어느 분야보다 필요한 분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도의 장·단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교정 현장에서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교정 전문가가 많이 필요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만, 교정 전문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일의 교정공무원 인사행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바흐만 소장과의 첫 대화는 교정행정이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비치냐는 물음이었다. 그는 교정시설을 관리하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언론 관련 업무라고 했다. 교정시설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대부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자칫 공정성을 잃게 될 경우 정치적 이슈로 번질 소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자신은 규정에 맞도록 공정한 수용처우를 하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칠 수 없는 교정업무의 특성상 언론 관련 업무는 한국이나 독일이나 어렵기는 한가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은 바흐만 소장이 간략하게 소개한 헤센 주 교정행정 현황이다. 설명에 따르면 현재 헤센 주의 인구는 600만 명 정도이며, 수용인구는 4,500여 명이다. 따라서 수용인원은 전체 인구의 0.075%정도. 인구 10만 명당 수용인원이 75명인 셈이다. 헤센 주의 교정시설은 16개로 불과 10년 전만 해도 수용자 수가 6,000명을 상회했었으나 현재는 수용인원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수용자 수는 251명이며, 직원은 230명이다. 교정시설의 수용자들은 2년 이상부터 무기징역까지 분포한다. 직원 수가 많은 이유는 교정시설 시설 자체가 오래된 탓도 있지만 사각지역(dead space)이 많아 인력에 의존해야 하며 무장 직원이 감시대 근무를 해야 하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직원 구성원 중에는 임상심리사 5명, 사회복지사 12명, 신부와 목사 2명, 의사 1명, 훈련교사 3명이 있으며 현장에 근무하는 제복 직원 167명 외에도 기타 직원들이 있다고 했다.
소장의 교정시설 운영 방침 중에서 가장 중시하는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머뭇거림 없이 수용자의 ‘사회복귀’를 들었다. 입소 단계부터 한 수용자가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범죄를 저지른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 에 대해 사전에 면밀하게 파악한 후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인의 ‘치유’를 도와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돕는 것을 헤센 주 교정행정의 주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바흐만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나갔다. 불우한 성장배경을 가진 20대 초반의 남성이 범죄를 저질러 2년형을 선고받아 교정시설에 수용되었을 경우를 가정. 이때 전문가 시각으로 보아 여전히 사회복귀 준비가 부족하고 적어도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보임에도 현실적으로는 석방을 해야 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는 60대 노인 수용자의 경우를 가정. 입소 전 모든 자료를 살펴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경우 교정시설로서는 해당 수용자에게 사실상 해줄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 교정행정의 아이러니라는 소회를 밝혔다.
상황에 따른 수용자의 처우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바흐만 소장은 전자의 경우는 수용자의 부족한 부분, 예를 들면 교육수준을 높인다거나 대인관계나 사회성을 증진시킨다거나 아니면 직업훈련을 통한 능력함양을 중시하는 수용처우를 하다고 했다. 후자의 경우는 현상 유지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적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바흐만 소장은 교정시설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전자와 같은 젊은 세대의 수용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대부분이 자기 인생에 대한 주도적인‘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교정시설 안에서도 그런 생활습관이 쉽사리 개선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교정시설에서는 젊은 수용자들에게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 방안 중 하나가 수용자들에게 다양한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독일 교정행정에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직업훈련이나 교육훈련을 치료요법을 뜻하는 ‘테라피(therapie)’로 말한다는 점이었다. 이 말을 통해 수용 관련 처우 프로그램의 형태가 무엇이든 수용자를 치유하고 사회에 복귀시키고자 하는 교정 당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바흐만 소장은 수용자의 생활습관 변화를 위해 하루를 삼분한 후 8시간 노동, 8시간 여가생활, 8시간 취침의 패턴을 강조했다. 이 기본 틀 속에서 젊은 수용자들의 처우 중심을 교육과 직업훈련에 맞춘다고 했다. 그는 철공, 요리, 건축기술 분야에서 수용자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단계부터 차근차근 교육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기초적이고 낮은 단계에서부터 수용자들이 작은 성취감을 직접 맛보며 수용자 스스로가 본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데 있다고 했다.
현재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는 수용자가 2년에 한명 꼴로 철공 분야 마이스터 자격을 획득한다고 했다. 이럴 경우 미담 사례로 교정시설 측에서는 외부 언론에 적극적으로 홍보해 기사화한다고도 한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는 여가시간과 운동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교정시설의 수용자들은 1인 1실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자칫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지낼 가능성도 있어보였다. 따라서 교정시설에서는 수용자의 개인별 활동보다는 단체로 함께 어울려 생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수용자가 독거실에 혼자 있지 않도록 다양한 처우 프로그램들을 시행하고 있었다.
수용자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은 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바흐만 소장에 따르면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 수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운동 프로그램 종목은 ‘헬스’였다. 하지만 바흐만 소장의 표정은 이런 수용자들의 취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용자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근육과 몸집을 키워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수용자들이 외적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내면의 능력과 소양을 키우는 데 힘을 들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결국 수용자들은 교정시설이 아닌 사회에 복귀해야 하는데 우락부락하고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주지 않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현황 설명으로 돌아왔다. 바흐만 소장은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 5개의 수용사동이 있다고 했다. 4개의 부서에서 수용자 고충처리, 서신 관련 업무, 수용자 권리구제, 법원 판결 확인 절차 등의 업무를 처리한다고 했다. 수용자들의 주요한 고충 민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바흐만 소장은 거실 크기가 좁아 생활이 불편하다거나, 방안의 냉·난방 온도에 대한 불만, 작업의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이 주요한 내용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슈발름슈타트 노인 교정시설(kornhaus)을 언급하며 그곳에서는 수용자의 특성에 맞춰 ‘교육’이 아닌 ‘노인’들의 건강 유지 및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55세 이상의 수용자들에게 새로운 기술이나 직업훈련을 하기 보다는 출소 후 적은 생활비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독거 노인에 필요한 요리법 등을 가르친다고 했다.
바흐만 소장은 현재 180명의 수용자들이 마이스터 과정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마이스터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수용자들은 동기부여 내지는 동기함양 교육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바흐만 소장은 현재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 수용자의 60퍼센트 이상이 외국인 수용자들이라는 점을 들었다. 외국인 수용자들은 독일어에 서툴고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며 기초 학력이 부족한 특성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마이스터 과정과 같은 전문적인 교육훈련보다는 수용자들의 폭력성을 낮추는 치유 목적의 ‘그룹 테라피’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현재 30명 정도의 외부 강사들이 수용자 여가활동, 운동 프로그램 처방, 교육 훈련, 심리 치료 등을 위해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는 헤센 주 지역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자들이 수용되어 있다. 시간을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독일의 적군파를 이끌었던 ‘바더호프’ 등이 수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바흐만 소장의 말에 따르면 현재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 무기수는 한 명이라고 했다. 바흐만 소장이 말하는 수용자는 2011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미군 버스에 난입해 미 공군 병사 두 명을 총으로 쏴 죽인 코소보 출신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아리드 우카(Arid Uka)’였다.6)
바흐만 소장은 ‘살라피스트(salafist)’7)인 수용자의 경우 종교적 신념이 워낙 강해 수용처우가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수용자 스스로 서구 문화 자체를 배척하는 마음이 강한 요인 때문일까? 이런 수용자가 한국 교정시설에 수용 중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6) 관련 기사 참조: http://www.nytimes.com/2012/02/11/world/europe/man-gets-life-term-for-killing-2-us-airmen-in-germany.html
7) 살라피스트는 서구 문화를 배척하고 세속에 물들고 변질된 이슬람 교리를 샤리아가 지배하던 7세기 이전 이슬람 순수주의로 되돌려야 한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또는 그 세력 집단을 말한다.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0321&cid=43667&categoryId=43667)
교정시설의 특징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바흐만 소장은 ‘보안처분(Sicherungsverwahrung)’ 수용을 예로 들었다. 최근에 개축한 E동의 경우 범죄인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범죄인의 범죄예방을 위한 치료 목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2014년에 인접한 ‘튀링겐 주’와 위탁수용협약을 맺고 ‘보안처분’ 수용자 60여 명을 위탁 수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보안처분’ 수용자의 관리는 어떤가라고 물었다. 바흐만 소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보안처분’ 수용자들은 형기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교정시설 밖의 일반인들과 거의 유사한 환경에서 수용처우를 한다고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관리가 무척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흐만 소장에 따르면 과거에는 정신질환이 있는 수용자의 경우 치료 목적으로 계속해서 교정시설에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관련 규정의 개정과 교정 정책의 변화로 인해 최대한 신속하게 사회에 복귀시키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교정행정의 전문가 시각에서 보았을 때 출소하는 수용자들 중에는 여전히 범죄성이 잔존하고 위험함에도 석방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고 했다.
바흐만 소장은 귀휴제도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 있는 ‘보안처분’ 수용자들은 1년에 4번 의무적으로 외출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의 ‘사회 견학’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수용자가 외출을 할 때에는 교도관 두 명이 동행계호를 한다고 했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경우 평균적으로 매일 1명꼴로 외출을 나가는 셈이었다.8)
2015년 4월 한국에서 발생했던 귀휴 미복귀 후 자살한 무기 수형자 관련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논의되었던 여러 대책 중 하나가 귀휴자 동행계호였다. 외출 수용자 동행 계호에 어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바흐만 소장은 어려움이 많다며 가볍게 웃음을 보였다. 그는 외출하는 수용자의 경우 일반인과 동일한 사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쇼핑몰, 재래시장, 인파가 많은 길거리 등을 다니기 때문에 계호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보안처분’ 수용자가 일반인과의 차별을 느끼지 못하도록 사복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나라나 수용자에 대한 귀휴나 외출을 실시 할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이 바로 도주일 것이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경우 수용자 외부 외출 시 도주한 경우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수용자들이 도주하지 않는가라는 점인데 나름대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보았다. 우선 정기적인 귀휴와 외출이 보장되어 있으며 시설 내에서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일반인과 크게 차이 없는 생활이 보장된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직업훈련 등을 통해 벌어들인 임금의 상당 부분을 교정시설 측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사항은 될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분위기가 인간적이며, 교도관들이 수용자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도와주는 존재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8) 관련 기사 참조: http://www.hna.de/lokales/schwalmstadt/schwalmstadt-ort68394/sicherungsverwahrung-ziegenhain-hier-trainieren-insassen-alltag-5643908.html
우리 일행은 바흐만 소장에게 현재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이 안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바흐만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도 그렇지만 현재 헤센 주에 있는 교정시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은 교정시설 내 마약 밀반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든 ‘암시장(black market)’은 있기 마련입니다. 교정시설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반 사회와 교정시설은 유사하니까요. 아마 한국에서 오신 교정공무원들께서는 이런 마약이 어떤 경로로 교정시설 내부로 유입되는지 궁금해하실 듯합니다. 대부분의 마약 반입은 수용자와 외부인 사이의 접견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외부인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에 대한 마약 소지 여부 검사가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여성의 신체 특정 부위 등에 마약을 은밀하게 숨겨 반입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 접견실 등에는 별도의 계호가 없는데 이런 현장에서 마약 반입을 시도하고는 합니다. 물론 교정시설에서는 마약 탐지견을 운용하고는 있지만 마약 검색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마약 수용자들은 접견, 영치 등의 처우 면에서 일반 수용자에 비해 제약이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역시 교정시설 내 마약류 밀반입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바흐만 소장의 말에 따르면 독일의 교정시설에서는 한국과 같은 방식은 도저히 적용할 수 없다. 이유는 어렵지 않았다. 헤센 주 교정시설에 있는 수용자들은 차별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바흐만 소장은 최근에 있었던 마약 관련 사고 사례를 말해주었다. 얼마 전 한 수용자가 자살을 기도하다 근무 직원에 의해 제지당한 일이 있었다 한다. 자살의 동기를 조사해보니 자살을 시도한 수용자는 다른 수용자에게 2,800유로를 빚지고 있는 상태였으며 심한 빚 독촉이 자살 시도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마약을 조금씩 외상으로 받아 복용하다 빚진 금액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게 된 것이라 한다.
바흐만 소장으로부터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현황 설명을 듣고 난후 만쯔 씨의 안내로 교정시설 시설을 직접 참관하게 되었다. 우선 회의실 맞은편에 있는 직원 휴게실로 들어갔다. 대략 30㎡ 정도의 크지 않은 면적에 원형 테이블 두 개와 사각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다. 천장에는 은은한 간접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휴게실 벽지는 짙은 무늬 벽지로 마감되어 있어 어느 카페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휴게실 한 쪽에는 개수대, 커피머신, 냉장고, 그릇 세척기가 있었다. 만쯔 씨로부터 대략적인 참관 순서 설명을 듣고 본격적으로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 참관을 시작했다.
현재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 ‘보안처분’ 수용사동과 작업장, 체육관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설이 18세기 건축된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2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현대적인 교정시설로 활용될 수가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은 어느 현대적인 교정시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시설을 자랑했다.
만쯔 씨는 우리 일행을 접견실로 안내했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는 ▲ 단체 접견실 ▲ 대화 접견실 ▲ 가족접견실 ▲ 부부 접견실 4종류의 접견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단체 접견실은 1곳으로 직사각형의 테이블 6개가 놓여있었다. 테이블은 철제 프레임에 강화유리 판을 얹은 형태였다. 수용자와 외래인 사이에 테이블 아래로 부정물품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테이블 하단 가운데 나무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테이블 당 외래인 2인만이 입실하여 착석할 수 있었다. 단체 접견의 경우 녹음, 녹화는 실시하지 않고 있었으며, 수용자와 접견을 하고 싶은 사람의 경우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단체 접견실의 경우 한쪽에 계호직원이 자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시선 내 계호만 하고 있었다.
대화 접견실은 5곳이 있었다. 강화 유리창이 수용자와 접견인을 차단하고 있는 형태로 한국 교정시설의 일반적인 접견실의 형태와 유사했다. 2인만 입실이 가능했으며 접견을 감시하는 CCTV도 없었고 녹음, 녹화도 하지 않았다. 수용자와 접견인 사이의 대화는 별도의 인터폰이나 마이크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유리벽 하단 선반 바닥의 가림철판 사이로 뚫려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과거 한국 교정시설의 접견실도 차단 유리벽 사이로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대화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소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거나 실내에서 울리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접견실에서는 반대쪽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실제의 소리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가족 접견실이었다. 접견실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대형 소파 두 개와 응접 테이블이 중앙에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아이들을 위한 각종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출입문 맞은편에는 화장실과 간단한 음식 등을 준비할 수 있는 개수대도 구비되어 있었다. 가족이 접견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배려한 것으로 보였다. 가족만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어느 경우든 접견에 대한 감시는 인정되지 않았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는 입소한 수용자들을 처음에는 단체 접견실을 이용하도록 한다. 그다음 소내 규율 위반 없이 8회 접견을 마친 수용자에게는 가족 접견실을 1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고 했다. ‘가족 접견실’ 이용은 일종의 인센티브인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접견실은 부부 접견실이었다. 1곳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용자가 없는 때라 참관이 가능했다. 이곳은 부부 관계인 수용자와 외래인이 접견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앞에서 바흐만 소장이 기관 현황을 설명하며 마약류 반입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통로라고 했던 곳이었다. 부부만 이용할 수 있고 감시도 없으니 부부 사이의 성관계도 벌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교정시설 측에서는 사적인 영역으로 인정해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접견실을 나오며 만쯔 씨는 접견과 관련한 몇 가지 사항을 설명해주었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 있는 수용자들은 월 1회 접견을 할 수 있으며, 시간은 1시간이라는 것이다. 사전에 법원의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수용자와 접견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수용 여건이 양호한 요즘에는 실제로는 2시간 30분 정도를 허용한다고 한다. 예외적인 경우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만쯔 씨는 수용자가 원할 경우 한 달에 2번으로 나눠서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교정시설 측의 재량이라고 한다.
접견실 밖 통로에는 수용자 대기실과 수용자 검신실이 있었다. 검신실에는 X-ray 물품검색대 하나와 대형 검신기 그리고 수용자 물품 보관함이 있었다. 만쯔 씨 설명에 따르면 접견을 마친 수용자들은 수용자 검신실에 들어와 모든 옷을 탈의한 상태에서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검신실 입구 벽면에는 헤센 주 형집행법(Hstvollzg) 46조 검신, 검색에 관련한 규정을 안내판으로 고지하는 게 특이하게 보였다.9)
9) 헤센 주 형집행법 46조 참조: https://justizministerium.hessen.de/sites/default/files/HMdJIE/hessisches_strafvollzugsgesetz_-_hstvollzg.pdf
접견 대기실 끝으로 나선형 계단을 따라 A동 2층으로 올라갔다. 나선형 계단은 시계방향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었다. 2층에 도착하자 계단 앞에 근무자실이 있었다. 근무자실에서는 사동 복도뿐만 아니라 중정(atrium)을 둘러싸고 있는 A, B, C, D동을 모두 조망할 수 있었다. 중세 치겐하인 영주가 거주하던 성이라서 그런지 노출되어 있는 건축 부재들로도 건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A동 2층 근무자실에서 내려다보는 중정(atrium)10)크기는 안양교정시설의 중앙운동장 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보였다. 바닥 면은 정방형으로 경계석을 심어 그 안에 잔디를 심어 놓았다. 석조 건축물의 단조로움과 삭막함을 덜어주는 듯 했다. 중정 가운데에는 바닥 면 50㎝ 정도 깊이로 판 원형분수대가 있었다. 그 안에는 높이가 다른 철골구조의 직사각형 기둥 7개가 세워져 있었다. 둥근 공 모양의 조형물이 맨 앞에 놓여 있어 마치 도미노 게임을 형상화한 듯 보였다. 만쯔 씨에게 의미를 물어보니 7개의 기둥은 일주일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원형 분수대에 물을 채우면 둥근 공이 떠올라 떠다닌다고 한다. 이 원형 분수대를 보고 있으니 ‘임플루비움(impluvium)’이라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빗물받이 연못이 연상되었다. 4각의 건물에 둘러싸인 중정이 따뜻한 태양열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면 가운데 낙수받이 연못은 중정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할 테니 말이다.
10) 사진 출처: http://www.hna.de/lokales/schwalmstadt/karriere-hinter-gittern-1113784.html)
11) 임플루비움 관련 참고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Impluvium
중정(atrium) 구석을 보니 바닥에 커다란 체스판과 말이 놓여 있었다. 수용자들이 커다란 말을 옮기며 직접 체스를 두는 곳이라 한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 수용자들은 이곳에서 한 번에 50명 정도씩 운동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뜀뛰기 등의 운동은 아니고 산책 정도의 여가시간 보내기로 생각하면 좋을 듯 보였다. 왜냐하면 이곳의 수용자들은 중정(atrium)에서 한 시간의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 이외에도 교정시설 내 체육관에서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을 직접 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는 의무실을 둘러보았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는 한 명으로 전공과목은 정신과였다. 진료실 옆으로 의사의 사무실이 있었으며 바로 맞은편에 진료를 기다리는 대기실이 있었다. 진료 대기실 역시 기존 수용거실과 내부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용거실 문 안쪽으로 철격자 문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는 정도가 차이점이랄까. 마침 복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궁금했던 지 진료 중이던 정신과 의사 쾨헬 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만쯔 씨로부터 설명을 들은 쾨헬 씨는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의료 처우에 대해 설명해 주고 싶으나 진료 중인 관계로 아쉽다는 말을 했다.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 통문을 하나 더 지났다. 근무자실에 있는 담당 직원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중세 건물을 위, 아래로 걷다 보니 어느새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근무자실 앞에는 전화기 한 대가 벽면에 부착되어 있었다.
전화기 옆에는 다용도실이 있었는데 이곳은 사동 내 수용자들이 자신들이 준비한 식재료를 가지고 간단한 요리를 직접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국 교정시설의 경우 SOFA 관련 수용자들이 여러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용도실에는 조리대와 개수대가 하나씩 있었다. 중형 크기의 냉장고도 하나 있었다. 냉장 보관이 필요한 식재료를 보관한다고 했다. 칼 등이 들어있는 조리도구는 선반 수납장에 넣어 시건장치로 잠궈 두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용시간이 적혀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15시 40분부터 19시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12시 30분부터 16시 30분까지였다.
다용도실 옆에 있는 수용자 거실을 볼 수 있었다. 담당 근무자가 방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한 후 문을 살짝 열고 안에 있는 수용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짙은 크림슨(crimson)색 상의와 짙은 남색 하의를 입은 수용자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왔다. 먼 동쪽에서 온 이방인들을 보고 가볍게 웃음을 보인 수용자는 근무자실 쪽으로 갔다. 수용자의 프라이버시(privacy) 보호 차원에서 문밖에서 안을 볼 수밖에 없었지만 대강의 내부구조와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수용자 거실은 1인 1실이 원칙이다. 원칙은 원칙.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다인실(多人室)은 운영하는 경우는 없었다. 헤센 주 형집행법 18조12)에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법이 개정되어 지난해부터 모든 수용자에 대하여 본인이 원할 경우 1인 1실을 보장해 주고 있었다. 헤센 주 규정상 수용자는 최소한 7㎡ 이상의 1인 거실에서 수용 생활을 해야 한다. 거실문의 재질은 나무였다. 거실 벽면에는 수용자들이 붙여놓은 각종 포스터와 사진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성인 잡지의 여성 모델 화보가 대부분이었다. 별다른 제지는 안 한다고 한다. 도색잡지나 사진은 없었다. 거실문 바로 옆에는 세면대와 변기 선반으로 이뤄진 화장실이 있었다. 거실에는 기본적으로 침대, 책상, 의자, 옷장을 구비하고 있었다. 거실문에는 과거에 사용했을 듯 한 시찰구(peephole)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막혀있거나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독일 교정시설에서 교도관들은 거실 동정을 살피기 위해 시찰구를 통한 시찰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거실문 바로 위에는 삼각형의 비상등이 있는데 거실 안에서 응급 시 호출 버튼을 누르면 적색등이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거실 내 화장실은 이전에는 가림막이나 벽체가 없이 노출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관련 규정의 개정으로 헤센 주 모든 교정시설의 수용 거실 내 화장실에는 차폐 부스(booth)를 설치한 상태였다. 다행히 건식 화장실 방식이라 바닥 면은 항상 건조한 상태였으며 용변 냄새와 같은 화장실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거실문을 살펴보았다. 거실문 위는 첨두 아치형(pointed arch)으로 멋스러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고딕 양식을 많이 차용한 듯 보였다. 둔중한 목재를 연결한 리벳과 철판 모양이 상당한 연식임을 알 수 있었다. 거실문의 시건장치는 모두 세 개였다. 시건장치의 위치를 상, 중, 하로 나눈다면 상·하의 시건장치는 근무 직원이 열고 잠그는 곳이지만 가운데 열쇠는 수용자들이 잠그고 열 수 있었다. 물론 가운데 열쇠를 잠근다고 해도 하단의 주 시건장치를 열면 가운데 시건장치도 함께 열 수 있도록 해놓았다.
12) 헤센 주 형집행법 18조 참조: https://justizministerium.hessen.de/sites/default/files/HMdJIE/hessisches_strafvollzugsgesetz_-_hstvollzg.pdf
방안을 오래도록 관찰할 수는 없어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복도 끝에서 만쯔 씨는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지하 1층으로 내려왔다. 지하 1층이기는 하지만 천정 부위 창문이 지상에 노출된 일종의 반지하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보호실과 진정실이 있었다. 이곳에는 보호실과 진정실이 각각 한 곳씩 나란히 붙어 있었다. 보호실은 침대와 변기 시설 이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었다. 이 방에서도 상태가 완화되지 않는 수용자를 옆에 있는 진정실에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만쯔 씨가 ‘코발트블루(cobalt blue)’색의 진정실 출입문을 열었다. 아마도 청색 계열의 색이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효과를 노린 듯하다. 진정실의 크기는 안양교정시설 공장 뒤편에 있는 진정실 규모와 비슷해 보였다. 앞에 보이는 벽면에 커다란 채광창이 있었는데 단단한 재질의 불투명유리로 덮여 있었다. 강화유리로 보였다. 천정에는 형광등 조명이 하나 있었다. 우측 구석에 수용자가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프렌치 토일렛(french toilet)’ 이 바닥에 설치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자해하는 수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고무패딩이 부착되어 있었다. 곳곳에 발자국으로 패인 부분으로 보아 진정실에 수용된 수용자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만쯔 씨의 설명에 의하면 수용자를 3일(72시간) 이상 수용할 경우 헤센 주 법무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진정실의 특이한 점은 출입문의 구조와 형태에 있었다. 코발트블루 색의 진정실 출입문에는 세 개의 ‘슬롯(slot)’이 있었다. 상단의 정방형 슬롯 덮개를 열면 강화유리로 막혀 있었다. 만쯔 씨 설명에 의하면 근무 직원이 진정실 내 수용자의 동정을 살피는 용도란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슬롯은 사람 허리 높이로 용도는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출입문을 열기 전 수용자에게 수갑을 채우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식사를 위한 식판을 넣어주는 곳이라고 한다. 마지막 하단의 장방형의 길고 좁은 슬롯은 수용자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 때 사용한다고 했다. 특이했던 점은 진정실의 출입문 두 개가 대칭으로 설치되어 있다는 것. 이유를 물어본 즉 만쯔 씨는 유사시 한쪽 출입문에 수용자의 주의가 쏠렸을 때 옆에 있는 문으로 진입하기 용이하도록 해놓은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한국 교정시설에는 이런 구조의 출입문을 없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용자의 보호와 직원의 안전을 고려했을 때 나름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실에서도 자해를 하는 수용자의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만쯔 씨는 진정실 옆 창고에서 보호 침대를 꺼내 보여주었다. 한국 교정시설에서 사용하는 보호 침대와 유사해 보였다. 만쯔 씨는 덧붙여 설명하기를 보호 침대를 사용할 경우 근무 직원은 시선 내 계호가 아닌 수용자 옆에서 근접 계호를 하며 수용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보호 침대는 3시간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정실과 보호 침대를 본 후 진정실 사용빈도는 어떤지 살짝 물어보았다. 만쯔 씨는 1년에 한두 번 사용할 정도라고 가볍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진정실을 보고 나서 우리 일행은 만쯔 씨를 따라 다시 나선형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다 보니 어느새 옛 치겐하인 성의 첨탑 꼭대기 층에 도착해 있었다.
8각형 첨탑의 벽창은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친 빛이 첨탑 아래 제단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천정을 받치고 있는 목재 부재들은 리브드 볼트(ribbed vault)방식으로 천정을 떠받치고 있었다. 만쯔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일요일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 행사가 열리지만 종교와 관련한 행사만 열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용 용도를 떠나서 첨탑 안 집회공간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만큼 큰 매력을 갖고 있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이곳에서 잠시 앉아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는 신부 한 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수용자들의 종교 상담 등을 한다고 했다. 제단 아래 의자 50여 개가 놓여 있었다. 등받이 의자는 접이식 의자가 아니었으며 미니멀한 디자인이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교회당에서 내려와 B동 3층에 있는 수용거실 하나를 더 볼 수 있었다. 2005년 이전에 5인실로 운영되던 곳으로 거실 두 개의 벽을 튼 탓에 내부가 무척 넓어 보였다. 현재는 1인이 수용생활을 하는 곳이라 한다. 조금 전 거실에서 담배를 피웠는지 거실 안에는 담배 냄새가 짙게 남아 있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재떨이와 꽁초가 있었으며 1회용 라이터도 하나 놓여 있었다. 독일 교정시설에서는 담배가 허용된다. 담배는 수용자가 구입하며 1회용 라이터의 소지도 가능하다.
일행 모두가 거실 안으로 들어와도 전혀 비좁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수용자 침대는 창가 구석에 있었고 그 뒤로 화장실 부스(booth)가 있었다. 화장실 부스에는 여닫이 출입문이 있었고 내부를 볼 수 있는 시찰구는 전혀 없었다. 거실에 대한 시찰도 없고 게다가 차폐된 화장실 부스(booth)까지 거실 안에 있는데 도대체 사고 예방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이 방의 수용자는 화장실 부스와 벽면의 선반에 줄을 이은 후 커튼을 만들어 놓아 침대를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 직원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수용자의 사생활로 인정하는 듯 보였다.
침대 발치에 TV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주변에 전기제품 여럿이 보여 만쯔 씨에게 물어보았다. 만쯔 씨는 수용자는 TV 한 대, 카세트 데크 한 대, CD, DVD 24장,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을 자비로 구매할 수 있다고 했다. TV는 모두 17개의 채널(channel)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정리해보자면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일반적인 수용자의 모습은 1인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다 잠시 담배를 피울 수도 있고 카세트 데크에 CD나 DVD를 올려놓고 음악을 듣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한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한 시간의 야외 여가활동과 각종 운동 프로그램 그리고 개인 맞춤형 교육훈련을 받는다. 만쯔 씨의 말을 빌리자면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은 수용자의 입소 단계부터 수용자 개개인의 문제점과 장애요소를 파악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수용자의 상태를 관리하는 사전 예방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자신감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A, B, C, D 네 개의 동에 대한 참관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땅을 밟는 기분이었다. 눈앞에는 ‘보안처분(Sicherungsverwahrung)’ 수용자들이 있는 E동이 보였다. E동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순차적으로 지은 건물임에도 관리상태가 무척 좋아보였다. 만쯔 씨의 설명을 들으니 지난해에 대대적인 리모델링 보수 공사를 벌인 때문이란다. B동과 E동 사이에는 8각형의 감시대가 서있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에는 무장 교도관이 근무 중이란다. 감시대 아래 주벽으로 철제통문이 있는데 문 앞에는 육중한 ‘빔 바리케이드(beam barricade)’가 세워져 있었다. 차량 출입을 위해서는 철제통문을 연 후에 안쪽에 설치된 빔 바리케이드가 열려야 차량이 출입가능한 구조였다. 만쯔 씨에게 철제 빔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놓은 이유를 물어보았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1993년 4월 4일의 일입니다. 슈발름슈타트에서 서쪽으로 2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슈타트알렌도르에 있는 헤런발트 군기지에서 장갑차13)를 탈취한 범인이 바로 여기 뢰도터(lüdertor) 거리로 나있는 철제 통문을 그대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차례로 네 개의 통문을 부순 후 세 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던 수용자를 태우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범인과 탈주범은 곧 검거되었습니다만 그 후로 장갑차가 밀고 들어와도 버틸 수 있을 만큼 강하고 튼튼한 ‘빔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13) https://de.wikipedia.org/wiki/Fuchs_(Panzer)
만쯔 씨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어떻게 군부대에서 장갑차를 탈취하고 여기까지 와서 교정시설 통문을 부수고 탈옥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기야 복잡다단한 세상사에 이보다 더한 일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 일행은 E동 입구로 걸어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거실 창문 틈으로 ‘보안처분’ 수용자들이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보안처분’ 수용자들은 형 집행이 종료된 사람들로 교정시설 안에만 있을 뿐이지 일반인들과 거의 유사한 환경을 보장해야 하는 만큼 이들이 생활하는 수용 거실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대신 3층의 비어있는 사동에 들어가 빈 거실을 살펴보았다.
우리 일행이 살펴본 수용 거실은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환자를 수용하는 거실이었다. 면적은 14㎡로 거실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거실 출입문을 열면 테이블, 의자, 선반 등이 있는 공간이 나오고 그 벽면에 난 문으로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공간이 나온다. 한국에 있는 특급병원의 1인실과 비슷한 구조였다. 거실을 보고 E동 밖으로 나오며 만쯔 씨는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2014년에 헤센 주와 이웃한 튀링겐 주 사이에 업무협약을 맺어 튀링겐 주의 ‘보안처분’ 수용자 60여 명 정도가 현재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 수용 중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이 연방 국가이며 주의 독립성이 강하다 보니 이런 위탁 수용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동을 따라 걷다 보면 커다란 건물 하나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체육관이다. 체육관에 직접 들어가 보니 바닥은 마루 바닥재로 깔끔하게 샌딩 작업이 된 상태였다. 크기는 어림잡아 과천시민회관에 있는 실내체육관 보다 약간 더 큰 느낌이었다. 만쯔 씨의 설명에 의하면 실내체육관에서는 실내축구, 농구, 탁구, 배구 등의 운동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이 찾았을 때에는 탁구대 4대와 펜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누군가 탁구를 즐기고 있었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설 참관 전 바흐만 소장도 강조를 했지만 독일 교정시설은 수용자를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무척 중시하고 있었다. 운동 프로그램마다 외부 강사진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직원들도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었다. 특히 매주 화요일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직원 대상 호신술 강좌를 실시하고 있으며, 직원들의 참여율 및 호응도가 높다고 했다.
체육관을 나오며 참관의 마지막 장소인 직업훈련장으로 향했다. 걸어가며 주벽과 건물 외벽을 보니 지지대위에 설치된 전기애자(Electric insulator)가 눈에 들어왔다. 만쯔 씨에게 혹시 저 시설이 전기 철조망인지를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이 헤센 주에서는 전기 철조망을 사용하는 유일한 교정시설이라고 말해주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라 신기하게 보였다.
작업장 구역으로 이동했는데 작업장이 상당히 큰 규모였다. 환기시설과 채광시설이 좋아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쪽에는 목재로 건축 실내 부재를 제작하고 있었다. 다른 편 작업장에서는 선반 등 기계 작업과 용접 가공을 하고 있었다. 작업장에는 한국의 직업훈련교사 역할을 하는 해당 분야의 ‘마이스터(meister)’가 수용자들의 작업지도를 하고 있었다. 멜빵 청바지를 입고 체크무늬 남방을 걸친 마이스터는 우리 일행을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목재 가공 작업장만 봐도 슬라이딩 쏘, 집진기, 테이블 쏘, 밸트 샌더 등 상당한 현대식 기계가 구비되어 있었다. 오래 머물면 수용자들의 작업을 방해할 것 같아서 서둘러 작업장을 나왔다. 마이스터와 수용자의 모습을 보며 ‘백범일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대로 옮겨본다.
“구속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할수록 반대로 수인들의 심성도 그에 따라 나빠졌다. 횡령이나 사기죄로 들어온 자들이 감옥 안에서 절도나 강도질을 연구해서 만기 출옥 후에 더 무거운 형을 받고 다시 들어오는 자들도 이따금 있었다. 물론 지금의 감옥은 이민족의 구속과 압제를 받는 곳이라는 감정이 가득해서 왜놈들의 처사로는 털끝만큼도 감화를 줄 수 없다. 그러나 내 민족끼리 감옥을 다스린다 해도 이런 식으로 모방이나 해서는 감옥을 세워봐야 조금도 이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날 우리나라가 독립한 뒤에는 감옥 간수부터 대학 교수의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채용하고, 죄인을 죄인으로 보는 것보다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아 옳은 길로 이끄는 데만 힘써야겠다. 또한 일반 사회에서도 감옥살이한 사람이라고 업신여기지 말고 대학생의 자격으로 대우해 줘야 그만한 가치가 생기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 일찍이 백범도 설파했듯이 간수와 죄수의 사이가 아니라, 대학 교수와 대학생의 관계처럼 ‘선으로 지도하는 데 힘쓸’ 때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독일의 한 작업장에서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다시 정문 근무자실로 돌아왔다. 보관함에 맡겨둔 사물을 찾는데 마침 근무를 마친 직원 한 명이 정문 근무자실에서 권총을 반납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총기를 반납하는 직원은 근무자실 앞에 있는 APC-100 Firearms 입구에 총구를 넣은 상태에서 탄창을 빼내고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격발을 했다. 근무를 마친 직원은 분리된 탄창과 권총을 정문 근무자실 유리창 선반에 설치되어 있는 사물 투입함에 넣었다. 처음 교정시설에 들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는 근무자 사이에 총기 반납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 하는 점이 특이해 보였다.
정문을 열고 교정시설 밖으로 나왔다. 교정시설 앞 파라데 광장 주차장에 자동차 몇 대가 한가로이 세워져 있었다. ‘관용(寬容)’이라는 의미로 ‘똘레랑스’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tolerance’, 독일어로는 ‘toleranz’이다. 이 단어가 건축에서는 ‘공차(公差)’ 즉, ‘허용오차(tolerance)’를 뜻한다. 설계도면의 선과 수치가 구현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현실은 여기서 벗어나게 마련이다. 이를 건축 과정에서 허용오차 내에서 지어야 한다. 엄밀한 건축물조차도 허용오차를 인정하는데 사회라면 조금 더 넉넉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삶이 어떻게 획일적으로 숫자로 규제되고 선으로 정의될 수 있겠는가?
개인을 뜻하는 영어로 ‘individual’이 있다. 더 이상 나눠지지 않는 개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나눌 수 없음을 뜻하는 영어의 접두사 ‘In’ 일 것이다. 민주 사회의 장점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같은 관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18세기, 19세기 건축물을 교정시설로 사용하는 사회, 역사유적지 한복판에 교정시설을 허용하는 사회, 교정시설이라고 해서 지역사회와 유리되어 있지 않고 울타리를 경계로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는 사회, 과거의 건축물과 현대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사회, 그리고 이런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사회야말로 ‘똘레랑스’가 살아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이라는 다른 문화권의 교정시설을 보며 점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경직되지 않고 자연스레 소통하려 노력하는 독일의 교도관과 수용자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인간은 어떠한 순간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함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기준으로 형편없어 보여도 우리 사회에 그 사람이 정말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자각을 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이 점점 멀어져갔다.
孰能濁以靜之徐淸(숙능탁이정지서청), 孰能安以久動之徐生(숙능안이구동지서생). 노자 도덕경 15장에 나오는 말이다. 누가 능히 혼탁함을 고요히 해서 서서히 맑아지게 할 것인가? 누가 능히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 서서히 살아나게 할 것인가?
바로 우리 교도관들이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시내를 통과해 북동쪽 오베르 크뢰젝커 거리로 향하다 보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JVA Frankfurt am Main Ⅰ)이 나타난다. 가을 아침 날씨는 쾌청했고 길거리에는 지난 밤 떨어진 낙엽들로 가득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불과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시 외곽에 입지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 정문 앞에 도착하고 보니 교정시설이 주는 위압감에 살짝 주눅이 들었다. 교정시설의 정문은 어제 방문했던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과 같이 별다른 외벽이 없이 바로 도로에 접해있었다. 일행이 타고 갔던 승합차를 주차하는 사이 정문 앞 작은 건물(민원인 대기실) 앞에는 짙은 크림슨 색 상의와 짙은 남색 하의를 입은 수용자 두 명이 인도 위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수용자 주변에는 계호하는 교도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당혹감이 들었다. 나중에 설명을 들어 안 사실이지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의 좌측에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3 여자교정시설, 우측에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4 개방교정시설이 하나의 거대한 교정시설 복합타운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외부 청소를 하는 수용자의 경우 개방교정시설에서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수용자로 계호없이 출역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 바로 앞은 대단위 2층짜리 공동주택이 있었다. 교정시설 정문 근무자실에 여권을 제출하고 출입자 확인절차를 기다리며 천천히 교정시설 주변을 살펴보았다. 우선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을 보며 주벽의 높이에 놀랐다. 교정시설 정면, 파사드(facade)의 최대 높이는 15m로 웬만한 4층 건물의 높이와 같았다. 한국 교정시설의 경우 법무시설기준규칙상 주벽 높이의 기준이 5m인14) 점을 감안했을 때 그 위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문 근무자실은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과 비슷했다.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 통유리, 선반에 설치된 투입함, 인터폰으로 내부 근무자와 통화하는 방식도 유사했다. 대신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 정문의 특징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정문 근무자실과 주출입문 앞에 7개의 직사각형 철제 보호 기둥인 볼라드(bollard)가 ‘ㄱ’자 모양으로 박혀있는 점이었다. 볼라드는 가로/세로가 40㎝✽90㎝, 높이는 80㎝로 크기와 재질로 봐서 어지간한 차량이 정문으로 돌진해도 충분한 방호가 될 정도로 보였다. 정문 앞보다 크기와 높이는 작지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 교정시설 주벽 옆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1m 간격으로 철제 보호 기둥인 볼라드가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아마도 건물의 외벽 이외에 보호시설이 없는 점을 감안한 시설로 보였다.
다른 하나는 정문의 좌·우 측에 차량 출입문이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좌측은 인원이 탑승한 차량이 우측은 물품을 실은 차량이 출입한다는 점이었다. 사람과 물품을 엄격하게 분리해 별도의 출입문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특이하게 보였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경우도 차량 출입문은 두 곳이었는데 그곳 역시 사람과 물품이 들어가는 곳이 분리되어 있었다. 또한 각 차량 출입문 앞에는 지면 매립형 차량 바리케이드(surface mount blocker)가 설치되어 있는 점도 특이했다. 신원확인을 기다리던 중 운 좋게도 인원 차량 출입문과 물품 차량 출입문이 각각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붉은색 경보등이 점멸하고 경보음이 울리며 지면에서 차량 바리케이드가 솟아올랐다. 높이는 70㎝, 폭은 1m 50㎝ 정도로 보였다. 앞뒤 길이는 1m 30㎝를 상회해 보였다. 마치 삼각형으로 예쁘게 자른 케이크 한 조각이 바닥에 놓여있는 듯 했다.
14) 법무시설기준규칙 p.88
신원확인을 마친 우리 일행은 차례대로 정문 출입문 안으로 들어갔다. 삼각대 게이트(gate)를 통과한 일행은 소형 검신기(portable metal detector)를 든 직원으로부터 꼼꼼하게 검신을 받았다. 정문 근무자실 앞에 있는 소형 물품보관함에 가지고 간 소지품을 넣고 열쇠로 잠갔다. 외래인 물품보관함은 모두 50개가 있었는데 가로✽세로 25㎝ 크기였다. 물품보관함 앞에는 x-ray 검색대가 있었다. 형태는 공항 출입국심사대에 있는 기기와 방식이 흡사했다. 검신 및 검색 절차를 마치자 첫 번째 통문이 열렸다.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도 느꼈지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 역시 모든 통문의 격자 사이에는 강화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추측컨대 격자 사이의 강화유리는 냉·난방의 효율을 높이며 외관 자체만으로도 미적 효과와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한국 교정시설의 철제 통문의 경우 철격자만 도드라져 보이고 격자사이가 뚫려있어 이런 부분에 대한 세심한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통문 앞에는 프랑크 롭(Frank Lob) 소장(Leiter)과 주요 과장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은발에 차분한 인상의 롭 소장은 함께 나와 있던 관계직원들을 소개했다. 롭 소장의n 좌측에는 카이젤 수염을 멋지게 기른 그넬 보안과장이 우측에는 아인스 시설과장과 안전 동행직원인 뢰브스 씨가 있었다. 롭 소장은 우리 일행에게 우선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 내·외의 시설을 살펴본 후에 질의응답 시간을 갖자고 제의했다.
롭 소장은 한국의 교정공무원은 첫 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그는 교정시설 시설을 간략하게 살펴보는데도 세 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으면 시설 어디든 마음껏 찍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전날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 사진 촬영을 허가하지 않아 독일 교정시설의 사진촬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에 카메라를 자동차에 두고 온 것을. 솔직히 그 말을 듣고 농담인줄 알았지만 롭 소장의 말은 빈 소리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을 제대로 보려고 하면 반나절도 부족할 정도였다. 또한 시설 촬영을 꺼리지 않는 태도는 교정시설의 보안시설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롭 소장이 처음으로 안내해 준 곳은 물품 적하장이었다. 정문 근무자실 바로 옆 공간으로 앞에서 언급한 물품을 적재한 차량이 출입을 하는 곳이었다. 한눈에 봐도 일반 물류센터 입·출고 도크를 시설 설계에 반영한 모습이었다. 도크의 높이는 트럭의 적재함의 높이에 맞춰져 있어 물품 하역 시 작업이 용이하도록 되어 있었다. 입·출고 분배장소는 4곳으로 지면에 하역된 물품의 경우 소형 지게차를 이용해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롭 소장의 설명에 의하면 입고된 물품의 경우 보관창고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2층 로케이션까지 옮겨진다고.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의 모든 건물은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필요 물품의 경우 소형 전동차로 운반하는 방식이었다. 도크 건물 상부에는 멋진 캐노피로 기상에 관계없이 하역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입고 차량 주차장에서 수용사동 방향으로 통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롭 소장은 바닥을 가리키며 외부에서 차량이 들어오는 통문 바닥과 2차로 수용사동으로 나있는 통문 바닥에 차량 하부 검색 렌즈가 이중으로 검사를 한다고 했다. 검색 장비는 렌즈가 3개로 정면, 좌·우 대각선 세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차량이 들어올 때 카메라가 스캔을 하고 다시 차량이 나갈 때 스캔을 해서 두 화면이 차이점이 있는지를 자동으로 확인하여 도주, 물품전달 등의 여부를 확인한다고 하였다. 한국 교정시설의 경우 일안 렌즈로 차량 하부를 검색하고 직원이 차량 하부 검사경을 이용하여 재차 검색한다. 이와 달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의 경우에는 별도로 하부 검사경을 이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기계장치에 대한 의존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각선 방향의 렌즈 두 개가 차량의 외측면을 검색하니 큰 문제는 아니겠다는 추측을 해보았다. 롭 소장은 덧붙여 제2차량 출입문 안으로 일반 차량은 진입할 수 없으며 경찰 차량, 소방 차량 등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진입을 허용한다고 했다.
롭 소장은 천천히 걸어가며 교정시설의 간단한 개요를 설명했다. 농담도 곧잘 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방문한다고 일부러 수용인원 가운데 한국인이 있는지 찾아보았다고 한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에 수용중인 한국인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롭 소장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의 수용정원은 605명이며 현재 564명을 수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미결수용자라고 했다. 1인실은 518개이며 면적은 11㎡ 이고 나머지 40여개의 거실을 2인실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30 여명 정도의 신입 수용자가 입·출소를 하며 대략 540명에서 580명 사이 인원에서 변동이 있다. 수용자의 범죄는 경범죄부터 살인 등의 중범죄까지 망라하고 있었다.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테러 혐의를 받고 있는 수용자 8명을 수용 중이라고 했다. 수용자가 테러 혐의가 있다고 해서 수용처우에 차별을 두고 있지는 않으며 모든 수용자가 기본적으로 동등한 처우를 받는다고 했다. 교도관의 수는 310명이라는 롭 소장의 첨언.
마침 롭 소장이 맨홀 뚜껑 옆에 서 있어 자연스레 우리 일행은 지면의 맨홀 뚜껑을 보게 되었다. 한국 교정시설의 경우 맨홀 뚜껑 등은 보안사고 예방 차원에서 쇠사슬과 자물쇠를 이용해서 시건한다. 반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의 맨홀 뚜껑은 삼각형 모양의 볼트로 고정해 놓은 게 특이했다. 볼트에 전혀 녹이 슬지 않고 하얀 광택이 나는 것으로 보아 스테인레스강 소재의 볼트로 추측해 보았다. 삼각형 모양의 볼트라면 삼각형 모양에 맞는 특수한 렌치가 있어야 볼트를 풀 수 있을 터.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문을 지나며 물품 입고장 너머 흑갈색 지붕에 외벽이 붉은색 벽돌로 된 낡은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롭 소장에게 혹시 저 건물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Ⅲ여자교정시설 건물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웃으며 저 건물은 19세기 말 이곳에 지어진 감옥 건물로 이전 건물들을 철거할 때 건물 한 동을 남겨둔 것이라고 했다. 워낙 오래되고 낡아 보여드릴만한 부분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가끔씩 영화 관계자 등이 촬영하고자 이용한다고 했다.
A동 출입문 앞에서 롭 소장은 수용자들을 ‘ㄴ’자 모양의 A, B, C 세 개의 수용동에 170명씩 수용한다고 한다. 수용동의 동선을 수용자들이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설계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그의 말대로 건물 밖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밖으로 드러난 수용동은 5층 건물이었으나 지하로 2개 층이 더 있다고 했다. 지하 1층은 작업장이나 교육장소, 상담실 등이 있었으며, 지하 2층에는 보일러와 같은 기계실이 있었다. 지하 1층과 지하 2층 모두는 수용동을 포함한 교정시설 내 모든 건물과 지하로 이어져있다고.
우선 A동의 지하 1층으로 이동했다. 앞장서 안내하는 롭 소장은 카드키로 직접 출입문을 열어주며 뒷사람이 들어오기 편하도록 문을 잡아주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A동 지하 1층에는 2개의 작업장이 있었다. 단순한 전자제품 조립장과 포장 박스를 정리하는 곳이었다. 작업장 가운데 담당 근무자실이 안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근무자실의 정면, 좌·우측은 강화유리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근무자 입장에서 계호근무하기에 편한 구조였다.
첫 번째 전자제품 조립장에 혼자 근무하고 있던 직원은 여성이었다. 짧게 커트한 붉은색 머리가 선한 눈매와 잘 어울리는 직원이었다. 작업 중 의문이 있는 수용자에게 다가가 설명하는 모습에서 자상하면서도 당찬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수용자에게 위해를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얼굴 표정을 보니 그런 질문을 하는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읽혔다.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미국의 경우 1977년 ‘Dothard V. Rawlinson’ 사건과 1988년의 ‘Torres V. Wisconsin’ 사건으로 교정시설에서 남·여 교도관들이 서로 다른 이성 수용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은 어떤 경위로 교도관들이 이성 수용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롭 소장은 현재 작업장에서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수용자들이 미결수용자들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도 미결수용자의 경우 신청에 따라 작업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독일 교정시설의 경우도 미결수용자의 경우 본인들이 원할 경우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첫날 방문했던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에서도 그랬지만 이곳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에서도 수용자들의 작업을 ‘일(work)’이 아닌 ‘테라피(therapie)’라고 불렀다. 작업은 보통 8~10 여명 정도씩 무리를 이루어 실시했다. ‘테라피(therapie)’도 포장, 조립과 같은 단순 작업 위주였다. 그 이유를 롭 소장은 수용인원의 70% 이상이 외국인들이며 상당수가 동유럽이나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아랍계 수용자들도 일부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숙련이 필요한 작업은 현실적으로 실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의 작업은 우리의 위탁공장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일부 작업장의 경우 1년에 25만 유로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곳도 있다고 한다. 미결수용자의 작업 활동에도 임금을 지불하는 데 작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이 있다고. 한 달에 150유로에서 200유로 정도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이렇게 받은 임금은 수용자의 통장에 적립되며 수용자들은 필요한 식자재나 식료품 등을 구입하는 데 쓴다. 미결수용자들의 작업 참여도가 높은지 묻자 롭 소장은 “그렇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의 작업 공간이 좁아 새로운 작업장 신축을 검토하는데 여유 부지가 부족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작업장을 나와 우리 일행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의 진정실로 향했다. 진정실의 구조와 형태는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의 진정실과 무척 유사했다. 진정실의 실내등은 천정이 아닌 양쪽 벽면 상단에 벽면 매립형 등이었다. 한쪽 벽면에도 불투명채광창이 설치되어 있어 낮에는 자연스럽게 태양광이 실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안전 매트리스가 한 장 깔려있었다. 구석 바닥에는 ‘프렌치 토일렛(french toilet)’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정에는 감시용 CCTV와 엠프 하나가 있었다. 롭 소장은 수용자가 용변을 마친 후에 물을 내리는 것조차도 중앙 통제실에서 조작을 한다고 했다.
함께 동행을 하던 뢰브스 씨는 진정실 안의 수용자들은 자살이나 자해 등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속옷까지 모두 탈의하도록 한 후 교정시설에서 지급하는 종이로 만든 팬티와 상의 가운을 입게 한다고 했다. 덧붙여 취침용 종이 이불 하나를 지급한다고 했다. 그는 종이 팬티, 종이 가운, 종이 이불을 직접 보여주며 우리 일행을 위해 여분의 물품을 챙겨 주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교정시설에 이와 같은 진정실이 몇 개나 되느냐는 질문에 롭 소장은 현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에는 7개의 진정실이 있다고 했다. 수용 규모에 비해 진정실이 많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도심형 교정시설에 외국인 수용비율이 높은 만큼 적절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깨끗하고 잘 지어진 교정시설라고 해도 누구나 이곳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지 않은가. 사용빈도를 묻는 질문에 롭 소장은 정확한 숫자를 언급하기보다 교정시설 보다 사용 횟수가 많다고 에둘러 말했다. 덧붙여 진정실에 들어가는 수용자들은 마약 복용자, 알콜 중독자, 폭력성이 강해 난동을 부리거나 자해를 하려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수용자가 진정실에 수용되었을 경우 롭 소장은 수용자의 시설 적응과 치유를 위해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등이 수시로 수용자를 상담한다고 했다. 그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진정실은 절대로 징벌의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3일 이상 수용해야 할 경우 헤센 주 법무부에 보고해야 함은 슈발름슈타트 교정시설과 같다.
롭 소장은 A동의 경우 신입 수용자들이 많이 수용되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신입 수용자들의 특성상 자살이나 자해 등의 사고 예방과 빠른 시설 내 적응을 돕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사회복지업무를 맡고 있는 ‘조찌알딘스트(sozialdienst)’의 경우 수용자 입소 시 당일 면담을 실시한다. 수용자가 입소 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시설 밖의 일들, 예를 들면 주거지 임대계약 해지나 세간 정리, 은행 계좌 정리 등 소소한 일상사들을 대신 처리해준다. 심리상담업무를 맡고 있는 ‘피쇼로기셔딘스트(psychologiescherdienst)’는 수용자가 입소 후 ‘조찌알딘스트’와의 일차적 면담이 끝난 후 그 자료를 바탕으로 세심하고 심층적인 심리상담을 한다. 신입 수용자의 정신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이때 수용자의 정신적 문제가 노정되었을 때 교정시설 측에서는 해당 수용자의 정신과적인 치료를 지원한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있는데 운동을 마친 수용자들이 수용동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용자들은 담당 근무자실에 들려 자기 거실 열쇠를 받아가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1교정시설도 새벽 6시 거실문 개문을 한 후 저녁 9시 30분 거실문을 닫을 때까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직원이 거실문을 여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이 활짝 열려있는 거실은 없었다. 활동시간 이외에 수용자들은 각자의 방에서 일과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롭 소장은 신입 수용자의 경우 사전 상담 후 집중관찰 및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이면 수용자를 CCTV가 있는 거실이나 보호실에 수용한 후 정신과적인 치료를 한다고 했다. 이후 수용자의 적응 여부에 따라 그룹 테라피로 유도한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외국인의 비율이 높다 보니 문자나 강의가 아닌 그림 등의 비언어 문자 교육 등의 부담이 적은 방법을 적용한다고. 이때 외부강사의 도움이 큰데 신입 수용자의 경우 1주일에 12시간씩 모두 6주간의 테라피를 받아야한다고 한다.
▶ 다음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