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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교정시설
공간 혁신을 위한 소고

글 · 백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원래 옥(獄)은 형벌이 집행되기 전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교도소가 아니라 구치소였다. 사실 구치소와 교도소의 구분은 근대의 산물이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신체 체벌 대신 자유를 제약하는 징역형으로 징벌의 형태가 바뀌면서 구치소와 교도소의 구분이 생겨났다. 중세 농노는 토지에 묶여 살았기에 어차피 자유가 없었다. 신체 체벌이 형벌로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이다. 근대가 되어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동과 주거지를 마음대로 정할 자유가 주어졌다. 이러다 보니 역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형벌이 된다. 징역형의 등장과 함께 구치소로부터 교도소가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주리, 채찍질, 알안, 단설, 단수, 단지, 포락, 박피, 참수, 거열, 능지, 효수 등 신체 체벌형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반면 징역형은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니 훨씬 더 인권친화적이라고 보았다. 교육을 통해 죄인의 정신과 생활방식을 개조할 수 있다는 교정에 대한 믿음도 징역형의 정착에 한몫하였다.
현재 영풍문고가 선 자리인 서린방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전옥서도 엄밀히 말하면 구치소였다. 조사와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머물렀다. 태형이나 장형과 같은 체형, 위리안치처럼 절대고도로 유배를 보내는 유형, 효수처럼 생명을 끊어놓는 사형 등 형이 집행되기 전 임시로 머무르는 장소였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때마다 가져다주는 옥바라지라고 하는 한국 특유의 접견문화가 생긴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옥에 갇힌 남편, 아들, 딸을 위해 음식과 의복을 준비해서 때마다 방문하는 것이다.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수용되는 것이기에 이런 헌신을 할 수 있었다. 성내에 자리 잡고 있어 보행으로 닿을 거리에 있었기에 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갑오경장 이후 미결수와 기결수를 구분하고, 기결수를 장기간 구금하는 징역형이 도입되면서 교도소의 역사가 한국에서도 시작된다. 임시로 머무르는 곳과 수개월에서 수년을 보내며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곳은 다르다. 교화를 위한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실행하고, 운동공간도 확보해 주어야 하고, 의료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종교활동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장기 거주지로 적합한 채광과 환기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고, 정원을 배치하는 등 정서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1829년 필라델피아에 들어선 이스턴 스테이트 페니텐셔리(Eastern State Penitentiary)라고 불리는 교도소에 적용된 근대주의자들의 인간개조실험은 유명하다. 검소한 삶과 개인적인 영적 성찰을 강조하는 퀘이커 교도의 삶을 모델로 삼았다. 수용자를 독방에 거주시키고, 침묵, 반성, 회개, 자숙, 명상을 실천하도록 하고, 공동 작업장이 아닌 개별 거실 내에서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도록 요구하였다. 운동도 개별적으로 하도록 감방마다 별도의 옥외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감방에는 “하나님의 눈” 이라고 불리는 작은 창문이 하나씩 달려 있다. 창을 투시하는 감시를 위한 간수의 눈길을 하나님의 자비로운 눈길과 동일시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 개조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 고독은 달콤한 것도 아니고 정신혁명을 이루는 약제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용자가 불안감, 고립감, 우울증, 그리고 환각 증상에 시달렸다. 감시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방사형시설과 ‘내적 빛(Inner light)’을 좇는 영성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을 결합한 인간개조실험의 안타까운 실패였다.
개별 거실 내에 홀로 머무르며 침묵하고 성찰하고 회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삶의 방식이 선택지가 없는 강요의 결과였다는 사실에 있다. 다른 수용자, 교도관, 그리고 외부인과의 접촉 자체가 차단된 개인은 ‘내적 빛’을 찾기도 전에 파고드는 고립감 앞에 정신이 피폐해졌다. 공간과 규율에 의해 완벽하게 제어되는 개인에게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은 상황의 왜곡이었다. 수용자는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강요된 투명성 앞에 내몰려 고통받았다. 파편화된 개인을 기계적으로 균질하게 집적시키고 퀘이커의 삶을 강요하는 접근은 작동하지 않는 계몽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실험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홀로 지내더라도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지는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시설의 공간적 구성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면 자폐적인 개인의 공간을 넘어 ‘우리’의 영역으로 이동하도록 가교를 놓아주어야 한다. 수용거실 몇 개를 묶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룸(Dayroom)을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런 가교를 놓으려는 시도이다. 개인의 공간과 공동으로 거주하는 만남의 공간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강요하는 대신,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북유럽의 선진 교정시설이 추구하는 바이다.

옥바라지의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의 교정시설은 다른 어느 나라의 시설보다도 ‘만남’의 공간이 중요하다. 교도소의 수용자에게는 다른 수용자, 교도관, 외부인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순간은 특별하다. 가족 및 지인과 대면하는 만남, 즉 ‘접견’은 가장 특별한 순간일 것이다. ‘접견’은 편의상 일반접견과 가족접견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접견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을 건넨다. 남편 대신 가족을 부양하고자 편의점과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하루 일을 거르고 머나먼 길을 달려왔다. 미장원에 들러 머리도 손질하고 오랜만에 화장도 하였다고 한다. 손을 뻗어 아내의 손을 잡고 얼굴이라도 만져보고 싶지만 가로막고 선 유리 벽이 야속하다. 부모님과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생활고로 고초 받는 것에 대한 가장의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나면 10분이라는 시간이 짧다. 1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림이 올 때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도 솟구친다. 못다 한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 건강 잘 챙기라는 말, 그리고 모범적으로 생활하다가 나가서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겠다는 말을 연신 반복한다.
일반접견과 달리 가족접견은 직접 접촉을 한다. 민원실에서 접수를 하고, 짐을 락커에 넣고, 검신을 받고, 기다란 통로를 지나 이중보안출입실(Sally port)을 통과하면 교도소 중간 보안구역 내에 자리한 가족접견실에 드디어 들어선다. 수용자는 수용동이나 작업장에 머무르고 있다가 교도관의 계호를 받아 접견실 쪽으로 이동한다. 검신을 하고 문을 통과하면 드디어 가족접견실에 들어서게 된다. 아들은 반대편의 출입문이 열리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처럼 문이 열리며 보고 싶었던 아빠가 등장하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가 아빠에게 안긴다. 아빠는 아들을 훌쩍 들어 올려 안아주고 뺨을 비빈다. 젖먹이를 안고 먼 길을 달려온 아내와 부모님의 안부, 여동생의 결혼, 생활고, 수용 생활의 고락, 습득하고 있는 기술 등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은 어느새 지루해진 건지 옥외 놀이공간으로 뛰쳐나간다. 교도소 내 보안구역을 가리느라 내주벽으로 들 - 이들을 위해 반성하고 수용 생활 잘하고 나와서 다시 함께 새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아내의 말을 세상의 그 어떤 가르침과 바꿀 수 있을까? 애정없이 강요하는 교조적 메시지가 아니다.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과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한 희망을 북돋아 주는 말이다. 남은 형기 동안 성실하게 생활하고 자격증을 따서 아내와 가족을 다시는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

작금에 한국에 지어지고 있는 교도소는 하루가 다르게 일신되어 가고 있지만, 인간창고와 같은 느낌을 아직은 지우지 못하고 있다. 5인용 방에 7~8인이 머무르다 보니 촌각을 다투어 취침, 식사, 식기 세척, 용변, 샤워 등을 해결해야 하는 만물상 같은 거실에서 수용자들이 나부대고 있다. 자그마치 15킬로미터의 피톤치드가 쏟아지는 편백나무 숲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채광과 환기가 부족하고, 이리저리 미로처럼 꺾인 주복도와 계단, 지하통로를 따라 접견실까지 10여 명의 수용자를 인솔하는 국내 한 구치소의 교도관이 일과 중 걷는 거리를 종일 오가며 바짝 긴장한 채 교정업무를 보는 직원들도 떠오른다. 단순히 가두어 두는 곳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거공간으로, 진이 다 빠져 역정이 가득한 얼굴 대신 화기로운 얼굴로 수용자를 대할 수 있는 일터로 교도소를 더 진화시켜 나가는 걸음질을 속히 떼야 한다. 민원인과 수용자가 대면하는 특별한 만남의 공간을 만들어 교화에 자연스럽게 기여하는 변화의 장소로 교도소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눈엣가시 같은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어 어딘가로 내쫓은 편집된 도시에 살고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다 담지 못하고 삶의 스펙트럼이 확 좁혀진 도시에 살고 있다. 태생에서부터 금 바깥의 어딘가에 부담스러운 것을 갖다 몰아주는 차별을 강요하는 도시이다. 생기있는 도시는 배제와 차별을 지양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다 포용해야 한다. 삶의 스펙트럼을 직시하고 포용하는 도시공간구조를 짜는 것이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즉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방향이다. 외곽에 내쫓긴 채 주목받지 못하는 교도소는 기피시설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삶을 말 없이 떠받드는 기반시설이다. 수십 년 묵은 관성을 깨는 창의적인 교도소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것은 기성 도시의 배타적 속성에 대항하려는 자그마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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