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세상을 지키는 따뜻한 사람들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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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한다는 것

  권미선(라디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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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책 <예언자>에서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합니다. 일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싫은 마음으로 대충 하려거든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죠.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만일 무관심 속에서 빵을 굽는다면, 그대는 인간의 배고픔을 반밖에 채우지 못하는 맛없는 빵을 구울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대가 증오에 차서 포도 열매를 밟는다면, 그대의 증오가 그 포도주 속에서 독을 품을 것이기 때문에.”

빵 하나도 먹는 사람을 생각해서 정성으로 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일은 빨리 적당히 해치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죠.

자기 일을 사랑하며 책임을 다하는 사람, 이범선 작가의 수필 ‘도편수의 긍지’에 나오는 도편수가 그렇습니다. 이 도편수는 한 시골집의 공사를 맡았었습니다. 집을 지은 지 8년쯤 되는 어느 날, 그는 마을을 지나다가 자신이 지었던 집에 들릅니다. 주인과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눈 도편수는 추에다 실을 매어서는 집 뒤편으로 갑니다. 그러고는 한쪽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실을 높이 들고 서서 집의 기둥을 바라봅니다. 혹시라도 기둥이 기울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을 해 본 것이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알자, 그는 손으로 기둥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립니다. “그럼 그렇지. 끄떡 있을 리가 있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이 지었던 집을 잊지 않았던 도편수. 그는 시간을 내어 그 집을 찾아가 보고 어떤 문제라도 있을까 살펴봤습니다. 자기 일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누군가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 그 일을 책임감 하나로 30년 넘게 해 온 남자도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이 남자는 산골 오지 마을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길이 험해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곳, 그래서 매일 아침 5시간을 걸어서 출근합니다. 한때는 말을 타고 다니기도 했지만, 허리를 다친 이후로는 예전처럼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하루 일이 끝나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다시 5시간을 걸어서 퇴근해야 합니다. 출퇴근 하는 데만 무려 10시간이 걸리는 일, 힘들 때도 있지만 자신만 믿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빠질 수가 없습니다. 30년 동안 일하며 소중한 생명도 여러 번 구했기에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일에 소홀할 수가 없는 것이죠.

여기, 책임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은 덕분에 수많은 생명을 구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겨울, 한 여객기가 상공에서 새 떼와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여객기는 엔진이 멈춰 금방이라도 추락할 위기에 처합니다. 공항까지 날아가기에는 아슬아슬한 거리여서 기장은 강에 불시착하기로 합니다. 한순간의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다행히 비행기는 강 위에 무사히 내려앉았고 승무원들은 발 빠르게 승객들을 탈출시킵니다. 모두가 빠져나간 비행기 안에서 기장은 혹시라도 남아 있는 승객이 있을까 객실을 살펴봅니다. 비행기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허리까지 차오르지만, 그는 기내를 두 번이나 샅샅이 살펴보고 나서야 가장 마지막에 비행기를 떠납니다. 육지에 도착해서도 기장은 구출된 사람들의 숫자부터 물어봅니다. “자넨 괜찮나?” 걱정하는 동료에게도 그는 이렇게 대답하죠. “155명의 안전이 다 확인되면 그때 대답하겠네.” 시장과 경찰청장이 보고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에도 생존자 확인이 먼저라고 말하는 기장. 그는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무사히 구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위험한 상황,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 재빠른 결단을 내리게 한 힘은 책임감이었을 겁니다. 자신을 믿고 탑승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출해야 한다는 것, 그들 모두를 무사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 이런 묵직한 책임감은 절체절명의 추락 사고에서도 탑승객 전원이 살아남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일들을 책임지며 삽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서로를 믿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나는 당신 덕분에, 당신은 다른 사람 덕분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 덕분에,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덕분에’라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지고 있는 책임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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