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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칼럼

깊이 있는 통찰의 세계:
철학

글 · 박경연 문화칼럼니스트

많은 사람은 철학을 먹고 사는 데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세계의 엘리트들은 철학을 중요한 학문으로 여긴다. 역설적이게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철학만한 학문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자.

세계 리더들의 선택, 왜 그들은 철학을 우선순위에 두는가?

철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학문이다. 이에 유럽은 엘리트 양성을 담당해 온 교육 기관에서 오래전부터 철학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여 가르쳐 왔다. 이는 무수히 많은 엘리트를 배출하고 있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PPE(철학·정치학·경제학 융합 과정)에서 철학을 세 학문 중 가장 필두에 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랑스 또한 철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나라 중 하나다. 프랑스는 정규 고등학교 과정인 리세(lyce)에서 이과와 문과를 불문하고 철학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학 입학에 필요한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at)에서 철학 시험을 진행한다.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스펜 연구소는 엘리트 경영자 교육 기관으로 명성 높은 곳인데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급을 받는 글로벌기업의 경영 간부 후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등을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쓸모없는 학문으로 치부되기 일쑤인 ‘철학’을 왜 세계의 리더는 우선순위로 두고 배우고 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시카고 대학교 총장이었던 로버트 허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양이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이다.”

변증법, 다양한 사고의 밑거름

그렇다면 철학은 우리에게 어떤 이점을 제공할까? 철학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직시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철학의 ‘변증법’이다. 변증법은 주장 A와 그에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주장 B가 있을 때, 어느 쪽도 부정하지 않고 통합하여 새로운 주장 C로 발전해 가는 사고 과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다.
한 예로, 전 세계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보이는 핀란드의 교육 제도를 들 수 있다. 핀란드는 고정된 학년별 커리큘럼을 없애고 교과별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교육 시스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변증법을 통해 보면, 이 시스템은 오래된 교육 방식의 재해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유사한 교육 제도로 ‘서당식 교육’이 있었다. 물론, 이 교육법을 그대로 현대에 적용한다면 퇴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변증법을 활용하여, 오래된 시스템에 발전적 요소를 결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사고 방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당연한 것에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이유

철학을 통해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울 수 있다. 철학의 역사는 모두, 지금껏 세상에서 상식으로 인식되거나 당연하다고 여겨진 일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철학이 리더에게 대체 왜 중요할까? 리더에게도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를 기업에서는 ‘고잉컨선(Going Concern)’이라고 한다. 이 말에서 중요한 것은 환경처럼 기업도 계속 변화해 나간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현실에 잘 맞지 않음으로 도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경이나 상황에 맞춰 새로운 업무방식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오래된 스타일의 업무방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끝내는 것이 더 어렵기에 수많은 기업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용된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사고가 현실에 맞지 않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분명 지금껏 철학자들이 해온 일이다. 물론, 철학이 규명해 온 문제는 기업이 직면한 문제들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철학을 배움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자기 행동과 판단을 규정해 온 암묵적인 전체를 의식적으로 비판하고 고찰하는 지적 태도의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비판적 사고와 혁신 촉진

철학은 혁신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혁신은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상식을 의심하고 재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의심하는 태도는 비현실적이며, 일상생활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왜 신호등의 진행 신호는 초록색이고 정지 신호는 빨간색일까?” 같은 질문을 끝없이 제기한다면 생활은 엉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상식을 의심하라’는 일반적인 조언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철학의 진정한 역할이 드러난다. 철학은 단순히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의심해볼 가치가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하는 안목을 길러준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는 캘리그래피의 아름다움을 이해했기 때문에 ‘컴퓨터 폰트는 왜 이렇게 안 예쁠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었다. 체 게바라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 개념을 알고 있었기에 ‘세계는 왜 이다지도 비참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철학은 우리가 진정으로 의심해 볼 만한 것을 찾아내고, 그 의심을 통해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과거의 교훈, 미래를 향한 지혜

마지막으로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과거에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뇌하고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안타깝게도 인류의 비극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초래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로 과거 수많은 철학자는 동시대의 비극을 마주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비극의 장본인들은 아돌프 히틀러도 폴 포트도 아니었다. 그들을 리더로 따르기로 선택했던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 의해 세계사가 크게 요동쳤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철학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배워야만 한다. 특히, 실무자로 불리는 사람은 개인의 체험을 통해 얻은 편협한 지식을 세상이라 착각하는 일이 많다. 문제는 오늘날 세계는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상을 품은 사람들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는 대부분 실패한 경제학자의 노예다”라며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는 철학이 필요하느냐? 불필요하느냐?에 대한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철학의 빈곤한 현주소이다. 이는 획일화된 사회, 바뀌지 않는 사람과 기업, 되풀이되는 역사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더 높고 새로운 미래로 빠르게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철학을 우리 삶의 일부로 깊이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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