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나연(청주여자교도소)
나는 겨울이 좋다. 문밖을 나서면 느껴지는 매서운 아침 공기, 시린 손을 끌고 퀴퀴한 실내에 들어온 다음 따뜻한 히터 앞에 앉아 느끼는 노곤함이 좋다. 한겨울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온 세상이 하얘질 때면 뭉클해지며 마음 한편이 아릿한 느낌이 들 만큼 겨울이 좋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어냐고 물어 올 때마다 나는 단 한 번도 자신 있게 대답한 적이 없다. 다만 각각의 계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기보다 “여름에는 더워서 힘들고 겨울은 매섭게 추워서 힘들지요”라고 답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여태껏 나는 겨울을 가장 좋아했던 것이 틀림없다. 겨울의 추위는 매섭다. 그렇지만 싫은 것만은 아니다. 추위에 떨다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 몸을 녹이는것, 그만큼 마음을 녹여 주는 기분 좋은 것이 또 있을까? 겨울을 떠올리면 여름보다 더 많은 추억이 나를 감싸 온다.
나 홀로 한겨울의 이웃 나라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대학생 시절, 방학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떠났던 첫 해외여행이라 개인적으로 도전적인 의미가 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첫 해외여행은 꼭 내 키보다 높이 쌓일 만큼 눈이 많이 내린다는 홋카이도로 가 보고 싶었다. 수능을 앞둔 고3 시절 KBS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홋카이도> 편을 보고 눈이 건물보다 높이 쌓인 세상이 궁금해 여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베리아기단의 혹독한 추위에 대비해 준비도 단단히 하고 떠났다. 한겨울에도 얇은 코트로 버티던 내가 기능성 패딩 점퍼에 무릎까지 오는 방한 부츠까지 구비했다. 홋카이도의 여러 곳을 다녔다. 눈밭이 끊임없이 펼쳐지던 ‘비에이’, 야경이 절경이던 ‘하코다테’,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라는 ‘오타루’….
눈이란 눈은 소원했던 만큼 다 보고 온 것 같다.
그 많던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눈 쌓인 풍경이었다. 온 세상 가득 쌓인 설국의 풍경, 기차 소리, 따뜻한 기차 안. 이 삼박자는 지금도 겨울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자주 만나 볼 수 있다. 낯선 이국땅 오타루의 길거리 트럭에서 맡았던 익숙한 한국의 냄새, 군고구마였다. 고작 5박 남짓한 여행이었지만 3일 차부터 한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나로서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장갑을 껴도 손이 너무 시렸던 순간, 트럭에서 파는 군고구마를 꺼내어 들고 손을 녹였다. 김치가 있었더라면더 완벽했을 것이지만 그런대로 됐다.
호기롭게 혼자 떠나왔지만 막상 함께 여행하는 다른 가족들을 보니 한기가 더욱 서리는 듯했다. 초겨울인 11월께부터 군밤 장수 아저씨가 같이 팔던 고구마를 유독 좋아했던 그리운 할머니가 생각났다. 만약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어디 온천 여행이라도 함께할수 있었으리라. 쌉싸름한 마음을 접어 두고 다시 설국 여행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눈과 마음속, 오래된 필름 카메라에 담아 온 아름다운 설국의 풍경들. 지금처럼 차가운 겨울공기가 코끝을 스쳐 올 때면 그 순간이 생각나고는 한다.
공직 생활을 하는 지금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귀찮고 성가시다. 어쩌면 시국을 틈타 타고난 내 게으름으로 모든 호기로운 일상을 덮고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아까운 청춘인가.
도전 없는 내 인생은 지금 겨울을 마주하였다. 어서 이 추운 겨울의 해태를 깨어 다가올 봄의 도전을 맞이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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