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을 줄 모르는 러닝 열풍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강 변이나 공원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작된 러닝 열풍이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러닝 인구는 대략 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도대체 왜 러닝의 매력에 빠진 것일까?
웹툰 작가이자 방송인 기안84는 지난해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청원생명쌀 대청호마라톤대회’ 풀코스 완주에 성공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올해 11월에는 세계 6대 마라톤 대회 중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뉴욕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며 명실공히 2030세대 러닝 열풍의 주역으로 인정받았다.
실제로 기안84의 영향력 때문일까. 요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러닝 열풍이 매우 뜨겁다. 혼자 달리는 러너도 많지만, 러닝 크루에 가입해 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한 SNS를 통해 자신의 러닝 기록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행위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24년 11월 말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 ‘#러닝’이라는 태그가 달린 게시글은 379만 개, ‘#런스타그램’은 127만 개, ‘#러닝크루’는 62만 개에 육박한다. 스포츠 패션업계에서는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러닝의 인기 요인으로는 골프나 테니스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고, 시공간의 제약이 적다는 점이 꼽힌다. 골프와 테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장비를 갖춰야 하고, 특정 장소에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러닝은 오직 운동복과 러닝화만 착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 것이다. 또한 경기가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비교적 가성비가 뛰어난 러닝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요즘 2030세대가 러닝족으로 새롭게 유입되면서 과거와 다른 러닝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경쟁에서 벗어나 자기만족과 스스로 힐링에 집중하는 문화, 즉 ‘힐링 런’이 대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힐링 런의 인기에 힘입어 관련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우선 러너의 증가로 인해 각종 러닝 행사의 티켓팅 경쟁률이 매우 치열해졌고, 일상복과 러닝화를 다채롭게 매치하는 ‘러닝 코어(running+core)룩’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러닝 제품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와 패션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3조 1,300억 원에서 2023년 4조 원으로 증가했다. 이중 러닝화 시장 규모만 1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러닝화 카테고리의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3% 이상 증가했다. 특히 마라톤 등 러닝 행사가 많은 9월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80%가량의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다. 백화점 3사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9월 러닝화 카테고리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5.8%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의 스포츠 슈즈 매출도 각각 20%, 35.5% 올랐다. 이처럼 러닝족이 늘어나고 개인이 선호하는 스타일과 니즈가 다양해지면서 러닝화 시장은 점차 세분화 및 확장되는 추세다.
이처럼 러닝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기록에 상관없이 뛰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펀러닝(Fun-running)족’도 생겨났다. 펀러닝족에게는 극한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 역시 신나는 ‘축제의 장’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펀러닝족들을 겨냥해 이색적인 콘셉트의 러닝 행사도 앞다투어 생겨나고 있다. 이색 러닝 대회는 특별한 경험을 중요시하고 즐거운 건강 관리를 추구하는 2030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기획소 1986프로덕션은 지난 9월 대전 엑스포시민광장에서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빵으로 채운 열량을 소모하자는 콘셉트의 ‘빵빵런’을 개최했다. 베이커리 브랜드 도제식빵과 함께 참가자 1인당 1개의 빵을 사단법인 ‘프렌즈’와 대전 지역 내 아동복지센터에 기부할 수 있는 기부 캠페인도 진행했다.
또한 기업과 브랜드에서는 이색 러닝 대회를 고객 마케팅 행사로 진화시키는 중이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6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2024 장보기오픈런’을 개최했다. 장보기오픈런은 장보기와 러닝을 유쾌하게 결합한 이색 러닝 행사로 참가자들은 출발지에서 장바구니에 원하는 상품을 담고 5km를 완주하면 장바구니에 있는 상품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
지자체도 이색 러닝 행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금천구청에서 주최한 ‘금천구청장배 건강달리기 대회’는 참가비 만 원에 사은품뿐 아니라, 5·10km를 뛰면 수육과 두부김치 등 풍성한 먹거리를 주는 것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정식 명칭보다 ‘수육런’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해졌다.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이 대회는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이슈가 되면서 대회 접수 당일 접속자 폭주로 금천구청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2030세대는 기록이나 순위에 연연하는 대신 행사에서 제공하는 색다른 경험을 즐기고, 이를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그런 점으로 인해 건강은 물론 재미까지 챙길 수 있는 이색 러닝 대회는 앞으로 더욱 진화하고, 인기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