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는 지고
‘요노’가 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소비를 자랑하는 일명 ‘플렉스(flex)’ 문화가 유행이었지만, 최근 소비를 절제하는 것에서 멋을 느낀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높은 물가와 경기 침체 등의 환경 변화로 인해 소비 패턴의 변화를 보이는 203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You Only Live Once)’을 위해 과감한 지출을 마다치 않는 ‘욜로(YOLO)족’의 시대가 저물고, 소비를 절제하는 ‘요노(YONO)족’이 유행처럼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요노(YONO)’란 ‘필요한 것은 하나뿐(You Only Need One)’이라는 영어 문장의 약자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물건 구매는 최대한 자제하는 소비자들을 가리킨다.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맞는 실용적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등장한 신조어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소비 습관이 요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멋지게 살자’는 모토로 소비 시장을 이끌던 욜로족이 사라지고 요노족이 부상한 건 최근 급변한 경제 상황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욜로족 생활을 유지하기가 녹록지 않은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도 대비 3.6%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39세 이하의 평균 소득은 1.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MZ세대를 중심으로 한때 유행했던 과시 목적의 소비는 급감하는 추세다.
특히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청년층에서 요노족의 소비 방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이 Z세대 5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7%가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요노’의 소비 습관을 추구한다고 답했다. 소비를 가장 줄이는 항목으로는 ‘외식, 배달 음식, 식재료 등 식비(36.9%)’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의류, 신발, 미용 등 품위유지비(32.2%)’가 뒤를 이었다.
NH농협은행의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1~6월) 대비 2024년 상반기(1~6월) 2030 고객의 배달앱 소비 건수는 9% 감소했으며, 간편식 소비 건수는 무려 2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30 요노족은 액세서리점, 시계전문점, 고가 커피, 숙박업 등에서 타 연령 대비 소비 건수 감소율이 높았다. 특히 스타벅스 등 고가 커피 소비는 13% 감소했으나, 반대로 저가 커피 소비는 12% 증가했다.
이처럼 경제적 불안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요노족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저소비 트렌드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미국 언론은 젠지 세대(Gen Z, 1990년대 중반 ~ 2010년대 초반 사이 출생)를 중심으로 ‘저소비 코어’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 등의 SNS에서 신상품이 아닌, 오랫동안 잘 사용하고 있거나 저렴하게 구매한 물건을 자랑하는 영상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신은 너덜너덜한 운동화, 오래된 구형 전자 기기, 남김없이 사용한 대용량 화장품, 부모님께 물려받은 옷과 가방,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중고 가구 등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다.
‘저소비 코어(Underconsumption Core)’는 저소비를 뜻하는 ‘Underconsumption’에 트렌드나 추구하는 스타일을 가리킬 때 수식어처럼 사용하는 ‘core’를 결합한 신조어로 필요한 것만 사고, 물건을 끝까지 쓰는 생활 방식을 의미한다. 물질의 소유를 최소화·단순화 하자는 ‘미니멀리즘(minimalism)’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CNN은 “최근 트렌드는 쇼핑하지 않는 것”이라며 Z세대에게는 기념품으로 받은 수건, 중고 가구 등이 ‘힙한’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소비 코어를 추구하는 이들 중에는 자신을 ‘디인플루언서(de-infiuencer)’라고 소개하며 요즘 유행하는 제품을 자신이 직접 사용해 본 후 좋지 않은 점을 공유하고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고 안내한다. 고가 제품을 대신할 가성비 제품을 알려주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SNS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대한 역풍인 것이다.
또한 지속 가능한 삶과 환경 문제에 관심 갖는 이들을 중심으로 저소비 코어 문화가 번져나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불필요한 소비가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에 따라 물건을 고를 때 유행보다는 품질과 내구성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값비싼 명품과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 등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보다 내가 가진 것을 아끼고 오래 쓰는 삶의 모습을 힙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요노’, ‘저소비 코어’ 등의 트렌드가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단순한 소비 행태에 머무르지 않고, 지구를 지키는 데 일조하는 건강한 소비문화로 정착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