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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창

교도관 역할갈등에 대한 소고

글 · 김도영 인천구치소 교사

교도소의 외벽은 왜 회색일까.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선도 악도 아닌, 교도관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담 안과 밖의 경계에서 회색 외벽에 비친 나를 본다. 교도관은 형을 집행하고 권위를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교화와 상담을 통해 수용자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처벌과 교화. 이 갈림길에서 내가 느끼는 갈등은 단순한 직무의 어려움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다.

‘아동 살인’ 얼마 전, 8개월 된 아기가 친부에게 폭행당해 사망했다. 아빠의 구둣발이 얼마나 아팠을지. 잔혹한 사건 내용에 내 턱관절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언론은 연일 남자의 사건을 보도했고 범죄심리학자들은 그의 내면을 유추하고 추론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구속됐다. 남자와 내가 창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했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
“빨리 좀 처리해 주세요. 내가 좀 알아야 되겠으니까.”
남자는 부하직원에게 지시하듯 서류를 내밀었다. 교도소 예산, 교도관 수, 의료비 지출 내역 등 운영 자료를 요구하며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그는 커피 물이 따뜻하지 않다는 이유로, 교도관이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한 달에 150건이 넘는 진정서가 쏟아졌지만 이를 막을 제도적인 장치는 없었다. 교도관들은 그의 요구에 따라 수천 장의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법은 살인자도 국민으로 바라봤고 교정 공무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했다.
“됐어요. 다 봤으니까 도로 가져가세요.”
그가 귀찮다는 듯 서류를 내려놓고 잡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여성의 나체 사진이 수십 장 들어가 있는 누드 잡지였다. 아동을 살해한 사람도, 여성의 성을 유린한 사람도 누드 잡지를 구매 및 소지 할 수 있었다.
2018년, 보다 못한 어느 교도관이 성폭력 가해자의 누드 잡지 소지를 불허했다. 성폭력 가해자는 교도소가 자신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즉시 소송을 냈다. 법은 교도소가 구속된 범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손을 들어줬다.
남자는 매달 누드 잡지를 신청했고 교도관은 이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무력했다. 마치 팔다리가 잘린 것처럼 난 축 처진 어깨로 교도소 복도의 반대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교도관은 얼음 위에 불을 지피라는 요구를 받는 사람과 같다. 차갑게 규율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으면서도 따뜻하게 인간미를 잃지 말라는 양가적 임무를 부여받는다.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며, 타자의 신체를 훼손한 가해자의 신체를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 갈등은 교도관의 직무 소진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열악한 근무 환경이 더해져 교도관이 느끼는 심리적 어려움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연구에 따르면 교도관은 직무 스트레스와 열악한 환경으로 4명당 1명이 심각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도관의 자살률은 경찰관 소방관과 비교해 봤을 때 인원 대비 2배 이상이라고 보고되었다. 또한 같은 제복공무원들에 비해 폭력을 경험하는 것이 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찰, 소방 공무원의 위상과 사기를 높이고 근무여건을 개선해야한다는 내용이 담긴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교도관의 안전 및 복지증진에 필요한 기본법은 찾아볼 수 없다.
조직을 이탈하는 교도관이 늘어나자 교도관의 인권 감수성을 향상시키고 직무 능력을 함양하라는 메시지가 현장에 전달됐다. 하지만 과연 소명이나 사명감, 인권 감수성 훈련 같은 개인적 역량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이러한 문제가 교도관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주말 접견, 전화 통화 등 외부접견교통권이 확대되었고 연휴 운동, 화상 진료, 건강검진 등이 무상으로 제공되는 선진국의 교정행정이 도입됐다. 교정행정이 선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안 교도관의 근무 환경 및 복지는 어떤 상황일까. 구속된 범죄자가 교도관을 폭행하는 건수는 2019년 66건에서 2023년 190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또한 구속된 범죄자의 수는 지난해 5만 6천여 명에서 올해 6만 2천여 명으로 상승한 반면, 교도관의 수는 2022년 1만 6천 808명에서 올해 1만 6천 771명으로 하락했다.
실제 교도관을 폭행한 수용자는 벽을 치다 골절되어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호송됐다. 반면, 폭행당한 교도관은 다리를 절뚝이며 홀로 동네 병원으로 걸어갔다. 그 광경은 나를 오래도록 붙잡았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수용자의 대학병원 1인실 입원비와 수술비, 진료비는 모두 국가 예산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폭행당한 동료 교도관의 치료비와 위로금은 교도관 동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마련했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맞아야 합니까.’

회식 자리에서 동료 교도관은 지친 얼굴로 술잔을 비웠다. 그의 목소리에는 울분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위축되어 가는 교도관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교도관의 건강한 말과 행동은 교정교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효과적인 교정교화를 위해서는 교도관이 보호받는 안전한 근무환경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교정공무원의 복지 향상, 관련 법률 제정, 인력 충원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도관의 역할이 개인의 인권감수성이나 소명, 사명감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환경이 필요함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인권위원회 진정서 가지고 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남자는 여전히 불만을 토로했다. 그에게 진정서를 건네고 돌아오는 복도, 문득 벽에 붙은 인권 침해 신고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인권 침해 신고하세요.’
인권 침해를 저지른 자가 자신의 인권 보호를 요구한다. 그 요구는 법의 이름 아래 정당하다. 그러나 울음소리조차 남기지 못했던 아기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천 번이고 묻고 싶지만 법은 대답 대신 내 손에 진정서를 들려줄 뿐이었다.

프랑스 속담에 개와 늑대의 시간 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말이 있다.
해 질 녘, 저 멀리 다가오는 존재가 나를 지키러 오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을 뜻한다. 오늘 내가 마주한 그 살인자는 가까이 두고 보호해야 할 존재인가, 아니면 멀리 두고 경계해야 할 존재인가. 처벌인가, 보호인가.

어쩌면 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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