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길
새해 시작과 더불어 오랜만에 교정지에 글을 올리려니, 이렇게나 벅찬 설렘과 감회가 마음을 죄어옵니다. 졸필을 괘념치 않고 글을 나눌 여백을 배려함이 다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음을 나누어갈 글길을 발디딤에 즈음하여, 일평생 마주하고 경험했던 삶의 흔적들과 또한 그로 인해 숙명처럼 키우고 지녀야 했던 마음의 각오들을 문득 상기해 봅니다. 아울러 교정의 새로운 지평을 가리키는 희망의 언어들을 불러 보듬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소중히 새기는 것으로 내 글의 자리를 채워가리라는 또 다른 다짐을 가져봅니다. 어쩜 새해에는 그야말로 기쁨과 희망을 만끽하면서 보낼 수도 있겠다는 예감으로 마냥 마음이 따뜻해져만 옵니다. 돌이켜 보노라면 교정의 삶터는 이미 10여 년 전 아쉽게 손 흔들고 떠나왔었지만, 그러나 다행히도 교정지와의 연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왔었습니다. 매월 우편함에 들어 있는 교정지가 내게는 아주 드물고 귀한 반가움이었습니다. 언제나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열어보기도 하지만, 익숙한 풍경과 글귀들은 노상 따뜻하게만 가슴에 안겨 왔습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고 아꼈던 흔적과 기억들이 순도 높은 와인의 여운처럼 가득 배어 있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입니다.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보태어, 과거엔 몰랐거나 미처 돌아볼 여력이 없어 놓치고 있었던, 그야말로 격조 높고 역동적인 교정의 분투와 빛나는 승전보라도 마주하는 날이면, 마음 가득 일렁이는 박수가 다만 기꺼울 따름이었습니다. 우리 청춘의 모든 것이기도 했던 제복에 땀으로 남고 굳은, 과거와 오늘의 긍지가 단절되지 않고 서로를 이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제복에 배인 자존심이, 모든 격려와 응원과 함성의 좌표인 양 우리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모두를 이끌고 있었던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딴은 우리들의 길들여진 기억으로 하여 떠나왔어도 쉽게 휘발되지 않고, 마주칠 때마다 그리 애틋하고 각별한 해후의 실마리가 어디 교정지 하나에만 그치겠습니까. 길을 걷다 문득 마주치는 호송버스는 또 어떻습니까. 붉고 푸른 불빛으로 번쩍이는 그 버스를 보노라면 마치 헤어진 옛 애인의 크고 깊은 눈동자라도 마주한 듯 절로 가슴이 쿵쾅거려 옵니다. 비번 근무로 충혈된 눈을 비비며 달리곤 했던 호송버스는, 젊은 날 한때는 숱한 회한과 다짐을 담고 아프게 오가기도 했었건만, 지나고 보니 그 모두가 그립고 아름다운 시간들로 안겨 올 뿐입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아무도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추억들을 그렇듯 하나씩은 가슴에 묻은 채 늙어가는 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종합병원을 찾을 만큼 잔병치레를 하다 보니, 외부 병원 진료차 온 호송버스도 가끔 만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정차되어 있는 것이었으나, 더러는 수형자를 대동하고 하차하여 능숙하게 직무에 임하는 직원들을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법의 그림자를 보는 듯한 그 광경을 지켜보노라면 불현듯 마음이 먹먹해지곤 했습니다. 그냥 팔짱을 끼고 구경꾼으로만 머물기에는 그 모습에 엮인 세월의 무게가 정녕 만만찮았던 탓이겠지요.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을 결정한다’고도 합니다. 일찍이 제복을 벗어 일반인의 세월을 걸어 온 날도 이젠 제법 오래되었건만 교정에 관한 것이라면, 살며 마주치는 사소한 어느 하나에 이르기까지 결코 쉽게 지나쳐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초순에는 베트남을 다녀왔습니다. 퇴직 후 가끔씩 다녀온 동남아 쪽 패키지 여행상품들은 수익성을 확보하고자 하나같이 저가 항공편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저가 항공 비행기는 앞뒤 좌석 간의 사이가 워낙 좁은 터라 나로서는 그 불편함을 이겨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습니다. 궁즉통이라고, 그래서 알아낸 방법이 비상시 비행기의 비상구를 내기 위해 비워둔 좌석 열의 바로 뒷자리, 통칭 ‘비상구석’ 또는 ‘비상구열’로 불리우는 좌석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 좌석은 앞좌석과는 상당히 떨어진 여유 공간이 있어 장시간의 비행에도 불편함을 덜 수 있었습니다. 다만 비상상황 발생 시 비상구를 작동하고 승무원과 함께 승객의 대피를 도와야 한다는 임무가 부여되는 이 좌석은 미리 예약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신체 건강 여부를 확인받은 뒤에야 배당되었는데, 비행기마다 5만 원 정도의 비용도 추가로 부담해야만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좌석을 확보하고자 습관처럼 체크인 카운터에 다가섰더니, 입구 데스크에 전에 보지 못한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었기에 그 문구를 읽어 보다가 돌연 마음을 심하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전현직 군인, 소방관, 경찰관은 비상구 좌석을 우선 배치해 드림’ 하고 붙어 있는 게시문의 자구들이 큰 모욕과 배신감으로 다가든 때문이었습니다. 왜 여기 교도관이 빠져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힘들게 참아야만 했습니다.
문득 1970년대 및 80년대의 시외버스터미널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전국 모든 시외버스터미널의 매표창구에는 ‘경찰관, 교도관 50% 할인’이라는 안내문이 빠짐없이 붙어 있었습니다. 경찰과 교정이 공안의 표상으로 통칭되고, 그 수고로움에 대한 암묵적 공감대가 사회 저변에 확산되어 있음을 쉽게 눈에 넣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호송, 도주자 체포 등의 출장 시마다, 할인된 반액의 차표값 보다는 거기에 배인 세상의 한 줌 격려와 배려가 젊은 시절 그나마 우리 등을 토닥여 주는 응원의 손길인 듯해 정녕 감사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시절엔 명절이라도 다가오면, 지금과는 달리 도하 여러 일간지들이 칼럼의 한쪽을 비워 ‘지금 이 시간에도 밤을 새우며 사회의 안전을 위해 고생하는 교도관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적어, 우리의 땀과 헌신을 존중해 주길 마다하지 않았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공항 카운터 데스크 위의 표식, 그 기저에 도사린 배반감이 여행기간 내내 마음의 지푸라기로 남아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교정의 위상이 소리 소문 없이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 교정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언어들과 사회적 시선들을 적기에 대적하지 못하고 수세적 침묵과 무기력에 안주해 온 것은 아닌지, 적잖이 염려되었고 또 무척 속이 상하기도 했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며칠 지나 외출을 했습니다. 괜스레 침잠하는 마음을 추스리며 조심스레 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습관처럼 라디오를 틀었더니,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이유로 시작된 멘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병사와 다름없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경찰관, 소방관, 교도관들의 노고와 헌신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하고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간의 서운했던 내 마음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한 그날의 아나운서 멘트는 실로 따뜻하게 다가들어, 금세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교정의 시간과 기억을 찾아주는 위로는 따로 숨어 있었습니다. 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FM 라디오 음악방송을 틀어 놓았는데, 한 곡이 끝나는 순간 시작되는 음악방송 진행자의 멘트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10월 28일 오늘은 제 79주년 교정의 날입니다. 교정의 날은 1959년 교도관의 날로 제정된 이래 1973년 법의 날에 통합되었다가 2002년 교정의 날로 다시 분리되어 오늘의 이르고 있습니다. 제79주년 교정의 날을 맞아 교도관 여러분들의 수고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하고 교정의 이력을 그렇게나 상세히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뉴스 시간도 아닌 음악방송 시간에 교정의 날을 이렇듯 홍보해 주고 있다면, 이는 필시 우리 교정본부의 손을 탔음에 틀림없겠다는 생각에 그 수고가 가상하기만 했습니다. 이는 시대에 필요한 아이디어와 이를 추진할 리더십이 조직 내에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지라 마음의 흡족함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희망, 자신감, 정의 등
비물적인 가치는 무한하여
아무리 부지런히 투망질 해도
그 누구에게도
빼앗아 올 일은 없다
늦가을, 이슬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어쩜 함께하는 행운이다’라는 말에 문득 공감이 가지는 그런 날은, 바이닐 한 장을 턴테이블에 걸고, 짐짓 따뜻한 차 한 잔을 길게 음미하며 그 행운의 토닥임으로 마음을 잠재우고 싶어질 뿐이었습니다. 안온한 그 잠의 꿈은 마냥 달아, 잊고 지낸 모든 것들을 불러 가슴에 담게 해 주었습니다.
모쪼록 새해에는 보다 크고 미래지향적인 교정을 쫓아가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추동하고, 그 길이 만들어 줄 보람에 가슴을 묻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뒷날에는 될수록 빛나는 문구로 오늘을 적고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 자신감, 정의 등 비물적인 가치는 무한하여 아무리 부지런히 투망질 해도 그 누구에게도 빼앗아 올 일은 없다’고 읽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해 하얀 눈의 띠 위에, 우리 약속의 발자국들을 그 선두에 새겨 봅시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 나갑시다. 대열의 선두에 서서 그 자리를 지켜 나가려면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 법, 행여 그 길의 여정이 바람의 길, 눈보라의 길로 다가서더라도 바람이라면 그 바람의 소리를 귀에 모으고, 눈보라치면 그 눈의 몸부림을 가슴으로 품어 녹여 나갑시다.
“매주 80시간 이상 무보수로 일할 혁명가를 찾는다”는 공고를 낸, 트럼프 2기 ‘정부 효율부’ 수장으로 내정된 일론 머스크의 터무니 없어 보이는 자신감 또한, 미래와 꿈을 향한 뜨거운 투망질의 일단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느끼는 큰 기쁨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