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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칼럼

Z세대의 독서 트렌드
텍스트힙

글 · 송유진 문화칼럼리스트

가을을 수식하는 표현 중 하나는 ‘독서의 계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을은 1년 중 책 판매가 가장 저조한 시기다. 가을철 도서 판매량이 부진해서 사람들이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해 출판업계에서 지어낸 말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요즘 Z세대 사이에서 때아닌 독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텍스트힙’이라는 독서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는 것.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이들이 아날로그 감성인 책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쇼츠의 시대, 독서에 열광하는 청년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는 소셜미디어와 짧은 영상(쇼츠) 등 스마트폰 중심의 디지털 콘텐츠에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최근 일부 Z세대 사이에서 독서 열풍이 불면서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텍스트힙(Text Hip)’은 글자를 뜻하는 ’Text’와 개성 있고 멋지다는 뜻의 ‘Hip’을 합성한 신조어로 독서하는 것이 멋지다는 의미에서 등장한 말이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디지털 기기가 범람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며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해진 Z세대들이 어느 순간 비주류 문화가 된 책 읽는 행위가 멋지다고 여기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외국의 청년층 사이에서도 책을 읽는 행위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보다 힙하게 여겨진다는 기사가 무수히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독서는 섹시하다(Reading is Sexy)’라는 제목으로 영국 10·20세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종이책 읽기 열풍’을 조명했다. 세계적인 모델 카이아 거버(Kaia Jordan Gerber)가 독서 클럽을 만들면서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라고 말한 인터뷰를 인용한 제목으로, 지난해 영국의 책 판매량은 역대 최고 수준인 6억 6,900만 권을 기록했다.

디지털 세대에게 책은 신선한 콘텐츠

텍스트힙 열풍은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남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 기성세대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독서가 Z세대에게는 색다르고 희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모두가 숏폼이나 릴스 등 짧고 자극적인 영상을 즐길 때, 자신의 책 읽는 모습이나 읽고 있는 책의 표지 사진을 SNS에 노출함으로써 남들과 다른 소비를 한다는 일종의 과시 욕구와 지적인 이미지에 대한 만족감이 충족되면서 독서는 Z세대에게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Z세대에게 만연한 ‘디지털 피로감’이 텍스트힙 열풍의 요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영상 콘텐츠 소비에 지친 이들이 길고 느슨한 콘텐츠인 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의 한 방법이다.

이렇게 Z세대가 독서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면서 고리타분하게 여겨졌던 독서는 이제 소수의 멋진 사람들만 하는 특별한 행위가 됐다.

여기에 독서의 매력에 빠진 유명 연예인들도 텍스트힙의 인기를 이끌고 있다. 최근 팬들과 책으로 소통하는 연예인이 많아졌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행동과 취향을 따라 하고자 하는 욕구가 독서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인기 연예인이 방송에서 노출한 책들은 항상 이슈가 되면서 책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걸그룹 뉴진스의 버블검(Bubble Gum) 뮤직비디오에서 멤버 민지가 잠옷 차림으로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그 책은 1870년대 미국 뉴욕 상류층의 이야기를 담은 고전 소설 <순수의 시대>로 뮤직비디오 공개 직후 책 판매량이 8배나 뛰었다. 평소 독서광으로 알려진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허윤진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책을 읽어 주목을 받았다. 한 온라인 서점에 따르면 그녀가 방송에서 추천한 도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20대 판매량은 방송 전월 대비 93.8%나 상승했다. 또한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방탄소년단(BTS) 음악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BTS 멤버 RM의 책 읽는 장면이 노출되면 그 책은 항상 팬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서점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 독서를 넘어 ‘공유’와 ‘소통’으로

지난 6월에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텍스트힙 열풍이 증명되었다. 행사가 열린 5일 동안 지난해 13만 명보다 15.4% 많은 15만 명이 다녀갔으며, 특히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의 73%가 20대(45%)와 30대(28%)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4월에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도 텍스트힙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전체 성인 평균 독서율(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43%로 기록됐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20대 독서율은 74.5%로 전체 성인 평균 독서율을 훌쩍 웃돌았다.
이렇게 Z세대가 독서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면서 고리타분하게 여겨졌던 독서는 이제 소수의 멋진 사람들만 하는 특별한 행위가 됐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디지털로 모든 것을 접하기 시작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답게 SNS에 인증 사진을 올리고, 여럿이 함께 책을 읽는 동호회에 참가하는 등 혼자 조용히 하던 독서에서 자랑하고 공유하는 독서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젊은 세대의 책 읽기 유행이 과시욕에 따른 것으로 폄하되기도 하고, 독서마저 보여주기식이 되느냐며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나쁠 것이 없다는 의견이 더 많다. 독서율이 급락하고 문해력까지 떨어지는 시대에 책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을 높인다는 장점은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독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좋은 문화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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