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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칼럼

필사를 통해 누리는
마음의 휴식

글 · 송유진 문화칼럼리스트

휴가철이 되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등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특별한 휴가를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며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단순하고 부담 없는 휴식을 추구한다. 오롯이 좋은 글귀 베껴 쓰기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필사는 이러한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최고의 휴식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폰 대신 펜을 잡는 사람들

필사(筆寫)는 어떤 글이나 책을 읽은 뒤 마음에 와닿는 문구나 문장을 직접 베껴 쓰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필사가 마음 안정을 위한 휴식법이자 취미로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SNS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필사 활동을 인증하는 ‘#필사스타그램’ 게시물이 인스타그램에만 11만 개(2024년 7월 말 기준)에 달하고, 책 속의 좋은 문구나 명언을 직접 필사해 주기적으로 공유하는 것만으로 팔로워를 1만 명 이상 모은 계정들이 꽤 많다. 핵심 이용자의 평균 연령이 16~24세인 틱톡에서까지 필사 관련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다.
필사의 인기는 서점가에서도 발견된다. 최근 서점에는 다양한 종류의 필사책, 일명 라이팅북이 출간되고 있으며, 베스트셀러에까지 등극했다. 몇 년 전 힐링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던 컬러링북의 뒤를 라이팅북이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온라인 서점은 필사하기 좋은 책 속의 구절을 일주일에 두 번 문자 메시지로 발송해 주는 ‘문장 구독 서비스’를 여름 한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필사하기 좋은 책부터 펜, 노트 등 필사할 때 필요한 용품들을 함께 큐레이션 해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의 자판으로 글을 ‘치는’ 것이 익숙한 시대에 필기구로 글을 ‘쓰는’ 필사 문화의 인기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행복

과거에는 주로 손 글씨 연습이나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필력 향상을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던 필사가 지금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마음 치유법이자 취미 활동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손을 움직임으로써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복적인 동작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며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꾸준하게 필사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 필사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마치 명상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자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필사는 효율이 떨어지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뇌 전문가들은 손 글씨가 인지능력과 사고력, 학습 능력 향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조언한다. 쓰는 행위가 언어 기능을 관장하는 전두엽과 두정엽을 자극해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크다.
필사는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디지털 디톡스와 도파민 디톡스에도 효과적이다. 책을 읽고 인상적이었던 문구들을 한 자, 한 자 천천히 써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와 멀어지게 되어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불어 현재의 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되므로, 평소보다 좀 더 여유 있게 나 자신을 살피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처럼 필사는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만큼 도움 되는 점이 많은데, 훌륭한 인물들이 쓴 글을 직접 따라 써보면서 ‘나도 이렇게 해봐야지’라는 자극도 받고, 동기부여가 되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게 된다는 점도 큰 효과 중의 하나다.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인물의 생각이나 태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좋은 기회이므로 잘 활용해 보자.

지금 가장 끌리는 책부터 욕심 없이 시작하라

필사를 처음 시작할 때 어떤 책을 필사할 것인지, 필사하기 좋은 펜은 무엇인지,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베껴 쓰는 통필사를 할 것인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이나 감동적인 문장을 부분적으로 베껴 쓰는 부분 필사를 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필사족들은 원칙이 없다고 강조한다. 필사는 본인이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사할 책은 장르 불문하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끌리는 책, 자신의 취향과 관심에 가장 적합한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책으로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신문의 칼럼으로 시작해도 괜찮다.
필사를 매일 꾸준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부담을 느껴서는 안 된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전부 베끼는 통필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처음에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문장이나 생각을 자극하는 문장 등을 베껴 쓰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글씨를 잘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틀려도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 ‘글씨를 써 내려가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이 중요하며, 그 즐거움이 있어야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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