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마음
민들레홀씨는 바람을 따라 흩날리며 넓게 생명을 틔우고, 난초는 그 향기로 천 리 밖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연의 이치는 이렇듯, 아주 작은 힘으로 스며들며 세상과 사람의 마음에 일으키는 효과를 보여준다. 흔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할 때 자연을 떠올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 대전지회(이하 대전지회) 송근수 회원의 삶은 마치, 자연처럼 그 주변을 그윽하고 은은하게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
송근수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 대전지회 회원
대전지회의 송근수 회원은 지난 2007년 교정 현장에서 물러선 이래,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본격적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덧 스스로를 ‘농업인’이라 소개하는 그는 난초와 야생화, 각종 묘목을 가꾸는 농업경영체를 운영한다. 퇴임 직후 대전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세종시의 조용한 터에 집을 짓고 사는 지금이 송 회원은 더없이 안녕하다고 한다. 경제적 손실이 있기는 했어도,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에서다. 흙을 만지고 바람과 햇살의 길을 따르는 고요한 삶 속에서 한 뿌리 한 뿌리 뻗어가는 식물처럼, 송 회원은 매 순간 그 내면으로 쌓이는 생생한 이야기가 즐겁고 편안하기만 하다.
“땅의 ‘진실함’이 좋아요. 정성을 들이면 반드시 보답이 있고, 게을리하면 아무런 성과가 없죠. 아버지께서 식물을 무척 좋아하셔서 자연스레 화초와 나무를 가까이하며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식물과 함께할 때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꼈고, 내내 그때의 감정으로 지나왔어요. 이제야 농사일 속에서 그 추억을 이어가며 새삼, 삶의 균형과 진실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에요.”
송 회원의 ‘버전이 업그레이드된 삶’은 올해로 5년 차를 맞았다. 그 사이 마당에 세운 40년 된 키위나무가 내는 열매로 때마다 주변에 나눔을 했고, 최근엔 새로 심은 포도나무 ‘루비로망’이 열매를 맺어 삶의 풍성함이 더해진 듯하다. 주인의 손길을 따라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석류나무와 각종 묘목도 마당을 한 편을 채우며 작은 식물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자연과 정성 어린 손길이 함께 빚어낸 환대를 경험할 듯싶다. 나를 찾아온 이에게 종자의 특성과 재배 과정을 설명하는 일이 일차적으로는 송 회원에게 애정 깊거니와, 바쁜 일상을 뒤로 한 채 잠시라도 여유롭고 평온한 시공간을 향유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숨 고르기’가 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송 회원의 마당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다. 손님에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체험의 공간일 것이며, 적어도 송 회원 자신에게만은 또 다른 의미의 ‘교정(矯正)’이 실현되는 현장 아닐까?
1954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난 송 회원은 1976년 4월 교정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만학을 결심하고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였으며, 부모님께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 교정직에 합격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바로 군에 입대한 탓에 본격적으로 교정 업무를 마주한 것은 제대 이후에나 가능했죠. 그때 ‘교정·교화’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서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하지만 그랬기에 의미와 보람도 더 컸던 것 같고요.”
송 회원은 ‘정신교육교관’이라는 직책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며 수용자들의 가치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의 엄숙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랜 기간 민원실에 근무하며 면회객들의 절절한 사연과 눈물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교정의 의미와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곤 했다.
교정人으로서의 성찰은 조용했으나 결코 가볍지 못해서, 한마디 말과 잠깐의 시선에도 무게는 실렸다. 그렇게 그는 ‘교정’이란 수용자에 대한 교정·교화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과 사회적 범주까지 확장해 다뤄져야 할 문제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전국의 ‘다루기 힘든’ 수용자들을 맡아 특별 정신교육을 진행한 적 있어요. 1년 반을 부대끼며 변화를 위해 애썼는데, 열악한 환경과 누적된 습관이 본질적인 변화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모두가 새 삶을 다짐했지만, 또 대다수는 쉽게 무너졌습니다. 당시 일부 문맹자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료와 함께 자음과 모음 등 기초적인 글자부터 가르쳤던 게 생각나네요. 눈앞의 작은 성취가 새로운 삶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했던 거예요.”
한 사람의 변화가 가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생각해 보며 그는 교정직의 공적 책무를 깊숙이 실감하게 됐다고 한다. 어린아이를 업고 면회 왔던 젊은 아내를 위로하다, 남편의 수감 상황 속에서 가족이 겪는 고통과 상실감에 그 마음이 닿기도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러한 작용이 상대에게 작은 위로로, 심리적 안정으로, 상황에 대한 덤덤한 수용력으로 닿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며 교정직의 의미와 보람을 충분히 새기기도 했다.
조용하지만 깊고 섬세하게 역할과 사명을 다했던 교정공무원으로서의 32년을 송 회원은 지난 2007년 마무리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청춘부터 가장 빛나는 시절을 바친 교정 현장이었으니, 그 마음에 아쉬움이 적지 않았을 터. 그래도 오랜 기간 품어 온 삶의 밑그림이 있어, 이제는 채색하고 싶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청춘을 온전히 바쳤으니 당연히 많이 아쉬웠죠. 하지만 흙을 만지고 바람과 햇살을 벗 삼아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줄곧 그려왔어요. 다만 아쉬움은, 퇴임 후에도 교정인답게 봉사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또 동료와 선후배를 향한 약속으로 대신했습니다.”
송 회원은 먼저 그 오랜 그리움을 꽃과 나무가 즐비한 마당에 먼저 피워낸 듯하다. 그리고 바닥 사방에 배수로를 내고, 식물등·에어믹서기·냉각기까지 갖춘 난실에서는 퇴임 당시 동료와 선후배에게 했던 약속을 되새긴다. 물의 양과 빛의 방향, 온도와 바람까지 세심히 살펴야 제 빛깔을 드러내는 난을 돌보며, 그 고고한 품성을 닮아가고자 하는 그의 소망이 바로 교정인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송 회원은 종종, 지난 경험의 무게 앞에서 자연스레 숙연해지곤 한다.
교정동우회와의 인연을 묻자, 책갈피를 열 듯 그는 ‘2019년 1월 17일’이라는 정확한 날을 기억해 냈다. 신년 하례 겸 정기총회에 참석했다가 임원 선출 과정에서 임시 의장을 맡게 됐고, 여러 사람의 추천 끝에 회장직을 수락하며 본격적인 동우회 활동이 시작됐다고.
“코로나19 이후 동우회 모임과 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 무렵 연임하던 대전지회 회장직을 내려놓았지만, 현 임원들의 열정과 노력을 응원하며 대전지회의 화합과 발전이 제고되길 늘 기원하고 있어요.”
송 회원의 가슴 속에는 언젠가 외할아버지 댁에서 본 ‘참진(眞)’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글자는 이제, 긴 세월만큼이나 두터운 서사를 담고 그의 삶 속에서 정직·건강·노력이라는 가치로 확장, 해석된다. 말하자면, 사람이라면 마땅히 정직을 모든 인간관계와 일의 기본 삼고, 건강으로 그 모두를 뒷받침하며, 이웃과 사회를 위해 노력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송 회원의 신념이다. 바로 교정동우회를 통해 봉사의 삶을 이어가고 싶은, 교정人으로서 지닌 그의 애정과 자부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