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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우리는 한마음

개인의 삶은 단조롭되, 사회적 삶은 다채롭다. 불과 몇 글자의 이름과 함께 시작된 인생은 필연적으로 경계를 넓히면서 연대되고 확장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연유다. 그렇게 ‘나’는 시간을 따라 또 다른 여러 이름을 얻으며 삶의 색채를 더해간다. 배정배 지회장(대한민국교정동우회 광주지회, 이하 광주지회)은 삶의 이러한 이치를 누구보다 분명하게 체현하고 있었다.

  • 글 서선미
  • 사진 홍승진

행동으로 말하는 교정人,
공동체의 따뜻한 실천가 배정배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 광주지회 지회장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 광주지회 지회장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 광주지회 지회장

자격보다 앞선 책임, 실천보다 깊은 애정

이름이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할 수 있다면 그 무게는 참으로 묵직하다. 누군가의 곁에서 불리는 이름, 어떤 역할로 호명되는 순간의 호칭 모두가 삶의 기록이며 관계의 지도인 셈이다.
교정시설 인성지도 강사,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 이사, 봉사회 회장, 건강 매니저 등 많은 이름을 가진 배 지회장은 뿌리에서 줄기를 타고 잎맥으로 스며드는 양분처럼, 자신의 에너지를 공동체 곳곳으로 거침없이 흐르게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층간소음관리사’ · ‘약용식물자원관리사’ · ‘요양보호사’ · ‘병원동행매니저’와 같은 자격증을 소지한 데다, 그중 하나의 취득일이 지난 5월이라는 것. 소용(所用)이 생기면 그는 언제라도 거침없이 움직일 것이고,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자격증까지 손에 넣을 터였다. 스마트폰 화면에 빼곡히 입력된 일정표, 틈틈이 걸려 오는 안부 전화는 배 지회장이 얼마나 짜임새 있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의 활동 반경은 넓었으며, 삶과 사람에 대한 책임과 애정은 깊었다.

무등산 품고 실천하는 교정 공동체

광주지회는 교정동우회의 지역 조직 가운데서도 교정 전문성과 지역 밀착형 공공 활동을 균형 있게 실현하고 있는 단체다. 기본적으로 회원 간의 친목 도모와 교정 경험의 공유를 통해 국민의 법질서 의식 함양과 교정의 선진화, 공익 실현을 주요 목표로 활동을 전개한다. 이는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닌, 오랜 교정 현장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지속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환경 봉사 중심의 지역사회 내 실천이다. 광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무등산을 중심에 둔 활동은 광주지회만의 차별화된 봉사 철학을 보여준다. 무등산보호단체에서 상근 중인 임원 3인을 비롯해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 해설사, 환경대학 운영위원 등 다수의 회원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이는 광주지회의 지역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 의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배 지회장은 “무등산은 광주의 상징이다”라고 설명한 뒤, “광주지회는 지역 상징성과의 연대 가운데 내부 결속을 다지는 한편, 외부와도 소통하는 열린 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광주지회의 존재 의의는 교정이라는 전문성과 자원봉사의 공공성을 잇는, 지역사회 안에서 실천적 공동체로서 가능성을 확장해 가는 데 있다는 의미다.
올해만 해도 지난 3월 20일경 무등산 자락에 있는 ‘너와나목장’ 부지에 식수 200여 주를 심었다. 이어 25일에는 교정동우봉사단 창립총회 겸, 지역 내 다른 20개 단체와 협력해 광주천 정화 활동, 흙공 던지기, 대자보(대중교통·자전거·보행)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다. 또 지난 5월 말 광주광역시 옛 교도소 자리에 위치한 솔로몬파크 및 국립화순휴양림에서 볼런투어1)를 실시했고, 지난 6월에는 ‘환경의 날’을 맞아 광주광역시자원봉사센터를 비롯한 6개 기관과 ESG 실천 캠페인 및 대자보 캠페인을 진행했다.
광주지회는 회원 간 유대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격월로 열리는 회의는 각자의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며, 이는 종종 트레킹과 야외 봉사 등의 활동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배 지회장은 광주지회의 이러한 시스템이 단체 내부의 결속력은 물론, 개인적 삶의 만족도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1) 자원봉사(volunteer)와 여행(tour)의 합성어로,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면서 관광도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

현장 경험하며 마음의 직관 길러

배 지회장이 교정人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74년 6월 10일, 김해에 있는 부산교도소에서였다. 3년 후 광주교도소로 자리를 옮겨 무려 29년간, 총 32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정 현장의 최일선에서 수용자 교정과 조직의 안정을 위해 묵묵히 사명을 다해왔다.
“1973년 군 제대를 하고, 금호타이어의 전신인 당시 삼양타이어에 입사했어요. 건강했고 나약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힘들더군요. 주야 3교대 근무로 돌아가는 노동 현장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석 달쯤 지나니 더는 못 버티겠더라고요. 하지만 군대 3년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그 3개월이, 훗날 제겐 큰 자산이 되었죠.”
결과적으로 배 지회장은 교도관이 하는 일을 힘들게 느낄 리 없었다. 비번을 얻는 데 변수가 많고 밤샘 후 낮까지 연이은 근무도 다반사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3개월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오히려 그 시간은 마음의 감각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이는 훗날 수용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눈빛과 말투, 침묵 사이에 흐르는 공기만으로도 수용자의 감정이 보이는 듯했어요. 기본적으로 서류상의 정보가 있었고, 그들의 표정과 분위기로 미루어 짐작했을 거예요. 이혼 위기에 있거나 경제적 곤란을 겪는 등 어려운 상황에 있는 수용자와 이야기를 길게 나누곤 했죠. 그런데 커피를 권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경청한 것이 어느새 상담력(力)이 되더군요. 덕분에 수용자 가족은 물론, 오래전 출소한 수용자에게서도 감사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진심과 진지함의 교정 인생, 그 여정은 계속

교정 현장에서의 날들은 고단했지만, 박 지회장은 작은 일 하나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모든 기록이 손으로 작성되던 시절이었기에 정갈한 글씨로 중요한 문서들을 작성했는데, 매일 같이 차트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 내려간 보고서는 급기야 교도소를 넘어 법무부 장관에게까지 전달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보안과에서 총무과로 발령이 났던 일, 꼼꼼한 기록과 깔끔한 정리로 중요한 문서 작업을 도맡으며 실력을 발휘했던 기억, 그 능력을 인정받아 법무부에서 근무했던 8년 간의 시간을 박 지회장은 차례로 들려줬다.

교정의 세계에 있었지만 배 지회장은 그저 사람을 이해하고자 했고, 변화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싶었다고 한다. 그랬기에 명절이면 수용자들에게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과일이나 생필품을 건넸고, 주기적인 면담을 통해 담당 수용자의 이야기를 마주 앉아 듣곤 했다.
특히 그는 무기수들이 많은 환경에서도 한결같은 태도로 임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용자들 역시 그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아보고는 싸움의 조짐이 생기면 저들끼리 진화에 나섰다고 한다.
그의 성실함과 진정성은 수많은 표창과 훈장으로도 증명된다. 근무 중 법무부 장관 표창을 두 차례 받았고, 2003년에는 ‘교정대상’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퇴임 당시에는 옥조근정훈장을 받으며 수십 년의 헌신이 공적으로 인정받았다.
2005년 12월 명예퇴임한 배 지회장은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정동우회에 가입했다. 이후 이사 4년, 부회장 4년, 회장 3년을 역임하며 내실을 다지고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태왔다고 한다. 오랜 교정 경험이 단지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의 연대 속에서 의미 있게 확장되길 바란다는 배 지회장은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자 했다.
“인생은 지나고 나서야, 우리가 무엇인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묵묵히 걸어가세요. 조직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보고, 개인적 가치 또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조직과 교정의 미래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배 지회장에게 가장 깊이 새겨진 이름은 어쩌면 수용자들의 ‘따듯한 조력자’, 교정人으로서는 ‘행동으로 말하는 한결같은 실천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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