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창
교도소의 또 다른 이름은 학교라 불린다. 흔히 교도소에 한 번 갔다 온 사람들의 표현이다. 그들은 주변의 냉소적 시선을 피하려고 ‘학교에 다녀왔다’고 에둘러 말한다. 감방, 감옥, 교도소 등 자신이 생활했던 공간을 미화하는 것이고, 잠시나마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학교의 은유적 표현한다. 되새겨보면 ‘학교’라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학교뿐이겠는가! 학교의 교정(校庭)과 교정시설의 교정(矯正)은 한자어만 다를 뿐 발음은 같다. 통상 학교는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한다면, 교도소 역시 대상만 다를 뿐 범죄자의 건전한 성장과 사회 적응력 향상을 통해 재사회시키는 장소이다. 사회적으로 낙인을 받는 사람을 교정 교화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이끄는 기능을 하는 곳이 바로 교도소이다. 과거의 교도소는 단순히 격리와 구금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범죄자를 구금시켜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사회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치료정책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위험성을 제거함으로써 재범 예방과 사회 안전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61년부터 시작되었다. 교도소는 과거 형무소라고 불리었고, 교도관도 형무관이라고 불렸을 때가 있었다. 형무소의 ‘형무’는 죄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을 말하고, 반대로
교도소의 ‘교도’는 바로잡아 이끄는 것을 말한다. 글귀에서 보여주듯 변경된 명칭 속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책적 함의가 있다. 죄지은 사람을 처벌해 낙인을 주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격언을 더 가깝게 실천해 나가고 있다. 범죄자가 사회로부터 밀어내야 할 짐이 아니라, 범죄성을 치료하여 선량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치료정책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2024년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형이 확정된 수용자 38,045명 중 경제사범을 통틀은 사기·횡령 범죄자가 9,338(24.5%)명이었으나, 단일 죄명으로는 성폭력 범죄가
5,362(15.4%)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성범죄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새로운 형태의 성범죄가 계속 증가 추세이고, 또한 성범죄의 공소시효도 연장되어 잊혀질 뻔한 범죄들의
수면으로 드러나는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법원에서도 재량을 남용하지 않고 처벌을 강화하고 있으며, 범행 대상이나 방법에 따라 전반적으로 이수명령시간도 높게 부과한다. 그 결과 성범죄자
치료는 대부분 교정시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성범죄는 중독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범행을 반복하여 재범률이 높다.
통상 일회성 범행은 수형생활을 피할 수도 있으나
성범죄로 수형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동종의 성범죄가 많다.
역으로 해석하면, 법적인 문제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성적 호기심과 쾌락이 주는 기쁨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범죄를 중독성이 높게 평가하고
치료를 통해서만 교정해 나갈 수 있다.
성범죄는 중독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범행을 반복하여 재범률이 높다. 통상 일회성 범행은 수형생활을 피할 수도 있으나 성범죄로 수형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동종의 성범죄가 많다. 역으로
해석하면, 법적인 문제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성적 호기심과 쾌락이 주는 기쁨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범죄를 중독성이 높게 평가하고 치료를 통해서만 교정해 나갈 수 있다.
치료과정도 그렇게 수월하지만은 않고, 가장 힘든 치료 대상이 성범죄이다. 대부분 성범죄자는 합의된 성관계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비난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범행 책임을 부인하고,
피해자를 원망하며 그 책임을 외부의 탓으로 돌려 반성을 피한다.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형사사법 절차인 경찰, 검찰, 법원까지 억울함을 호소해 나간다. 더욱이 무죄를 주장해야 하기에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다 판사의 심기를 건드리면 높은 형량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호소는 외면당하고 피해자의 주장만 받아들여졌다며 판결에 불신을 갖고 상고심까지 가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상고심도
이를 수용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은 결국 교정시설의 치료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기에 치료과정 시작부터 적대감과 경계심이 높아 라포형성이 어렵다. 통상
치료과정은 집단상담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라포형성이 안 되면 자기 개방을 이끌 수 없어 사건을 직면시킬 수 없다.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힌다. 결국 험난한 파도를 이겨본 경험 많은 선장만이
목적지까지 순항할 수 있는 것처럼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숙련된 치료자라면 치료 초기에는 실체적 진실을 추궁하기보다 이들의 억울한 사정에 한 번쯤 귀를 기울인다. 즉, 조건 없는
수용을 보여준다. 가해자의 입장을 두둔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수치심 높은 성범죄를 부인하는 과정에 가족은 물론 누구도 자신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서운한 감정부터 달래주려는 노련함이
있어야 한다. 불만이 가득하여 성토하는 사람들에게 책임 소재를 따지게 되면 논쟁의 장이 되어 결국 배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전에 좌초된다. 수사에서 재판까지 사법기관에 대한 높은 불만부터
어루만지는 치료자의 공감적 수용은 그들에게 ‘가재는 게 편’이라는 경계심을 해제할 유일한 열쇠가 된다.
다시 말해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한배에 탄 동승자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사법행정의 연장선인 교도관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면 마땅히 의지할 대상이 없는
상황에서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처럼 의존하게 된다. 곧이어 꽉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이 시나브로 열린다. 목적지가 같다는 공감을 얻으면 태풍 같은 잔소리를 들어도 순풍에 돛 단 듯
이끌려온다. 성장 과정에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주변의 경계가 심하고, 한편 저항이 심하다는 것은 두 번 상처받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의 발현이다. 그러나 경계와
저항이 큰 사람일수록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조심스럽게 한 번 열린 마음은 반대로 쉽게 닫히기 힘들다. 믿음이 생긴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항이 심한 대상자일수록 초반에 신중하게 접근하면, 그러한 노력은 곧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유능한 치료자는 내담자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비단 한 사람이 아닌 사회로부터 외면당해 마음의 문을 꼭 닫아버린 대부분 수용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정시설 수용자들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았다고 주장하고 그 상처받은 감정을 그대로 되돌려 주며 자기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데에는 따뜻한 온기보다 좋은 것이 없으며, 경험 많은 치료자일수록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굳게 얼어붙은 마음이 살얼음 녹듯 녹아내리면 비로소 치료가 시작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중독 치료는 이러한 내담자의 심리적 특성을 먼저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 기술이다. 감히 외부전문 강사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자 교정교육 전문 강사만의 축적된 노하우가 치료의 성패를 좌우한다. 교도관은 범죄자들과 24시간 가족처럼 함께 지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기에 가능한 일이고, 그들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수형생활 중 가족들보다도 깊은 감정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고, 감히 성인이 된 그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직면시킬 수 있는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교도관만이 가능한 일이다. 감추고 싶은 감정을 찾아내어 직면시키고 왜곡된 사고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교정교육 전문 강사다.
치료과정에서 만능열쇠 역할을 하는 ‘공감적 수용’은 단면적으로는 범죄행위를 공감해 주는 것으로 오해되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나, 치료자로부터 공감받은 따뜻한 경험은 결국 피해자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시키는데 좋은 치료법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치료법이 성중독 치료 강사들의 특별한 노하우이고, 만능열쇠를 움켜쥔 교정교육 전문 강사들의 숨은 노력이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