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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이야기

교정 이모저모 ③

추운 계절의 나무는 온갖 바람과 폭우를 견디며 생명을 지탱한다. 비바람이 가혹해질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버틴다. 어쩌면 수용자 자녀들이 그렇다. 부모의 범죄로 인한 결핍과 사회적 편견에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몸을 숨기듯 조용히 침잠한다. 이들의 ‘침잠’이야 말로 단단한 ‘뿌리내림’이어야 한다. 이것이, (사)아동복지단체 세움이 지난 2015년 첫발을 뗀 이유다.

  • 글 서선미
  • 사진 홍승진

깊게 뿌리 내린 아이들이
활짝 피는 세상을 꿈꾸다 수용자 자녀의 친구 ‘세움’, 동행의 시간 기록

수용자 재사회화의 첫 관문, ‘아이들’

1961년 제1차 행형법 개정에 따라 기존 ‘형무소’와 ‘형무관’이라는 용어는 이제 ‘교도소’와 ‘교도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교정시설의 역할이 과거의 ‘범죄자의 행위를 응징하는 것’에서 ‘범죄자의 반사회성을 교화·개선하는 것’으로 전환되었음을 반영한 법적 근거이자, “범죄자의 재사회화를 통한 사회복귀가 형벌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교정주의 원리에 대한 공식 천명이다. 따라서 직업훈련과·사회복귀과의 우산 아래 시행되는 모든 교정 기관의 직업훈련 및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은 ‘수용자의 교정교화’, ‘건전한 사회복귀’를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수용자들은 자립 능력을 키우고, 사회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수용자가 교정시설에서 습득한 것들을 바탕으로 사회에 순조롭게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가 수감 생활하는 동안 감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자녀들은 그 공백을 메우기 힘들어하며, 부모가 돌아온 이후에는 가정 내에서의 정서적 연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결국 수용자 재사회화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과의 관계 회복’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먼저 그 자녀들을 위한 심리적 지원과 사회적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사회복귀’라는 말이 단순히 물리적 귀환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아울러 교정 기관의 노력과 교육을 가정과 사회로 온전히 잇기 위해서라도 단절된 시간에 대한 이해와 치유는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다.

법과 현실 사이 갇힌 수용자 자녀, 그들의 비빌 언덕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1)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와 유책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진지하게 반영한 ‘자기 책임의 원리’2)에 기반하며, 이에 반하는 제제는 그 자체로 헌법위반을 구성한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선언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수용자의 자녀들은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수용자의 자녀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심리적 어려움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생채기로 잔존하고 있으며, 부모의 부재로 인한 정서적 결핍, 사회적 낙인, 경제적 어려움 마저 이들의 성장 과정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움의 시선은 바로 이 지점을 향해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분명 ‘연좌제 금지’를 선언하고 있지만, 그 그늘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누군가의 현실, 즉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이 초래하지 않은 혐오를 감내하며 소리 없이 신음하는 아이들이다.
세움은 수용자 자녀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제도적 보호나 사회적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일을 삶의 전부로 여기지는 않게, 단절이 아닌 ‘연결’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조력하면서도 ‘보호’나 ‘도움’이 아닌 ‘동행’의 관점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아이들이 실존적인 당당함으로 일어서고, 자신을 향한 세상의 편견을 당당히 넘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한다. 부모의 부재가 남긴 정서적 결핍을 메우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도록 지지하며, 사회적 낙인이 더 이상 그들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1) 연좌제 금지에 관한 조항.
2)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하는 책임의 한정원리로 기능한다. 헌법재판소 2004. 6. 24.자 2002헌가27 결정, 헌법재판소 2010. 6. 24.자 2007헌바101 결정.

교정의 경계 넘어, 확장된 시선으로

교정 기관들은 주로 수용자 중심의 교정·교화 활동 및 상담을 진행하며 수용시설 너머에 있는 미래의 삶까지를 응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용자 자녀들에 대한 지원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에 세움은 접근 방식을 다소 변경, 수용자를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목소리와 필요에 주목하고자 했다. 교정 기관의 중심이 ‘수용자’라면, 세움의 중심은 수용자의 자녀인 ‘아동’인 것이다. 결국 세움의 활동은 ‘가족 지원’임이 분명하지만, 핵심은 “수용자 자녀의 권리와 성장을 위한 실질적 개입”이다.
제한된 인원과 예산으로 출발한 세움은 어느덧 11살이 됐다. 설립 초기 법무부 교정본부의 협조 아래 전국 53개 교도소 약 5만 7,000명의 수용자에게 설문지를 배포해 가족 상황을 파악했으며, 1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의 후원으로 세움만의 독립적인 공간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공식화된 수용자 자녀의 정확한 현황은 세움의 체계적인 움직임을 재촉했고, 이에 따라 세움은 2024년 기준 1,200여 명의 수용자 자녀를 지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수치는 세움에게 단순한 통계를 넘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목소리다. 그것은 수용자 자녀들을 향한 “당당히 일어서서, 당당히 넘어서며, 당당히 올라서라”는 수많은 응원의 외침인 동시에, 언제나 곁에 있겠다는 세움의 조용하지만 단단한 약속인 것이다.

편견·낙인 딛고 당당히 일어설 때까지

세움은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국내 최초로 수용자 자녀 인권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이는 아이들의 권리를 사회가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배턴을 이어받은 법무부가 직접 ‘보람e 시스템’을 통해 매년 수용자 자녀의 현황을 파악해 주고 있다는 것이 이경림 대표의 설명이다. 아울러 여주교도소에 국내 최초의 아동 친화적 가족 접견실을 조성, 철창을 사이에 두고 아쉽게 진행되던 면회의 순간을 함께 식사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따뜻한 회복의 시·공간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교정본부와 교도소 공무원들의 꾸준한 관심과 협력이 있었다”면서 “설립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용자 자녀들이 사회의 편견을 넘어 당당히 자라날 수 있도록 조용히 곁을 지켜왔다”고 전했다. 이어 “처음부터 그토록 탄탄하고 치밀하게 네트워킹되었기에, 단순한 지원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며 “이러한 변화가 수용자 자녀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양분이 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뿌리는 먼저 땅을 단단히 붙들어 자리를 잡고, 생명을 위한 자양분을 끌어올린다. 수용자 자녀들 또한 결핍과 편견 가운데 있을지라도, 세움은 기꺼이 그 뿌리를 감싸 안는 따뜻한 땅이 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불확실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언젠가 수용자 자녀들이 본연의 이름으로 피어나, 스스로를 곧추세우고, 자신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길 세움은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mini interview

이경림 대표 세움은 수용자 자녀를 ‘아동’으로만 대하고 있어요. 간혹 부모님과 연결되는 경우에도 수용자 아닌 누구의 어머니·아버지로 다가갈 뿐이죠. 오직 아이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움의 활동은 단순한 보호나 시혜가 아닌, 아이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북돋는 일이라 해야 할 것 같아요. 매주 세움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편히 쉴 공간을 제공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시간이지만, 그 아이들에겐 자기다운 모습으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고 경험이기도 하니까요.
전국적으로 갓 태어난 아기(교도소 내 양육유아)부터 대학생이 된 청년까지 월 평균 450여 명의 다양한 연령층의 수용자 자녀와 함께하고 있어요.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통해 현장의 위기 아동을 발굴하고 돕는 체계가 점점 견고해지고 있으니, 언젠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될 아이들이죠. 그 삶을 응원하며 세움도 조용히, 그러나 굳건하게 걸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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