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창
얼마전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통에 몇 번을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수용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저를 인간적으로 지지하고 인정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늘 잊지 못하고 꼭 한번 연락을 드리고 싶었습니다”라는 반가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이나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잘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편이라, 첫마디에 바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출소후 고향에 정착하여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며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그 후에도 만날 약속을 정해달라며 몇 번의 연락에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였는데, 올해가 가기전에 꼭 한번 그가 살고 있는 강릉을 방문하겠다고 그와 약속하였다.
20여년 전 강릉 교도소에 근무할 때, 그는 지역에서 여러 사건들로 교도소를 수차례 드나들었고 그 때마다 교도소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항상 분노에 찬 얼굴과 눈빛으로 사사건건 직원들과 부딪치며 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나름의 믿음과 자신이 있어 상담 담당자를 자처하여, 시간이 날 때면 그를 찾았고, 언젠가부터는 그가 나를 찾아 스스럼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차츰 마음을 열어갔다. 지금의 기억으로는 근무자들과 마찰이 줄고, 수용생활에 적응한 것이 그때쯤이 아닌가 싶다.
이전 여러 기관에서 실무자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수용자들과 상담을 한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수용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이혼이나 불화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어, 학교생활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을 멀리한 채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싸움이나 절도 등 범죄행위로 이어져 학교를 중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각종 범죄로 결국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교도소에 와서도 반성과 순응을 하기는 커녕 저항적이고 반항적 태도로 일관하며 수용생활을 마치고 출소해서도 큰 범죄를 저지르는 등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범죄자들을 수용, 관리하는 교정 공무원으로서 여러 사례를 접하면서 가능하면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노력해오고 있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정신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그들에 대한 이해와 인간으로서의 인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교정행정의 목표는 범죄행위로 인하여 교정시설에 수용된 이들을 교정교화하여 건전한 가정과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그동안 많은 수용자와 대면하면서 검정고시나 대학교육등 학과교육에 애쓰기도 하였고, 특히 종교활동을 담당하면서 나름 사명감과 애정을 갖고 수용자들이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여 다시는 교도소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그들을 대하였다.
삶이란 절대로 누군가 맡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더 소중히 가꾸고 살피려 노력해야 한다.
한 송이 꽃이 차디찬 겨울을 견디어 낸 끝에 꽃망울을
터뜨리듯 인생의 밤을 견뎌내야 한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기애(愛)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수용자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변해야 된다고 말하지만 필자는 진심어린 마음과 따뜻한 언어를 통해 긍정적인 영향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30여년의 근무기간 동안 그 믿음으로 수용자들을 마주하였고, 현재까지 사회에 복귀한 많은 이들이 사회에 정착하여 경제적 성공을 이루거나 종교인으로 거듭나 연락을 이어오는 것이 그 증거이지 않을까 싶다.
올해 1월 영월교도소에 부임하면서 수용자들에 긍정적 영향을 줄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한 결과 “삶이란 자신만이 가꿀 수 있는 정원이다”라는 주제로 매월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삶이란 절대로 누군가 맡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더 소중히 가꾸고 살피려 노력해야 한다. 한 송이 꽃이 차디찬 겨울을 견디어 낸 끝에 꽃망울을 터뜨리듯 인생의 밤을 견뎌내야 한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기애(愛)가 있어야 한다.” 사실 이곳 교도소에서의 생활은 누구나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 자명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모든 정성을 다해 충실히 생활하면 출소 후에 분명 누구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나라 국방과 치안·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제복 공무원은 군인, 경찰, 소방, 교도관이 있는데, 국민들에게 가장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마도 ‘교도관’이 아닐까 한다.
국민들은 교도소가 흉악한 범죄자들이 생활하고 있고 과거 일제 강점기나 권위주의 시대 때의 나쁜 이미지와 더욱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현실적인 허구의 장면에 투영된 이미지 영향으로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민 친화적인 새로운 건축양식의 교도소 건물과 주민들에 대한 시설 개방과 교류, 무엇보다 17,000명의 수준 높은 교정 공무원의 인적 자원의 전문적인 역할로 출소 후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가 새롭게 살아가야 될 수용자들에게 그들이 각자의 “삶의 정원”을 잘 가꾸어가는데 열과 성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교정의 날’을 기념하면서 국민들의 교정 공무원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