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길
매일 오전 10시경이면 집을 나섭니다. 또 하루의 안온함을 워밍업 하는, 이른바 산책의 시간인 것입니다. 늙으면서 곰팡내 나지 않은 영혼이란 없으며, 있다 해도 매우 드물다고 ‘미셀 몽테뉴’가 이미 말한 바 있었으니, 그 불쾌한 단언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바쁘고 조밀한 삶의 루틴을 만들고 볼 일이었습니다. 마음에 뜻을 품으면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다 했으니, 퇴직 후 눈비 오는 날에도 빠짐없이 행하고 있는 이 산책 또한 그 마음이 가리키는 도전의 일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술 전 몸이 건강했을 때는 만보 이상을 걸었지만, 작금의 처지에서는 잔걸음으로도 겨우 육칠천보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누군가처럼 ‘저속 노화(Slow Aging)’ 따위를 쫓는 애처로운 행각은 추호도 아니고 다만 영육을 샤워하고자 함이니, 늘상 담담하고 늠름한 마음으로 산책에 임하곤 합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의 이 시간이면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언제나처럼 산책은 기껍기만 하고, 더러는 변검 마술인 양 전혀 다른 나날의 표정과 냄새로 다가들어 유별난 생멸(生滅)의 실루엣들을 마음에 그려주기도 하지요. 유난히 춥고 긴 터널처럼 느껴졌던 올겨울을 이겨 나와 바람에 낭창낭창 흔들리는 꽃들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습니다. 아울러 파릇한 잎새들은 마냥 싱그럽기만 합니다. 그러하니 산책은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요.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은 오늘 하지 않기’를 깨우치는 지혜를 불러 주고, 어제 쓰다 막혀 답답했던 사유의 노트, 그 문장의 빈 곳을 메워 줄 단어를 문득 날라주기도 합니다. 스스로 채집되어 오는, 마음이 읽어주는 언어들이랍니다.
안양천 둑방길을 따라 500m쯤 걷자니, 오늘도 여지없이 둑방 밑 바윗돌에 걸쳐 앉아 있는 ‘비둘기 노인’이 눈에 띕니다. 이른 오전이건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의 등 뒤에는 이미 깨끗하게 비운 소주병이 감추어져 있고, 안주 삼아 먹고 남은 빵을 잘게 쪼개어 춤사위하듯 허공에 뿌리면서 그는 비둘기들과 놀고 있습니다. 길게 빨고 내뿜는 노인네의 담배 연기와 뒤엉킨 수십 마리 비둘기의 연무는 그저 슬픔의 냄새만 안쓰럽게 묻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몸과 영혼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버린 허무의 잔해, 한 사람 인생의 회한을 보는 듯해 마음이 애잔해 옵니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다시 걷습니다. 다리를 건너 공원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자니 문득 올봄에는 내내 보이지 않고 있는 ‘사랑 행렬’에 마음에 쓰입니다. 지난해 봄부터 늦가을에 이르기까지 이 시각쯤이면 늘상 마주쳐 마음을 데우게 해주었던 사람들입니다. 팔십 줄로 보이는, 발걸음 겨우 떼는 노인네 부부와 중년의 아들·며느리 일행이었습니다. 하얀 천으로 만든 끈을 이용, 아버지는 아들의 줄을 잡고 걷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줄을 잡고 걷는 그 광경은, 흔한 일상의 장면이 아닌지라 참으로 각별하게 다가들었으며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걷자면 다다르는 목적지가 또한 같았으니, 관심의 눈길도 자연스레 배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지붕 달린 평상에 다다르노라면 그 중년의 아들·며느리는 미리 준비해 온 베개를 이용, 두 노인네를 눕혀 편히 쉬게 하고는 그제서야 자신들의 몸을 푸는 등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수행하듯 반복되는 그 효행을 지켜보노라면 정녕 사랑이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어쩌면 오가며 마주 잡았던 그들의 하얀 끈에는, 드러나지 않게 쟁여 놓은 그들만의 삶의 추억과 ‘행복 염색체’들이 가득 스며들어 있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갈수록 더 잘게 쪼개지는 가족으로 사는 오늘의 세태와 대비되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다만 이렇듯 봄이 무르익었음에도, 올해는 그 가족의 ‘사랑 행렬’이 보이지 않으니 괜시리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공원에 다다르니 오늘 역시 사람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운동 기구들이 있는 쪽으로 가서 웃옷을 벗고는 옛 시절의 ‘재건체조’로 몸을 풀고는 푸시업을 시작합니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바닥에 낮게 설치된 푸시업 바를 잡고 늘상 하던대로 50회를 가볍게 하고서는 일어서는데 “할아버지 최고!”하고 웬 젊은 아낙이 큰 소리로 외치며 박수까지 칩니다. ‘늙은이도 마음속엔 아이가 산다’고, 그 박수와 칭찬이 싫지 아니합니다. 푸쉬업은 30대에 시작하여 나이에 맞추어 한 해에 1회씩 꾸준히 횟수를 늘려왔습니다. 이후 나이 50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딱 50회로 내 인생의 푸쉬업을 작정하였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들인 스스로의 의지와 수고에 의해 찾아진, 이제는 몸에 배고 익숙해진 운동이자 즐거움입니다.
푸시업 외에도 또 다른 기구들을 이용 이십여 분 더 운동을 하고서는 이윽고 귀가길에 오릅니다. 세월이란 게 마냥 가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도 이렇듯 꽃 피고 꽃향기 그윽한 새봄을 만끽하게 해주니, 내딛는 마음의 길이 이리 따뜻하고 위로가 됩니다. 세상이 암만 스산해도, 보푸라기처럼 쉽사리 잡을 수 없는 것들로 갈등하고 어지러워도 정녕 이 봄의 걸음마는 흐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햇빛 내리쬐고 산들바람 살랑살랑 부니 휘파람이 절로 나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다 내려놓고 유쾌하게 걷고 있는데, ‘오빠!’하고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 달에 한 번쯤은 산책길에 마주치는 ‘소피아 자매’입니다. 그녀 또한 이미 60대 중반에 이르렀거늘,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듯, 30여 년 전 성당에서 만나곤 할 때의 그 표정 그 목소리는 도통 변함이 없습니다. ‘오빠 멋있어! 요즘 건강은 어때?’ 내 머리 위의 카우보이형 밀짚모자를 보며 던지는 그녀의 짓궂은 언행에 함께한 그녀의 친구 두 명도 덩달아 웃으니 괜시리 민망해져 나 또한 파안대소로 응답할 따름입니다. 가족들의 건강을 서로 묻고는 악수하고 돌아섭니다. 따뜻한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난 뒤처럼, 마음의 바닥이 고즈넉해지고 또한 훈훈해지는 것도 같아 좋습니다. 어쩌면 오빠라는 어휘 때문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동생이 없었던 터라 살아오며 오빠라는 말로 불려질 기회가 도통 없었고, 요즘과는 달리 옛날에는 사귀는 남녀 간이나 혹은 부부간에도 오빠라는 말은 금기어나 다름없었고 보니, 지금의 기분이 그리하여 ‘업’된 것이라면 주책이라는 핀잔을 들어도 유구무언일 따름입니다.
아카시아꽃 흐트러진 봄의 끄트머리, 만개한 이 봄날을 깊은숨으로 들이마셔 봅니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고 했던 피천득의 글처럼, 우리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의 이웃들이 정겨울 따름입니다. 생각의 발디딤이 그지없으니, 교정이라는 등짐을 지고 걷던 추억 속 옛길이 문득 눈에 아른거리고, 어릴 적 강변 백사장에 자리했던 곡마단의 나팔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하는 그런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