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마음
한 사람의 ‘삶’은 보통 세 가지 사이(間)를 지나며 쌓이는 이야기다. 시간(時間)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공간(空間)이라는 무대 위에서 그 태도를 ‘표현’하며, 인간(人間)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저마다의 서사를 따라 익어가며 깊어진다. 변옥련 회원(대한민국교정동우회 춘천지회)의 정돈된 환경과 생기 있는 표정에서는 매 순간 그의 삶이 얼마나 ‘사람 중심’이었는지가 읽히는 듯했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넓은 바다는 쪼그라든 마음을 다림질하고, 정돈된 객실로 불어 드는 바람은 밤새 머물던 공기를 정화한다. 넓게 트인 시야에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환기되고 나니, 이내 따듯한 풍경이 그려졌다. 이제 카페에선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삼삼오오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것이며, 입실과 동시에 ‘힐링’을 경험할 투숙객들은 자신만의 시간으로 충만해지리라.
변 회원의 현(現) 무대는 밀물과 썰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를 쓰듯 드나들고, 맑은 날이면 초록빛이 유난히 깊어지는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 어느 펜션 겸 사진갤러리다. 주거지를 춘천에 두고 있는 변 회원은 이곳을 ‘퇴임 전부터 준비한 곳’으로 소개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남편이 이 지역에 왔다가 마음에 든다며 갤러리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그게 시작이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죠. 초기엔 카페와 펜션이 모두 제 담당이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들에게 카페를 맡기고, 저는 주로 펜션을 맡는 편이죠. 바쁠 땐 서로 넘나들며 돕기도 하고요.”
바다와 바람, 햇살과 사람, 그리고 가족의 손길이 겹겹이 얽힌 곳에서 변 회원의 날들은 퇴임 전과 다름없이 촉촉이, 그리고 촘촘히 짜여가고 있었다. 결국 변 회원에게 이곳은 펜션이나 카페, 혹은 갤러리라는 이름의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삶을 관찰하고 익히며 그만의 서사를 이어가는 무대임이 분명했다.
변 회원이 고성 바닷가에 마련한 이 공간은 단순히 하룻밤 묵어가는 숙박 시설을 넘어,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고 돌아가는 ‘회복의 시점(時點)’에 가깝다. 특별한 ‘무언가’는 없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흐르는 ‘힐링의 시간’은 충분히 향유되기에, 누구든 이전보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돌아가 일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기를 변 회원은 바랐다고 한다.
“고성으로 오는 길이 50%, 바다가 20%를 채우고 나면 나머지 30%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채워지리라 했어요. 그만큼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아주 잠시 스치는 곳이지만,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자신을 돌보며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죠.”
실제로 변 회원의 이러한 마음은 공간 구성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하의 갤러리에서는 상시 작품을 감상하며 사색에 잠길 수 있고, 계단을 오르면서는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에 집중하면 된다.
카페에서도 섬세한 배려는 돋보인다. 소품처럼 디스플레이된 소형 카메라들은 특별한 감성을 자극했고, 나무토막을 젠가처럼 쌓아 꾸민 벽면은 따듯하고 입체적인 질감을 선사했다. 특별히 수납장 안 메뉴 옆으로 무심한 듯 세워 둔 피규어들로 변 회원은 일종의 ‘자기 돌봄’을 권하고 있었다. 곧 공간의 모든 요소가 ‘공감’과 ‘위로’라는 하나의 의도 아래 놓였음을, 그리고 그것은 저마다의 방문객이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도록 돕는 사려 깊은 배려임을 알 수 있었다.
변 회원은 1984년 6월 18일, 춘천교도소에서 교정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불과 스물넷의 나이에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는 부연 속에는, 또 그랬기에 긴장과 돌발 상황이 공존하는 교정 현장에서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고백이 묻어 있었다. 소란한 현실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지키고, 그 성정대로 사람을 대하며 끊임없이 일상을 다독여 왔던 것.
변 회원이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3~4년 차 무렵, 스무 살 남짓한 여대생들을 마주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공감’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건대사건이라는 게 있었어요. 국화전시회에 왔던 제 또래 여학생들이 시위자로 오해를 받아 이유없이 끌려왔죠. 며칠 유치장에 있다가 들어왔다는데, 씻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난 상처에는 청바지가 달라붙어 있더군요. 제 또래라는 것이 일단 충격이었고, 그다음엔 ‘이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당시의 무력감을 아직도 기억해요.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지네요.”
그렇다고 교도관이라는 직업이 몸에 꼭 맞는 것은 아니었다. 교정직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를 시작했던 데다, 한편에선 오래 품어온 ‘교육자의 길’에 대한 소망이 계속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관련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거나 다른 길을 위한 공부를 이어가기도 했음을 변 회원은 털어놨다. 반면 조금씩 다른 감정이 싹트기도 했다. 매일 같이 마주하는 수용자들의 불안한 눈빛과 서툰 웃음, 그리고 그들의 삶을 다독이려 애쓰는 동료들의 뒷모습이 마음에 들어왔다. 겉으로는 규율과 통제가 지배하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도 사람의 온기와 미묘한 마음의 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차가운 쇠문 너머에서 오히려 인간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변 회원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교정공무원의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만지고 스스로의 마음을 단련시키는 일이라는 깨달아 가며, “어쩌면 이 일이 내 길일지도 모른다”는 소명감도 싹트게 됐다.
변 회원은 그때부터 ‘수용자 대(對) 교도관’으로 나뉘던 경계가 사라지기 사작했다고 고백했다. 교사의 꿈을 접지 못해 이어온 공부의 방향은 어느새 상담 쪽으로 흘러갔고, ‘교정’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수용자들이 수감기간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일’로 재정의 됐다.
“사람은 완전히 변하지 않더라도 변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관계도 훨씬 부드러워졌고, 승진 후엔 시야도 넓어졌죠. 예전엔 ‘기에 눌리지 말자’는 태도로 수용자를 대했다면, 이제는 그들의 삶을 헤아리며 마음으로 다가서고자 했습니다. 결국 ‘사람’이고, 또 ‘삶’이더라고요. 흔들린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걸어왔고, 지금은 참 잘해왔다고 생각하게 돼요.”
요즘 변 회원이 몰두하고 있는 일은 동화구연 봉사라고 한다. 주말이면 어린이집과 도서관 등을 찾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곤 했던 현직 시절의 경험이 퇴직 후 자격증 취득과 본격적인 활동으로 이어져, 지금은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영어 동화를 들려주는 일이 일상이 된 것. 물론 강원북부교도소 교정정책자문위원회와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일도 변 회원에게는 크나큰 의미다. “교정은 교도소 울타리 밖에서도 완성된다”는 신념이 더욱 굳건해지며 아직 현역인 것처럼 열정이 식지 않은 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여기 일을 안정시키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어서 춘천지회로 돌아가 활동할 생각에 살짝 설레기도 한다”고 말하는 변 회원의 얼굴 위로, 누구보다 성실히 현장을 지켜 온 책임감과 교정공무원으로서의 그 묵묵한 세월이 진하게 비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