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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생각의 창

  • 글 박근영 진주교도소 보안과 교위

교정분야
심리전문가가 된다는 것

1. 교정, ‘전문성’을 요구하다

1999년 11월 15일, 진주교도소에 처음 임용된 날로부터 26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보안과(19년), 의료과, 심리치료과 등(7년)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하며 수용자와 교정정책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특히 지난 5년간 심리치료과에서 마주한 정신질환자, 마약류 등 중독자, 성폭력사범들은 내게 ‘교정분야 전문가’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했습니다.
오늘날 교정은 처벌과 통제를 넘어 회복과 사회복귀를 추구하는 복합적이고 정교한 전문영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 변화 속에서 전문가란 단지 경험이 많은 실무자나 자격증 보유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고, 정책을 현장에 녹여낼 수 있는 사람, 변화의 가능성을 설계하고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전문가이며, 저 역시 이러한 기준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교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2. 실무와 학문, 두 세계를 잇다

저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2006년에 아내와 같이 서울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편입학하여 사회복지를 복수전공하며 배움을 시작한 후 2008년에는 경상국립대학교 심리학과 임상 및 상담심리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2025년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론과 현장을 연결하기 위해 강의와 실무의 접점을 넓히고자, 경상국립대 심리학과 겸임교원(2018~2022)으로 ‘범죄심리학’을 강의했고, 법무연수원 등에서 전국 교정공무원을 대상으로 인권과 심리이해 교육을 진행했으며, 소속 기관에서는 성폭력, 마약, 정신질환 교육을 맡아 동료들의 역량 강화에도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2024년에는 정신질환 수용자를 위한 11주 통합재활 프로그램을 현장에 적용하였는 데, 이 프로그램은 생물-심리-사회(Biopsychosocial) 모델을 중심으로 RNR(Risk-Need-Responsivity), GLM(Good Lives Model), 통합심리치료(IPT)의 핵심 요소들을 통합한 것으로 실험집단은 자아존중감, 사회적 기술, 스트레스 지각, 회복지표에서 유의한 향상을 보였으며 이는 현장 기반 개입의 효과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3. 국가/민간 공인 자격을 갖춘 전문가로서

저는 전문성을 형식이 아닌 실천으로 증명하고자, 범죄-중독-건강심리전문가(한국심리학회), 임상심리사, 청소년상담사·지도사, 사회복지사, 사회조사분석사, 간호조무사 등 다양한 국가/민간 공인자격을 취득하고, 이를 현장에서 위기대응, 개별상담, 집단 프로그램 설계, 실태조사, 정책 제안 등에 적극 활용하였으며, 학위와 자격, 실무 경험이 저의 삶에서 하나로 연결된 도구이자 언어가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4. 고난의 시기를 견디며, 다시 나의 길을 묻다

26년의 근무 중 세 번의 휴직을 경험했고 투서로 인한 감찰을 1회 받았습니다. 첫 번째 휴직은 석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었으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외적 갈등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고, 투서는 조사 결과 허위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퇴직을 고민하기도 하였고 자존감과 전문성이 심각하게 흔들리기도 하였으며, “교도소에선 다리 튼튼한 교도가 박사보다 낫다”라는 말은 지금도 내게 크고 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의 아픔은 저의 신념과 가치를 흔들었지만 동굴의 시간들은 단순한 시련을 넘어 교정공무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깊이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내가 진정 누구인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다시 질문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시간마다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선후배님들의 따뜻한 조언과 동료들의 진심 어린 격려였고 아내와 아들의 따뜻한 응원이었습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버텨준 이들의 존재는 단지 직장 동료를 넘어,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역경이 저를 단단하고 깊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켰고 견딘 경험은 사람을 이해하고 품는 마음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이야말로 교정전문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소중한 자질임을 확신하게 해준 감사한 일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5. 삶의 균형이 주는 지속가능성

저는 전문성을 단지 성과나 경력의 총합이라고 생각지는 않으며, 그것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지속해서 배우고 실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믿고 전문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 삶의 축을 소중히 지켜왔습니다. 첫째는 배움과 수련을 통한 자기성장이고, 둘째는 건강한 정서적 유대와 경제적 안정을 통한 가족 행복이며, 셋째는 보람과 의미를 통한 직업에서의 만족이며, 마지막은 봉사를 통한 공동체 기여입니다. 이러한 균형은 저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고 교정전문가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을 더욱 단단히 다지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초임 때 들었던 “담장 안에 갇히지 말라”는 존경하는 권◯진 선배님의 말씀대로 26년을 살아왔고, 남은 인생도 즐겁고 재미있게 의미를 찾으며 지내보려고 합니다.

6. 회복과 재범방지, 그 중심에 서 있는 교정심리전문가

교정시설은 단지 형벌을 집행하는 공간이 아니며 변화의 가능성을 일깨우고, 사회복귀를 준비하는 과도기적 사회입니다. 수용자가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고, 자기조절 능력을 기르며,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여정은 단순한 시간을 갈아 넣는 소모가 아닌 인간 회복의 본질적인 과정입니다. 교정분야 전문가의 역할은 보안, 직업훈련, 사회복귀, 의료, 심리 치료 등 여러 영역에서 그 여정을 설계하고, 동행하며, 이끌어내는 일이며, 정신질환, 중독, 낮은 자기 조절력 등 다양한 위험 요인을 지닌 수용자들이 교정시설 내에서 안전하게 적응하고, 출소 후에도 재범하지 않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것은 교정분야 전문가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도관으로 저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일지, 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도 알 수 없으나, 성장의 바탕이 되어준 이곳에서 수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능성과 회복을 믿고 그 여정을 함께하고자 하며, 실증 기반의 개입과 따뜻한 공감으로, 교정의 내일을 더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길의 한가운데에 나의 삶과 소명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7. 이 길을 걷는 후배님들에게

마지막으로 제가 걷고 있는 길을 가고자 하시는 직원분들께 한 말씀 올리고 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조직의 무게에 눌리며, 자신의 존재 가치조차 의심하게 되는 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순간을 통해 우리는 단단해지고, 깊어지며, 진짜 사람이 되어갈 것을 확신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전문성이란, 단지 자격증이나 경력, 학위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은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며, 수용자의 변화 가능성을 끝까지 믿는 사람으로, 그리고 동료에게 신뢰받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저는 교정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투박한 걸음이 후배님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보안, 직업훈련, 사회복귀, 의료 등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애쓰는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의 진정한 교정전문가라고 생각하고, 그중 심리치료 분야도 직원분들께서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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