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길

늦은 오후 경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가 문득 고개 들어 창밖을 보자니 그윽이 깊어 가던 가을이 벌써 힘을 잃고 한 발짝씩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을은 이미 옅은 황톳빛의 뒷모습을 하고 더 깊은 오솔길로 걸어 들어가며, 스스로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른 나뭇잎의 무더기들이 쉬임없이 구르고 흩어지는 등 익숙했던 가을의 몸짓이 오늘따라 유독 낯설다 싶었는데 생뚱맞게, 그야말로 뜬금없이 “아, 스크린 골프라도 한번 쳤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어쩜 낙엽향이 진하게 밴 상실의 계절에 동화되어, 성치 못한 육신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의 일단이 난데없이 요동한 탓이거니 싶어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범속한 일상에서 잠시라도 심연을 환히 비추어 줄 ‘등대 같은 삶의 주문’ 하나쯤이 필요하다 했을지라도, 꼭꼭 숨겨둔 욕망이 두서없이 고개를 들고 스스로를 떠민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필 골프를 이름하였음은 정녕 뜻밖의 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십여 년 전 경추의 이상 증세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은 터라 골프채 따윈 진작에 버리고 살아왔었기 때문입니다. 호전을 기대하고 받은 수술이었지만 그 예후는 오히려 수술 전만 못하여 입술을 깨물었고, ‘타고르’의 말처럼 ‘고통을 멎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온 세월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 가을에 느닷없이 골프가 생각났었는지, 독백은 사소한 푸념조차 깊이 파고들어 내상을 입힌다고 하더니만, 과연 적지 아니한 마음의 갈등과 흔들림을 자아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공이 맞든 맞지 아니하든, 몸이 아프건 말건 문득 찾아온 이 가을, 이 욕망을 마냥 외면한 채 고개를 돌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찰나에 오기마저 북받쳐 올랐습니다. ‘실패는 남이 만들지만 포기는 내가 한 것’임을 더는 변명하지 말자고. 삶의 영역을 제한하는 마음의 장벽 앞에서 쉽게 몸을 사리고 주춤거려 온 자신에 대한 질타와 맹성이라고나 할까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맞는지 고민하지 말고 결정하고서 그걸 옳은 결정으로 만들라’는 말도 생각났습니다. 생각이 바뀌기 전에 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토요일 스크린 골프를 하자고 얘기했습니다. 난데없는 골프 회동 제의에 ‘아버지 괜찮으시겠습니까’하고 크게 놀라는 아들의 목소리는 그러나 유쾌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컨디션이 그만큼 좋아진 것이리라 지레짐작하고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자면 골프에 얽힌 내 인연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1999년 초임 소장으로 부임한 안동교도소는 물론 그다음 근무지인 대구구치소 등에 자체 골프연습장을 만들었었습니다. 당시 안동만 해도 교도소 인근에 이미 골프연습장들을 여럿 볼 수 있었기에, 행여 이런 것들이 직원들의 마음에 열등의 지푸라기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주어진 여건을 즐기지 않는 것과 여건이 주어지지 못해 아예 즐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흐름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동의 경우 교도소 구외 산기슭에 자체 사격 훈련장이 있었는데, 연 1회 직원들의 사격 훈련 시를 제외하고는 방치되다시피 한 곳이라 골프연습장으로 병행 사용하기에 제격이었습니다. 사격장 전방 둔덕에 큰 기둥들을 세워 그물망을 치고, 사대 쪽에는 여러 개의 타석을 만들어 연습용 아이언을 비치하니 제법 그럴듯한 골프연습장이 만들어졌었습니다. 대구구치소장 재임 시에도 구외 공터를 활용, 골프연습장을 만들어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 기여토록 하였습니다. 다만 직원들을 위해 골프연습장을 만들었을지언정 스스로는 골프채를 잡아 본 적도 또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직원들의 사기 앙양을 위한 선의의 행위도 자칫하면 기관장이 골프에 빠져, 골프장이나 만들어 노닥거린다는 왜곡과 호도에 직면하기 십상인 때문이었습니다. 음모의 문화에 젖은 눈은 늘상 부정적 복선만 바라보기 쉬운 탓이기도 하지요. 아니나 다를까요. 모 정보기관 요원이 귀띔하길, 기관장이 골프연습장을 만들고 골프에 빠져 있다다는 첩보가 있어 탐문한 결과, 직원들을 위한 것일 뿐 정작 기관장은 골프채도 잡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파안대소하였으며, 상부에 보고하기도 좋았다고 했었답니다.
아무튼, 그간의 교정시설 골프연습장 건립 기여에 대한 보상이라고나 할까요. 대구구치소 근무 중 그야말로 골프의 산실이라 할 국방대학교 입교 명령이 하달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방대학교는 주어진 본연의 학과 못지않게 주말 골프의 친교 또한 무척 중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골프채를 구입하였고, 입교 전부터 동네 인근의 골프연습장에서 개인 교습을 받는 등의 호들갑을 떨기도 했습니다. 그 후 10여 년의 세월 동안 골프채를 놓지 않고 틈틈이 즐겨 왔었니다만, 갑작스레 닥친 병마로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은 뒤로는 골프채를 아예 놓았으니, 그 세월이 또한 이미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면역을 잃어버린 탓인지라 골프라면 만정이 다 떨어져, TV를 시청하다가도 골프에 관한 것이 나오면 재빠르게 채널을 돌리기 일쑤였답니다. 그러했었기에 오늘의 이 갑작스런 골프에 대한 도전을 괴이쩍고 불편한 느낌 없이 선뜻 수긍하기가 쉬울 리는 만무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약속한 토요일이 다가왔고, 아들과 며느리가 골프백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이미 스크린 골프장도 예약해 두었다고 했습니다. 갓 문을 연 듯한 깨끗한 시설의 스크린 골프장에서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이렇게 네 명이 함께 일합을 나누었습니다. 10여 년 만에 마주하는 공인지라, 헛스윙과 뒷땅, 탑핑 등 연속되는 우리 부부의 몸짓은 연신 폭소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비록 잔디 깔린 넓고 푸른 골프장이 아니어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낭만과 열정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더니, 그 말은 맞았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할 때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과 같이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런 시간을 가져보기를 정말 원했었는데,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더듬거리며 말하는 며느리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면서, 어쩜 그간 내 삶의 속도와 필요에 겸손하지 못하여 주변 사람들 모두의 소슬한 성취마저 앗아온 것은 아닌가 싶어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 왔습니다. 다만 마음의 곳간을 풀고 열정을 다한 오늘의 몸짓으로 하여, 묵은 빚 하나는 갚은 기분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내친김에 다음 달에도 스크린 골프를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몸의 불편함쯤은 이겨내기로 했습니다. 마음의 잠금을 풀었을 때의 그 비워냄이 주는 해방감의 풍요를 더는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자신만의 속도와 풍경을 고집하기보다는 타인의 삶과 속도를 감안, 과속과 감속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옳을 듯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며느리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거기엔 우리 부부의 골프화와 골프 장갑이 곱게 포장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