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형무소와 근대 행형(하)
Ⅰ. 부산형무소 연혁
Ⅱ. 시설 현황
Ⅲ. 직원
Ⅳ. 수용자
Ⅴ. 처우
Ⅵ. 형무 작업 및 교육·교화
Ⅶ. 기타
Ⅳ. 수용자
1. 서
1926년 이후 일일 평균 수용 인원은 꾸준히 증가했으며 1930년 수용 연인원은 252,507명, 일일 평균 수용 인원은 690.43명이었다.
2. 수형자(1931년 5월 30일 기준)
가. 죄명별
601명의 수형자 가운데 절도죄가 341명으로 약 57%를 차지했고 강도, 사기 및 공갈, 문서위조 등의 순이었다. 괄호는 여자를 나타내고, 각 죄의 5인 이하는 기타의 죄에 포함했다.
나. 연령별
다. 형기별
수형자 형기별 내역은 무기형과 15년 이상의 수형자는 없었으며, 10년 이상 15년 미만의 수형자 7명이 수용돼 있었으며 구류형은 7명이었고 내역은 아래 표와 같다.
라. 입소 횟수
마. 최근 5개년간의 신수형자 중 초범과 누범별
1926년부터 1930년까지 2,945명의 신수형자 중 초범은 1,941명으로 65.9%, 누범은 1,004명으로 34.1%를 차지했다. 누범자가 많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부산은 일본과 조선의 교통요지로 경성에 이은 대도시이자 상업이 번성하는 등의 이유로 인한, 즉 정주성(定住性)이 좋아 도시 집중의 폐해에 의한 결과로 보인다.
3. 수용자 등
가. 입소자
나. 출소자
다. 판결확정자를 제외한 피고인 석방자
※ 기타란은 보석, 예심면소, 구류만기, 구류취소 등임.
라. 형사피고인 체소(滯所) 기간
4. 출정 인원
5. 가출옥 인원
1926년부터 1931년까지 가출옥 인원은 아래 표와 같으며 1931년은 아직 반년에도 이르지 않았는데 예년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증가한 것은 종래에 반해 단기수형자로 이런 종류의 은전에 따른 바에 의한다. 아울러 형집행정지는 1926년 중 3명, 1927년 5명, 1928년 3명, 1929년 4명, 1930년 3명, 1931년 2명이었다.
Ⅴ. 처우
수형자가 항상 평온을 유지하고 또 점차 근면의 습관이 증진되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리고 상우의 방법으로 작업독려규정, 소년처우의 주의사항, 수형자의 조례(아침 세면 후 모두 동쪽 하늘을 향해 간수의 지휘 아래 황실을 받들어 감사하는 마음, 조상숭배, 사은보사(四恩報謝, 부모의 은혜, 국왕의 은혜, 중생의 은혜, 3보(부처, 부처의 가르침인 법, 승려)의 은혜)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표시함, 그 성적은 양호함), 기타 교회시(敎誨時)의 시설 등은 다른 형무소와 다른 점은 없었다.
1. 수형자 동작 시간표
※ 취사부의 기상은 기상 전 2시간 이내로 한다.
2. 식사
주식물은 수수 4분(分), 밤 3분(分), 대두 3분(分)의 혼합취사이고, 부식물은 아침은 된장국을 주로 하고 낮에는 절인 채소류를 주로 해 채소 및 해조류에 천연 양념을 더해 조려서 주었다. 또한 10일에 2회 이상 생선, 고기 또는 다른 육류를 공급하는 것을 예로 하고 기타 법규정상의 상우자(賞遇者)는 물론 작업성적이 우수한 자에게는 각 규정에 근거해 가끔 특별메뉴에 따라 다른 채소를 공급했다.
1일 1인 평균 식비는 8전(錢) 내외이다. 이는 전년 동기의 9.47전에 비해 1전 넘게 줄어든 것인데 전년보다 각 곡물 및 야채의 가격이 내렸기 때문이다. 그 밖에 영양 가치를 계산함에 평균식은 2,800칼로리 이상으로 보건상 조금도 지장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없으나 당시 일반피수용자의 영양상태는 좋았다.
3. 형무소 비용과 재소자 연간 1인 비용액
1928년부터 1930년까지 3년간 1인 1개년의 비용 평균은 265원 92전으로 이를 재소자 1년 연인원으로 하면, 즉 1일 1인당 제 경비는 72전 9리가 된다.
※ 임시부 제외
4. 행장 심사
행장이 양 이하로 개전의 정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심사 수가 많음은 누범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5. 연도별 상표(賞票) 부여 인원
6. 연도별 징벌 인원
7. 연도별 환자 인원
Ⅵ. 형무 작업 및 교육·교화
1. 형무 작업
가. 서
작업은 30개 업종에 592명이 취업했다. 관사업(官司業)에 있어 197명 중 벽돌공 73명을 최다로 하고, 다음으로 직물공 21명, 청소부 16명(감방, 공장, 기타), 보철부(補綴夫) 14명, 영선부 10명, 양재봉공(洋裁縫工) 9명, 세탁부 8명, 기타 혁공, 죽세공, 타올, 부포(敷布), 도기공(陶器工), 무력(錻力, 철강을 주석으로 표면 처리한 강판, 깡통 등 항상 수분과 접촉하는 부재에 이용되는 외에 예전부터 완구의 주요한 재료), 영선부 등 계 41명에게 작업을 부과했다. 관사업 중 양복, 구두, 지물, 벽돌에 전적으로 집중해 다행히 지역 사정도 좋고 각 업종도 수요자가 많아서, 특히 양복공은 주문이 쇄도해 성황을 이뤘고, 때때로 작업시간을 야간으로 연장해 제작하기도 했다.
수부업(受負業)은 326명 중, 기계직강공이 146명으로 최다이고, 이어서 쿠루메 가스리공(久留米絣工, 큐슈 쿠루메 지방에서 나는 튼튼한 무명이며 감색 바탕에 흰 점박이 무늬가 있음) 86명, 수망공(手綱工, 손에 들고 물고기를 잡는 그물) 73명, 지물 18명, 혁공 3명이다.
위탁업에는 69명 중 종려공(棕櫚工, 종려나무 가지로 만든 제품) 43명을 최다로 하고, 이어서 행낭공(行囊工,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넣어서 보내는 주머니) 7명, 지물공 5명, 양재봉공 4명, 기타 죽공(竹工), 경사공(經師工, 경문을 쓰거나 쓴 것을 표구하는 사람), 이발, 혁공, 인부 등 10명이 사역했다.
부산형무소 공장, 조선형무소 사진첩
망공, 조선의 행형제도
나. 형무소 수입액 및 이익금과 1일 1인에 대한 비율
1928년부터 1930년까지 관사(官司)업, 위탁업, 수부(受負)업 합계는 아래 표와 같다. 1928년도의 수입금이 적은 것에 반해 이익금은 1929년, 1930년 두 해에 비해 그 액이 많은 것은 1929년, 1930년도 모두 점차 공임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1929년도의 관사업 수입액은 1930년도의 수입에 비해 그 액수에 관계없이 이익금이 1930년도는 1929년보다 그 금액의 많은 것은 제작기능의 향상에 1인 독려를 가한 결과 비교적 정교품을 제작한 것에 따라 좋은 평가를 고려한 것이다. 1929년도의 위탁업 이익금은 1930년도에 비해 많고, 1인당 그 액이 적은 이유는 1930년 종연공장(방적공장) 신설에 따른다.
다. 작업상여금 계산고
작업상여금 계산은 취업 일수에 따라 산출한 액수이다.
라. 형무소 수입 1인당 1일 평균액
마. 농작품 수확고(1930년)
농작물을 심은 연평수 3,594.8평에 대한 수확고를 나타낸 것이다.
바. 1930년도 석방 시에 급여한 작업상여금
사. 특별작업
부산은 사계절 항상 바람이 강하고, 특히 소재지인 대신정(大新町)은 구덕산의 고개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 흔히 대신남(大新嵐, 거칠고 세차게 부는 바람. 비, 눈, 번개를 동반한 경우도 있었다)이라고까지 부르기 때문에 모래 먼지가 흩날리고, 부산형무소 구내 노면은 크고 작은 돌멩이가 섞인 거친 흙 때문에 그 피해가 심했다. 또 비가 올 때는 진흙탕이 돼 보행에 고생하는 속사정이 있었다. 일찍부터 지반정리의 필요성을 통감해 여기저기 깊이 조사한 결과, 그 지형 일체를 보니 구내 주변의 조금 높은 곳에서 항상 물이 흐르는 등의 사정을 감안해 예전에는 큰 강이 있었다고 생각돼 구내의 한쪽을 시굴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으나 크고 작은 돌이 엄청났다.
부산형무소는 그 위치나 지반 높이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듯이 옛날에는 큰 강의 밑부분으로 증명돼 새삼스럽게 그 변화의 커다란 흔적에 깜짝 놀랐다. 이에 구내 지반의 근본적인 대정리의 단행을 기획하고, 먼저 구내 예상 개소의 자갈 채굴에 착수해 사용이 가능한 돌을 3단으로 선별하고, 잔돌의 양이 엄청나 백여평(선별 외의 큰돌은 신설 우물 둘레에 사용하고 남은 다량(多量)은 장래 사용할 영선용으로서 한쪽 구석에 쌓아 둠)으로 해, 큰 것은 구내 차도에 깔고 작은 것은 빈 땅 한쪽에 뿌려 1931년 5월 말 구내 전부의 지반정리를 완료했다.
이를 통해 구내는 지난번의 우천 시 진흙탕 모습이 자연히 사라져 깨끗해지고, 강풍에 수반하는 모래 먼지도 그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규율, 위생, 풍경 등 혁신의 느낌이 들었다.
2. 교회
가. 서
총집교회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교제(敎題)를 게시하고 가끔이지만 서화 또는 분재류를 진열했으며 또 사대절(四大節, 전에 국경일로 삼았던 四方拜, 紀元節, 天長節, 明治節의 총칭) 당일에는 전 직원이 나열해 레코드로 국가를 연주해 그 기념일을 엄숙하게 해 봉축의 의의를 더했다. 또 경우에 따라 시간을 달리해 감화교육을 위해 한두 번 레코드를 연주하는 일도 있었고, 이렇게 교회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지 않도록 한층 더 청각과 시각의 양면으로 구체적으로 이를 주입해 교회에 대해 느낀 감정을 깊게 하도록 했다. 이에 더해 항상 역사, 공예, 종교 및 군사교육, 풍경 등의 그림엽서를 각각 엄선한 후, 교회 후에는 주간 휴게시간을 이용해 이를 계속 열람(그림엽서 6장을 유리 뚜껑 면에 배열해 그 3면을 게시판 형태로 장치한 칸막이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 서화, 분재, 그림엽서류의 전람은 정서교육 및 상식 향상을 환기해야 할 취미의 향상에도 가치가 있고, 특히 레코드처럼 악기는 정신의 정화통일을 도모해 감정을 완화하고 종일 침묵 생활을 하는 수형자의 기분을 신장하는 자동적 감화의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좁고 좁은 곳에서 부자연적 생활을 계속해 침체된 그들의 정신을 위안하고 혹은 혼탁한 잡념이나 몰래 품는 불만을 서화나 그림엽서처럼 정성이 가득한 아름다움과 분재와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해 이를 진정시켜 심기일전의 기회를 주도록 했다. 또한 동시에 규율적 작업에 피곤해 활기가 없는 정신에도 자연의 미를 접하게 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심신의 위안을 주고 나아가서는 사자(四者) 모두에게 그 사상을 고상(高尙)하게 하며 차분한 감화를 도와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를 실제 시도해 본 결과 현장 등에서 그들의 긴장감을 증가시켜 교화상 도움을 준다고 판단됐다.
교육
나. 총집교회
다. 개인교회
개인교회는 정기교회 16종이 시행됐으며, 1930년 정기교회가 전년에 비해 현저히 감소한 이유는 5범 이상의 자에게 어떤 사항에 관해 특별조사를 했기 때문에 의한다. 통신교회란 석방후 서면으로 교회를 하는 것이고, 이감교회란 이감 전출 시 실시하는 교회이다.
3. 편지 및 접견
가. 편지
나. 접견
1929년 중 1일 평균 취급 수는 14.9명, 1930년 중 1일 평균 취급 수는 11.1명이었다.
Ⅶ. 기타
1. 형무 훈련 10항
아래 형무 훈련 10항은 1929년 8월 1일 당시 부산형무소 소장이었던 不動藤太郞이 직원들에게 교육을 목적으로 정한 것이다.
① 형무 관리는 항상 자기의 대상인 재소자 교화의 소임을 생각해 그 직무의 중대차함을 깨닫고 자기 인격의 수양에 노력하며 책임감이 절실하다.
② 계호경계는 형무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므로 이러한 임무는 시종일관 지성으로 번뜩이는 안목과 부단한 정신으로 추호도 편승할 기회를 주지 말고, 기타 사람을 대함에 있어 몸소 실천해 빈틈없이 준비할 필요가 있다.
③ 형무 관계 제법규의 연구는 물론 항상 담당 재소자의 신분장 활용과 기타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 그들의 성격, 개성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④ 행형 운영의 중심축인 규율의 엄수와 직업 훈련을 실시해 작업시설과 그 격려에 의의를 두고 인류 당연의 노동의 습관을 배양함과 아울러 규율의 본질을 깨달아 오만불손하고 안일하며 불규칙한 폐단을 교정해 언제나 땀 흘려 단련한다. 이로써 행동력을 높여 이른바 일하면 먹을 능력은 생기고, 밭 갈면 음식은 그 안에 있으며, 근무는 봉급 속에 있다는 생각을 깊게 해 실질적으로 굳건한 습관을 배양하는 데 노력한다.
⑤ 시험 삼아 형무소는 일종의 병원이고 교육기관이라는 생각을 할 때 직원 일체는 의사, 교회사, 교사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교회교육은 반드시 교무계의 독점으로 해 이의 원조에 뜻을 두고 의료, 위생 역시 의무와 협력해 보건에 유의해야 한다. 원래 행형교육은 사회 실생활에 순응하기 어려운 보통의 지식, 기능을 전수받아 국민으로서의 도덕성의 함양과 이성의 계발을 목적으로 인격의 향상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도의적 훈육에 힘을 쏟아 교회와 같이 개별교회를 존중해 장점을 장려하고 악습의 교정에 힘쓰도록 한다. 이것 등의 중요한 임무는 항상 감방, 공장 등 적어도 그들이 접촉하는 자를 곳곳에서 개인적 교회, 교육, 의료를 실시해야 할 이유가 바로 비독점에 있다. 이리하여 계호처우 모두 관대함과 엄함이 필요하고 변화에 덕으로 대우해 인도(人道)와 공평(公平), 온정(溫情)으로 이끌고 또 지나치거나 빠짐없이 법의 존엄과 철저한 법치 국민의 관념을 배양해 행형처우의 중요한 점을 실패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⑥ 수형자의 행장 시찰은 행형 최대의 중요한 업무라는 생각으로 당연히 그 정밀조사를 태만하지 않도록 유념하고, 이의 심사 결정의 적정을 기하기 위해 좋은 자료를 제공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⑦ 직원은 한 가족이라는 감정과 의지로 항상 화친, 협력, 질서, 복종을 염두에 두고 또 이로써 공규정을 바로잡는 데 뜻을 두어 직무적인 의견 개진에 인색하지 않도록 허심탄회하고 당당한 길로 나아가 집단정신을 정화해 이로써 그 사명을 공고히 하도록 한다.
⑧ 형무의 내외(內外)는 항상 청결 정돈에 힘쓰고 특히 모든 사물에 대한 경제적 도덕 관념에 기초해 취급하거나 친절 공손을 취지로 또다시 폐물(廢物)의 이용에 힘쓰는 등 실제로 이를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자제심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나아가서는 그 어지럽고 혼탁한 두뇌의 도야(陶冶)를 꾀한다.
⑨ 행형사무는 복잡다단해 항상 서로의 의사소통을 꾀하고 통일적인 연락을 유지해 사무의 간명하고 정확을 기해야 한다.
⑩ 외래인에 대한 친절하고 정중함으로 적어도 불쾌감을 주는 것 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
2. 부산형무소를 견학하고(부산형무소 참관기)
1931년 5월 22일 도청으로부터 공문에 따라 동래군, 경상남도 선찰 대본산 범어사 승려단 문학사(文學士) 相馬勝英(소마 쇼에이) 씨 외 21명의 참관이 있었다. 참관 후 소마 씨가 보낸 소감문이다.
감옥을 형무소라는 말로 대신했을 때 우리들의 형무소에 대한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 역시나 감옥의 문 앞에 섰을 때는 학교를 참관하는 것 같은 희망이나 기쁨은 아니고 볼 수 없는 것을 볼 때와 같은 호기심과 공포심에 휩싸였다.
사무실이 바쁜 것처럼 보였지만, 곧 그것과는 관계없이 소장실로 안내됐다. 의외로 좁고 불편함에 놀랐다. 거기에서 실내 가득히 공작품이나 미술품의 진열장을 봤을 때, 마침 초등학교 교원실에서 볼 수 있는 아동의 작품 진열대 같은 생각이 들어 자연히 우리들의 긴장된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소장으로부터 정중한 인사, 그리고 여러 가지 참고로서 건물이 불완전하다는 것 등 수형자의 의식주에서 위생, 거기에 일상생활, 수형자들에 대한 일체의 조사표까지 설명해 주었다. 이제 이곳 형무소의 일상생활의 목적을 아는 것이 가능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형무소에 대한 개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어서 실지 견학으로서 안내받았다. 먼저 조용하던 공간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지면 무섭고 엄중한 문이 열리고, 우리는 묵묵히 가지런히 정리된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쪽문이 닫히면 우리는 소위 그들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 세계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서 그 안에 커다란 사동이 늘어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엄중하게 경계하고 있는 자 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없다. 작은 주춧돌이 놓인 곳을 밟으며 병동으로 안내받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상당히 밝은 건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몇 개의 거실 안을 엿보았더니 5, 6명이 누워있었다. 모두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 옆이 의무실로 형무소의 의무실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곳을 나와서 공장으로 향했다. 리어카를 운전하며 주어진 작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베를 짜는 사람, 양복을 만드는 사람, 또 지물(指物)을 만드는 사람, 매우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씩씩하게 일하고 있다. 인상을 보았다. 보아서는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각각 마스크를 쓰고 위생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즉각 깨달았다.
제2공장으로 안내받았다. 이곳도 분주하고 게다가 속도감 있는 느낌이 충분히 발휘되고 있었다. 열심이다. 모두 우리들의 견학을 돌아보지 않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과연 위를 올려다보자 멋진 작품을 출품했었기 때문에 상장이 많이 걸려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자 뿐만 아니라 외부로 출장해서 일하고 있는 자도 있지만,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두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즐거움도 있고 희망도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그러고 어떤 정도까지 생각해보면 일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비록 어느 정도나마 과거의 죄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해석에 따라서는 정숙하게 침묵 속에 일하고 있는 편이 고통을 참는데 다행스러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입소 전의 무직자가 새로운 일이 주어져 배우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는 직업지도 및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사회에 다시 나가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각각 자기의 취미나 적성에 따라 일이 주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됐다. 물론 설비의 완전은 점점 그 방향으로, 그 요구대로 진전되리라고 생각된다.
현재 모든 직업을 채택해 그 적성에 맞게 지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만족하고 있는 일에 취업할 수 있게 된다.
공장에서 감방으로 이동했다. 혼거라고 하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확실했지만, 거실에는 각각 깨끗하게 의복이 정리돼 있었고, 청소도 잘 돼 있었다. 혼거함에 따른 불결함을 가능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각 거실의 입구는 엄중하다. 착 들러붙어 있는 금속도구를 보면 마치 냉장고처럼 느껴졌다. 모두 하얀색으로 둘러싸여 밝은 광선이 가득 들어왔다. 누구든지 실내의 색에 따라 심경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들은 항상 하얀색에 작용 받아서, 어떤 자는 그에 따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반성할 것이다.
취사장을 보았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우리들의 식욕을 자극한 것을 말하고 싶다. 대두(大豆) 중심의 도시락과 야채의 부산물을 잔뜩 쌓아, 많이 늘어놓아 있었다. 이전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는 쌀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허락되는 범위에서 음식물은 영양 가치가 있는 것을 채용하고 있다.
현재나 일반사회에서 인구 문제와 관련해 먹을 것이 하나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동시에 날마다의 생활에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서는 칼로리를 표준으로 여러 가지 것을 혼합해 영양 가치에는 어떤 부족함이 없는 것처럼 급여하고 있다. 분명히 영양 가치가 있는 것을 섭취한다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은 틀림없이 백미를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단지 습관에 의해서일지도 모르지만, 백미로 성장한 자만이 백미를 사랑한다. 이것도 요컨데 우리들이 어린 시절부터 대두 등을 일상식으로 하지 않았던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만일 검소한 식사로 성장한 자였다면 오히려 기뻐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일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맛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안내받으면, 우선 이 내부의 생활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일찍이 우리는 형무소를 방문할 때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엄중한 작은 통로를 딱 1번 통과했다. 그때 그들의 세계에 어떤 특종의 느낌을 느꼈다. 어쩌면 아마도 커다란 문이 열려 안으로 자동차라도 들어갈 것 같은 것을 상상해 본다면 틀림없이 큰 공장 정도로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가능한 만큼의 넓은 범위의 물건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어느 것이나 아름답다. 그 가운데에는 훌륭한 예술품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기뻤다. 우리들이 본 그들의 몇 사람인가가 이 아름다움을 표현했을 때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이 비록 어느 정도라도 부드러워졌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필경 이 아름다움에 그는 모든 열정을 바쳤을 것이다. 우리들조차 그 작품에는 매혹됐을 정도였기 때문에.
이것으로 견학이 끝났다. 설명과 현장을 다시 돌이켜보았을 때 인간이기 때문에 해야 할 가장 곤란한 교화사업의 하나로 형무소의 기본 체면을 세워 다시 선량한 사회인으로 교화해서 세상에 내보낸다고 하는 것에 아마도 열심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우리들의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였다. 그리고 특히 그들은 인격적으로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음에 따라 한층 더 모든 방면에서 연구된 시설 및 교양에 의해 교화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형무소는 그 자체로 특별한 종류의 교화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방법에 따라 실로 합리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교육이 연구돼 점차 발달한 교육 방법이 실시되고 있는 것처럼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교화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깊이 주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의 형무소의 시설이 이 목적에 완전히 적합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그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결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동반해 우리 또한 헛되이 형무소의 교화만에 일임할 것은 아니다. 서로 도와주거나 연구해 그들의 교화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이 사려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교화됐던 자도 사회에 나가서 다시 범죄인이 되는 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는 각종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또한 우리들의 책임도 있다. 만일 우리들이 인간으로서 출소하는 그들의 심경을 살피게 되면 틀림없이 거기에는 고려해야 할 많은 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도 사회인으로서 출소자에 대해서 적어도 형무소와 같은 정도의 동정과 지도를 가질 의무가 있다. 또한 형무소로서는 가능한 한 그들과 접촉해서 그들의 후회를 들어주는 사람이 돼, 위안자가 돼 양심의 싹을 틔우게 하고 성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충분한 견학이나 조사를 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정말로 겉보기로부터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의 단체생활에 대한 훈련 및 설비는 눈에 잘 띄었지만 이 개인적 교화 지도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는 충분히 견학할 수 없었다. 또 이것은 견학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수형자들과 상시 접촉하는 자에게만 알려져야 할 특이성의 것이다. 인격의 접촉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만큼 형무소장을 비롯해 직원의 책임이 큰 것을 느꼈다.
3. 천장절 식후(式後)의 감상록
415호 今原常郞(가명)
시간은 흘러, 세상은 변하고, 어제는 소 내에서 여덟 번째 천장절을 맞이했다. 감개무량한 것이 있다. 점점 더 발전해 가는 우리는 죽(竹)의 원생(園生). 이는 우리 제국민(帝國民)의 크나큰 기쁨이다. 당일 교회당은 적백(赤白)의 휘장으로 사방을 장식하고 중앙에 한 단 더 높게 “근봉축천장절(謹奉祝天長節)”의 글씨가 선명하게 걸려 있고, 좌우로 대나무, 학, 사해춘풍(四海春風)의 오뚝이 족자도 한층 더 오늘의 기쁨을 축하하는 것처럼 왼쪽 입구에 걸려진 채 아침 햇빛이 밝게 파도치는 액자, 전방 단상 좌우는 식나무(靑木), 난(蘭), 만년청(萬年靑), 선인장 등의 분재식물에 의해 장식되고, 후방에 세워진 각지 명소 고적(古蹟)의 그림엽서를 사이에 두고 그림엽서대(臺)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당당하게 넘칠 정도로 가득 차 있다. 재소자 입당 착석, 직원 입장, 잠시 후 소장님의 입장식이 시작됐다. 축음기에 따라 국가를 연주하고 마지막에 멀리 동방황거(東方皇居, 일왕이 있는 쪽을 향해 예절을 갖추는 것)를 향해 경례하고 폐하의 만세와 국토의 무궁을 기원하며 엄숙한 천장절의 식은 종료됐다. 황실을 받들고, 부모, 형제에 대해 열성적인 소장님의 훈시가 있었다. 재소자에게는 깊은 반성과 자각을 부여하고 갱생으로 개과천선의 길을 인도하게 됐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도 소장님이 말씀한 부모의 이야기에 미치자 3두(斗)의 뜨거운 철(鐵)을 삼키는 기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훈시 후 축음기를 통해서 동요, 군대 생활, 찬불가 등을 들었다. 어릴 적을 생각하자 돌아가신 부모가 생각나고, 찬불가에 의해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회상했다. 이리하여 식은 끝났다. 자신은 그때그때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행사가 많이 있기를 바랐다. 재소자 각자가 당일을 돌이켜보았을 때 누군가 자신을 되돌아보아 과거를 회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보냐. 개과천선에 뜻을 두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형무소란 죄인을 양성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 일부의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자신은 자기 일개 한 사람을 주체로 해서 생각해보건대 입소 전의 자신, 그때는 공허와 허영으로 가득 차 무가치한 인간이었다. 하루아침에 입소의 몸이 돼 남들만큼 약했던 의지가 강해지고 허영이 내실이 돼 인내의 덕을 알고 직업의 귀함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잔형기 1년 4개월여를 남기고 출소의 광명을 보게 된 것은 보통 일이 아니고, 여러 직원분의 동정과 여러 해에 걸쳐 사사키, 류스이, 후지모토, 아사이 각 교회사의 좋은 가르침과 한 분의 아버지, 한 분의 누이의 끝없는 사랑과 격려에 의한 결과라고 항상 자신은 생각하고 있다. 입소 생활에서 얻은 느낌은 평생 자신을 격려하고 힘을 줄거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의 입소 생활에 의해 조금이나마 정신적으로 자각한 것을 기뻐한다. 가난에 처해서는 가난을 즐기고,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를 즐기며, 죽음에 처해서는 처연히 천국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신념과 심경을 배양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갱생으로, 개과천선으로, 새로운 생명을 개척하는 것은 커다란 노력이다. 노력에 의해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할 수 있다. 전화위복이 된다. 복이 돼야 한다.
① 10세를 넘긴다 해도 무엇하리, 마음의 구슬을 스스로 닦지 않는구나.
② 너를 위해 조국을 위해 죽을 줄 알아야 내 소망이거니와 죄 많은 몸은,
③ 세상의 파도는 무언가 높아도 높지 않고, 참된 길을 마음 먹고 간다.
※ 천장절(天長節,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일)
〈참고 문헌〉
•부산구치소, 부산구치소 100년사, 2021년 10월 28일.
•부산형무소, 부산형무소 개황, 1931년 6월 30일(일본교정협회 도서관 소장).
•조선치형협회, 조선형무소 사진첩, 1924년 8월 15일.
•조선치형협회, 조선의 행형제도, 1938년 2월 20일.
•형무협회, 조선형무소 연혁사, 일자 미상(일본교정협회 도서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