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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밖으로 나온 우리의 ‘진짜’ 이야기

연극 <담장 밖으로>

2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한 뒤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윤성여 씨와 충주구치소 박종덕 교감의 감동적인 사연을 모티브로 삼은 연극이 지난 11월 19일과 20일 총 2회에 걸쳐 무대에 올랐다. 현직 교정공무원 3명이 극본과 연기자로 참여해 더욱 뜻깊은 우리의 ‘진짜’ 이야기, 연극 <담장 밖으로>가 그 주인공이다.

글. 강진우 사진. 이정도

연극의 발단이 된 소중한 인연

색색의 조명으로 물들었던 무대가 서서히 암전됐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슬몃슬몃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법복을 입은 청주교도소 김충호 교감이 미결수를 향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윤성여 씨를 모델로 삼은 극 중 인물 박영식과 그의 어머니의 절규와 함께 또다시 암전이 찾아왔고, 어느새 교정공무원 제복으로 갈아입은 김충호 교감이 연극의 주인공 이 교사로 변해 있었다. 극 중 교정공무원 후배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그의 옆자리에는 악질 형사 역을 맡은 여주교도소 강인호 교감이 앉아 있었는데, 만취한 연기를 어찌나 맛깔나게 하는지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원작 시나리오를 집필한 천안개방교도소 이경희 교감도 프로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한 두 교감의 연기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연극 <담장 밖으로>의 마지막 리허설 현장은 탄탄하고 감동적인 극본과 희로애락 물씬 풍기는 연기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화기애애했다.


연극 <담장 밖으로>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제8차 사건 가해자로 지목돼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2020년 12월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윤성여 씨와, 성실한 수용 생활과 일관된 이야기에서 진심을 발견한 뒤 출소 후 일자리를 알아봐 주고 재심 과정을 돕는 등 윤성여 씨를 끝까지 믿고 지원한 충주구치소 박종덕 교감의 감동적인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원작 시나리오를 쓴 이경희 교감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게 된 과정을 되새기며 입술을 뗐다.


“작년 12월 제가 교정본부에 있을 때 웹드라마 형식의 직원 교육 동영상을 기획, 제작하는 일을 맡았어요. 교정공무원들이 직접 배우로 활약하고 외부의 전문 스태프가 참여한 제법 큰 프로젝트였죠. 이때 제가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며 배웠던 극본 작성법 등을 더듬으며 교육 동영상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요. 당시 외부 스태프로 도와주신 광야의태양컴퍼니 조신후 대표님과 전단아 PD님이 극본을 보시고는 교정시설과 교정공무원을 주제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2022 서울예술지원 공모’에 제출할 극본을 써 줄 수 있냐고 제안하셨어요. 미디어에서 대부분 안 좋은 모습으로 비쳤던 교정공무원의 진면목을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박종덕 교감님과 윤성여 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기로 하고 박 교감님의 허락을 받은 뒤 교육 동영상을 제작하는 와중에 짬짬이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보내드렸죠.”

힘겨웠지만 뿌듯했던 3개월간의 전개

비록 ‘2022 서울예술지원 공모’에는 떨어졌지만, 광야의태양컴퍼니와 이경희 교감은 극을 무대에 올리기로 의기투합했다. 마침 광야의태양컴퍼니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는 극단으로 선정되면서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각각 연출가와 총괄PD로 나선 조신후 대표와 전단아 PD는 보다 생생한 연극을 위해 교정공무원이 직접 배우로 활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이경희 교감은 직원 교육 동영상에 출연했던 교정공무원들에게 출연 의사를 묻는 연락을 돌렸다. 김충호 교감과 강인호 교감은 이런 과정을 통해 연극 <담장 밖으로>에 합류할 수 있었다. 김충호 교감이 “숙원을 풀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릴 적부터 예능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개그맨, 배우 시험도 여러 번 봤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죠. 이후 교정공무원으로 입직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직원 교육 동영상에 출연하면서 오랫동안 묵혔던 꿈의 새싹이 다시 움텄습니다. 이를 계기로 연극의 주연 및 다양한 역할까지 맡게 됐으니, 저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죠. 연극 합류 소식을 들은 가족들도 ‘이제야 숨겨 놓은 끼를 펼칠 수 있겠구나’하며 열렬한 응원을 보내 줬답니다.(웃음)”


추석 직후인 9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김충호 교감과 강인호 교감은 매 주말마다 한 번씩 서울 관악구에 있는 광태소극장으로 올라와서 연출가 및 배우들과 서너 시간씩 꾸준히 연습했다. 처음 3주 정도는 연기의 기본기를 익혔고, 이후 무대에 올라 손발을 맞추며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특히 보안과 야근부 소속인 강인호 교감의 고생이 심했다.


“매주 일정하게 시간을 낼 수 없어서 근무 일정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며 최대한 연습 일정을 맞췄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날에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거나 연가를 내며 연습을 진행했는데요.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배우가 꿈이었던 아내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덕분에 빠지지 않고 연습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만큼 저도 연기에 매력을 느끼고 푹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절정을 향한 열린 결말

순탄하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과의 합은 순조롭게 맞아떨어졌다. 세 교감은 교정공무원의 일상과 수용자와의 관계, 교정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연극에 면면히 녹아들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광야의태양컴퍼니는 교정공무원과 수용자의 실질적인 모습을 관객들에게 왜곡 없이 전달하기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연극 특유의 재미와 감동을 살리기 위한 노력도 다방면으로 펼쳐졌다. 김충호 교감과 강인호 교감의 유쾌한 애드리브가 그대로 정식 대사가 되어 곳곳에 실리게 되면서 매주 대본이 수정됐고, 두 교감은 동료와 가족을 상대 역 삼아 수정된 대본을 머릿속에 업데이트했다. 이경희 교감도 대본 수정에 관여하는 동시에 때때로 간식과 함께 연습 현장을 방문하는 등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초등학생인 딸과 함께 광태소극장에 방문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요. 엄마가 쓴 대본이라고 했더니 아이가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며 칭찬도 해 주더군요. 공교롭게도 그날 김충호 교감님의 아들도 연습 현장에 왔는데,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해요.”


지난 11월 19일과 20일, 이틀에 걸쳐 2회차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세 교감과 황야의태양컴퍼니는 <담장 밖으로 시즌2>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연극은 이 교사와 박영식이 오래도록 함께하며 굳은 믿음을 형성해 가는 과정까지를 다뤘다. 출소 후 재심까지 이어지는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인 셈. 재미와 감동의 농도를 한층 진하게 만들기 위해 선택한 길인 만큼, 세 사람은 앞으로 펼쳐질 새 시즌 연극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제 막 올라온 이들의 ‘연극 꽃봉오리’는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피어나게 될까. 그 향기로운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강인호 교감
김충호 교감
이경희 교감
전단아 PD
MINI INTERVIEW
우리의 담장 밖 여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교정공무원 분들과 수용자와의 관계, 수용 시설의 일상을 왜곡 없이 보여주고 박종덕 교감님과 윤성여 씨의 관계를 잘 전달하면서도 관객들이 무겁지 않게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출하기 위해 힘썼는데요. 세 교감님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덕분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앞으로의 시즌 진행을 위해 세 교감님은 물론 더 많은 교정공무원 분들이 함께해 주신다면, <담장 밖으로>는 더욱 성공적인 연극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광야의태양컴퍼니 조신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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