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매일 오후 두 시가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가 있다. 그 시간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지 않았더라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SBS 파워FM <두시 탈출 컬투쇼>라는 프로그램 제목을 접했을 것이다. 김태균이 <두시 탈출 컬투쇼>의 진행을 맡아온 지도 어느덧 18년이 흘렀다. 개그 듀오 ‘컬투’로 오랜 기간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정찬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2018년에 방송활동을 전면 중단하면서 라디오 진행도 내려놨지만, 여전히 시계가 오후 두 시를 가리키면 라디오에서 김태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찬우가 하차한 초반에는 프로그램의 지속 여부를 우려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김태균이 함께하는 <두시 탈출 컬투쇼>는 여전히 순항 중이다.
“라디오는 오랫동안 계속해왔던 방송이라 변화한 환경에도 금방 적응되더라고요. 물론 어떤 분들은 ‘둘이 할 때가 나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아무래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프로그램 타이틀에 ‘컬투’가 있지만, 돌아보면 방송의 주인공은 컬투가 아닌 청취자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6년 5월에 라디오 첫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스튜디오에 청취자를 직접 초대한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컬투의 자유분방하고 신선한 진행은 금세 청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방송 시작 1년 만에 전체 라디오 청취율 1위에 올랐고, 이후로도 10년 넘게 1위 자리를 지켰다. 오랜 기간 방송해온 만큼 프로그램을 매개로 끈끈하게 쌓인 정과 추억도 무시할 수 없다. 세월을 함께한 청취자들은 웃음만이 아니라 위로도 라디오를 통해 함께 얻는다.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던 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던 중 들려오는 ‘컬투쇼’를 듣고 웃고 있는 자신을 보고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 상담받으러 갔다가 의사로부터 ‘컬투쇼’를 들어보라고 권유받았다며 우울증 치료 후기를 전해오기도 한다. 이제 라디오는 단순한 일이 아닌 그의 삶이다.
그저 즐기며 살아가면 되는 인생인 것을
인생에서 변화는 숙명이다. 김태균 역시 1994년에 MBC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후 거듭되는 변화에 적응하고 위기를 극복하며 여지까지 왔다. 여섯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보험설계사로 네 남매를 키우던 중에 보증을 잘못 선 탓에 집을 날리고 일 년 가까이 여관 생활을 했던 일 등 사실 그의 성장기는 녹록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의 보루 같던 어머니 덕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았고 인간이기에 당연히 흔들리는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잘 됐다. 힘들었던 순간은 있었을지언정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지금 하는 일들도 애써 힘주지 않고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해나가려 한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얽매이지 않고 모든 일에 자연스럽게 임하려고 해요. 물론 신인 때는 잘하고 싶어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었죠. 돌아보면 욕심을 부려서 잘된 일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많은 일에 솔직하게 임해요. 어설프고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라도 오히려 사람들이 ‘신선하다’고 좋게 봐주기도 합니다.”
그 사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스튜디오에 방청객을 부를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방송가에서도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외 활동이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글을 쓸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 쓴 글을 모아 에세이집 2021년 10월에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를 냈다. 김태균이라는 개인의 기록이지만, 쉽고 편안한 문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그의 글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나이 들어가며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도 준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그 역시 시행착오를 거쳤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2014년에 작고한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태균아, 인생은 허무하도록 짧단다. 나중은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네가 좋아하는 거, 네가 뭘 하면 행복한지를 찾아서 즐기면서 살아.”
혼자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다 발견한 글쓰기의 축복. 책을 읽어줄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쉰 살을 넘어 자아 찾기에 나선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선택도 책임도 자신의 것
인생의 도전이란 마음에 커다란 희망의 불빛을 드리워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 매일 공무원처럼 출근하듯 방송국에 가는 평범한 일과가 오히려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가족들과도 별일이 없고 특별히 기쁘고 슬픈 일도 없는, “이렇게 평범해도 괜찮나” 싶은 날에 오히려 그는 즐겁다. 방송도 그런 날 더 잘 된다. 홀로서기를 하면서 소속사도 새로 만들었고, 자신의 이름을 건 공연인 <김태균쇼>도 준비 중이다.
몇 해 전, CBS 초청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했을 때 그는 자신이 감동받은 문구 하나를 소개하며 말을 시작했다. “어느 한순간도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절대로 남 탓하지 말라”는 것. 누구든 살아가며 선택의 순간에 부딪힌다. 하지만 심사숙고해서 내린 선택이 항상 좋은 길로 자신을 이끌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즈음에서 ‘책임’과 ‘노력’을 이야기한다.
“선택만 해놓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대충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도 없겠죠. 노력하면서 자신의 수준을 깨닫게 되면 오히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인데 이만큼 사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알 수도 있죠.”
이와 함께 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교정공무원들에게도 그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대인관계처럼 각자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스트레스가 있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라는 따뜻한 말을 덧붙이면서. 힘들어하고 자책하기에는 오늘은 짧고 소중하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부터 행복하기로 마음을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