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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에서 ‘기반’으로,
교정시설의 미래를 설계하다

백진 교수

교정시설은 사회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기반시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정시설을 기피시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 2016년부터 꾸준히 교정시설을 연구해 온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백진 교수는 교정시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기피’에서 ‘기반’으로 변화시키고 보다 나은 교정시설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진우 사진 김인규

국내 최초 ‘홀형 교도소’의 탄생을 뒷받침하다

지난 6월,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국군교도소에서 신축 수용동 준공식이 열렸다. 새롭게 지어진 수용동 내부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정시설과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긴 복도를 중심으로 수용거실이 죽 늘어선 전주형(Telephone pole type)이 아닌, 중앙 홀에 위치한 공용 휴게실을 중심으로 독거실과 혼거실이 빙 둘러서 배치된 홀형(Hall type) 구조로 구성된 것이 가장 큰 특징. 널찍하게 마련된 창에서는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고, 초록빛 공기정화식물이 곳곳에 설치됐다. 독거실의 비율을 76%로 크게 높인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군교도소의 드라마틱한 변화, 그 배경에는 백진 교수가 있다. 국군교도소 신축 수용동 진행을 맡은 담당자가 그에게 자문을 요청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완성된 국군교도소의 신축 수용동은 교정시설 선진국인 덴마크의 방송국에서 취재했을 정도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저는 기존의 구조적·공학적 관점에서의 건축을 넘어,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문화적 관점에서의 건축과 도시를 지향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교정시설 또한 인권 친화적이고 교정교화에 효과적인 방향으로 개선·보완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국군교도소에서 저의 이런 생각을 잘 반영해 주셔서 우리나라 최초의 선진국형 홀형 교도소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6년간 건축학도들을 가르치다가 지난 2010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부임한 백진 교수는 서울대학교 건축도시이론연구실과 건축도시연구센터의 운영 책임자이자 대한건축학회 부회장으로서 다채로운 삶의 모양을 담은 건축물과 도시를 우리나라에 널리 퍼트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철학과 연구 방향은 그를 자연스럽게 교정시설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꾸준한 연구로 깨달은 교정시설의 중요성

그 또한 여느 사람들과 같이 교정시설과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2016년, 교정본부의 한 교정공무원이 백진 교수를 찾았다. 교정시설의 지속적인 개선·보완을 위해 전미교정협회(ACA·American Correctional Association)에서 발간한 교정시설 설계 가이드라인을 번역하고 있는데, 그에게 감수를 부탁한 것이다. 제안을 받아들인 뒤 내용을 살펴보며,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나 중요한 교정시설을 살펴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보통 사람들은 교도소에 갈 일이 없는 데다가 대부분 도시 외곽으로 옮겨져 있기에 교정시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계기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때마침 교정시설 설계 가이드라인 감수를 맡게 되면서 교정시설이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한 기반시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사람들은 막연하게 교정시설을 기피시설로 취급하지만, 교정시설이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 중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질 겁니다.”
이후 백진 교수는 지금껏 꾸준히 교정시설에 대해 연구해 왔다. 미국·일본·덴마크·싱가포르 등을 다니면서 교정시설을 직접 견학하고 교정시설을 설계한 건축가들을 인터뷰했다. 법무부·교정본부와도 끊임없이 교감하며 보다 바람직한 교정시설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교정시설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은 물론, 교정시설에 붙은 ‘기피’라는 단어를 ‘기반’이라는 말로 바꾸는 활동도 함께 펼치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는 도시의 깨끗하고 편안하고 건강한 요소들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강해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반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시설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려 하죠. 이 때문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심하면 지역 이기주의까지 발생하기도 합니다.”
반면 17세기의 베니스는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산마르코항 연안에서 베니스를 조망하면 화폐 주조장·인문 도서관·산마르코광장·산마르코성당·사법기관 등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교도소도 도심의 풍경에 포함돼 있었다. 죄를 저지르면 교도소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내보임으로써 인생을 한층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여러 모양의 사회 구성원들을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삶의 일부로서의 교정시설’을 향한 노력

교정시설을 우리 사회의 주요 기반시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사법적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특히 미결수가 모여 있는 구치소는 수용자들이 수시로 조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기에 검찰·법원 등의 사법기관과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이 합리적이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서울 송파구 법조타운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덕분에 미결수들이 지하 통로로 법원과 검찰청을 오가며 효율적으로 조사와 재판을 받는다. 백진 교수가 ‘삶의 일부로서의 교정시설’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동부구치소를 꼽는 이유다.
“한편 교정시설의 질을 꾸준히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수용자에게 있어 교정시설은 곧 주거시설입니다. 24시간 내내 한정된 공간에서 먹고 생활하고 자는데, 이런 공간이 불편하고 생활하기 힘들면 반발심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또 혼거실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면 그 안에서 위계질서가 생기고, 출소 후 함께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결 쉽죠. 반면 독거실이 늘어나는 등 교정시설의 환경이 좋아지면 교정교화 효과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를 증명하는 국내외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교정교화의 효과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사회의 안전도와 효율성,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따라서 교정시설의 질적 개선은 교정시설 밖에 있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백진 교수는 현재 건설 중인 화성여자교도소 설계 자문 시 교정시설의 질적 향상을 위한 내용을 다수 전달했다. 덕분에 보행로와 차로의 입구 및 동선 분리·독거실 비율 향상·양육유아실 배치·수용자 입출소 영역과 의료 영역의 근접 배치·독립성이 보장된 직원 휴게실 등을 적용한 한층 진보된 형태의 교도소가 지어지고 있다. 백진 교수는 이러한 교정시설의 질적 개선 노력과 동시에, 강의·저서 출간 등을 통해 교정시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데에도 힘쓸 계획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실하게 교정시설의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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