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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거나 자극적이거나,
연애 리얼리티의 두 경향

쏟아져 나오는 연애 리얼리티, 어떻게 봐야 할까

현 예능 트렌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건 단연 연애 리얼리티다. 올해만 해도 스무 편 이상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연애 리얼리티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많아졌고, 거기에 담긴 경향들은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정덕현 문화평론가

ⓒ NETFLIX

연애 리얼리티의 자극과 판타지 사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솔로지옥>, SBS플러스 <나는 솔로>, iHQ <에덴>,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MBN <돌싱글즈>, KBS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웨이브 오리지널 <남의 연애>, <메리퀴어>, tvN <각자의 본능대로> 등등. 작년부터 올해까지 예능계를 강타하고 있는 하나의 트렌드를 이야기하라면 당연히 ‘연애 리얼리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흐름을 만들어낸 걸까.
‘연애 리얼리티’라는 트렌드에서 주목해야 할 건 ‘연애’가 아니라 ‘리얼리티’다. 즉 이 예능 트렌드는 최근 드디어 우리에게도 본격화된 일반인 출연 리얼리티 쇼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일반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자극적인 리얼리티 쇼가 일상화됐지만, 우리에게는 그 정서적 반감 때문에 20년에 걸쳐 이 새로운 방송의 경향이 정착돼 왔다. 연예인들이나 그 가족들이 출연하며 이른바 ‘관찰카메라’라고 우회적인 표현을 써가며 조금씩 들어온 리얼리티 쇼가 최근 들어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연애’라는 소재가 그나마 보다 대중들을 보편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현재 연애 리얼리티의 전성기가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극적인 일반인의 내밀한 사적 일상을 ‘연애 매칭’ 방식으로 처음 담아낸 건 SBS <짝>이었다. 이른바 ‘애정촌’이라는 공간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연애 양상을 관찰해 담아낸 <짝>은 워낙 자극적이어서 초반만 해도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포장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고, 뜨겁게 관심이 달궈지는 와중에 출연자 자살이라는 사건을 맞이하며 종영하게 됐다. 리얼리티 쇼의 자극이 어떤 결과로까지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그 후 연애 리얼리티의 명맥은 끊기는 듯싶었지만 그 흐름은 지상파보다는 수위와 표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종편에서 이어졌다. 채널A <하트시그널>이 그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자극적인 리얼에 초점이 맞춰지던 연애 리얼리티에서 <하트시그널>은 마치 현실판 멜로드라마 같은 판타지로 초점을 바꿨다. 연예인 같은 외모의 일반인 출연자들이 한 공간에서 일정 기간 함께 지내며 만들어내는 관계와 심리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냄으로써 ‘과몰입’을 유발하는 연애 리얼리티의 새 장을 열었다. 즉 <짝>에서 <하트시그널>로 이어지면서 연애 리얼리티는 극단적인 두 경향을 드러낸 것이었다. 자극적인 리얼에 초점을 맞추거나 혹은 달달한 판타지를 그려냈다.

ⓒ iHQ

눈 혹은 심장, 연애 리얼리티 무엇을 조준할 것인가

최근 들어 연애 리얼리티는 그 수위나 표현의 강도가 높아졌다. 관능적인 몸을 노골적으로 담아내기도 하고, 심지어 남녀가 함께 침실에 들어가 있는 그 사적 시간들까지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서구의 일반인 리얼리티 쇼의 자극 수위에 점점 근접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솔로지옥>은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연애를 엿보는 프로그램으로 ‘한국판 <투핫>’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잘 관리된 몸을 가진 남녀의 모습을 담아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바 있다. 선택받은 남녀가 이른바 ‘천국도’라 불리는 곳으로 가서 둘만의 천국 같은 밤을 보내는 광경도 담았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수위에도 <솔로지옥>은 관능적인 모습만이 아닌 인물 간의 감정에 집중함으로써 <하트시그널>이 보여준 멜로드라마 같은 감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올여름에 방영됐던 iHQ <에덴>의 경우, 감성보다는 관음증적인 자극에 맞춰진 서구의 리얼리티 쇼를 방불케 하는 수위를 보여줬다. 첫 등장부터 수영복을 입고 자기소개를 하고, 스킨십을 유발하는 게임을 하며, 남녀가 한 방에서 잠을 자는 이른바 ‘베드 데이트’를 기본 룰로 세웠다. 물론 그렇다고 그 이상의 수위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관음증을 자극하는 이러한 시도는 연애 리얼리티의 자극점을 한껏 상향시켜 놓은 것만은 분명했다. 온전히 성적 매력이라는 본능에 더 초점이 맞춰진 연애 리얼리티인 <에덴>은 그간 자제되던 어떤 금기를 슬쩍 넘어선 점이 있었다.
반면 <환승연애> 같은 연애 리얼리티는 <에덴>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즉 자극적인 설정을 가져오면서도 연애 감성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 헤어진 연인이 한 공간에서 지내며 새로운 인연과 과거의 인연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나가는 이 프로그램은 그 설정은 자극적이었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지극히 감성적이었다. 마치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차태현)가 그녀(전지현)와 헤어지면서 앞으로 만날 사람에게 전 연인을 소개하는 듯한 애틋한 감정들이 담긴 연애 리얼리티였다.
연애 리얼리티가 최근 닫아뒀던 봉인을 풀어내고 수위도 높아진 건 OTT나 케이블, 종편 같은 지상파 바깥으로 생겨난 다매체 환경의 영향이 크다. 이들 매체들은 선택적으로 본다는 지점 때문에 표현 수위가 높아도 어느 정도 수용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리얼리티 쇼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 향후에도 연애는 물론이고 더 다양한 소재들이 시도될 전망이다. 중요한 건 연애 리얼리티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두 경향 중 어느 쪽이 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하는 점이다. 당장은 시선을 자극하는 <에덴>류의 연애 리얼리티가 더 힘을 발휘할 것 같지만 의외로 <환승연애> 같은 가슴을 흔드는 연애 리얼리티에 대한 반응이 더 뜨겁다. 게다가 이러한 감성을 자극하는 연애 리얼리티는 서구의 그것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된다. 물론 자극과 수위 문제가 남기는 많은 숙제들이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이 새로운 방송 트렌드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 볼 때다. 영화, 드라마 등에서 발견되던 멜로 감성들이 연애 리얼리티라는 새로운 지대에서도 경쟁력으로 피어나길 바란다.

ⓒ i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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