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식문화
물회
차가운 음식을 즐기기로 소문난 한국에서는 물회라는 독특한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가슴이 후련하고 정수리까지 저릿저릿해지는 물회 한 사발, 게다가 단백질과 매콤 새콤한 양념까지 곁들였으니 제아무리 끈적한 무더위도 단번에 물리칠 듯하다.
글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차가운 음식을 즐기기로 소문난 한국에서는 물회라는 독특한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가슴이 후련하고 정수리까지 저릿저릿해지는 물회 한 사발, 게다가 단백질과 매콤 새콤한 양념까지 곁들였으니 제아무리 끈적한 무더위도 단번에 물리칠 듯하다.
글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회(膾)는 날고기를 저민 것을 뜻하는 말인데 따로 고기(肉)를 붙이지 않으면 생선회를 말한다. 날생선을 그저 잘라서 먹는 생선회 식문화는 세계적으로 몇몇 국가에만 국한돼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몇 개국, 그리고 이탈리아(크루도, 카르파초)와 페루(세비체), 에스키모 등이다.
천 년간 육식이 금지된 일본은 대신 생선회를 가장 많이 먹었던 까닭에, 세계적으로 생선회 문화가 퍼져나갈 때 사시미(刺身.sashimi)란 이름을 달고 나갔다. 하지만 회는 일본에서만 먹던 요리가 아니다. 인류가 불을 이용하기 전까지는 모든 육식성 재료는 회로 먹었다. 따로 부르는 이름조차 없었다. 이후 공자(孔子)나 진등(삼국지)이 회를 좋아했다는 등 중국 기록에서 약 3,000년 전부터 회(膾)에 대한 언급이 빈번히 등장하지만, 어느 순간 중국의 회와 관련한 식문화는 사라졌다.
반면 한국은 일찌감치 고려 때도 회를 생강에 곁들여 먹었다는 등 자세한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여러 가지 생선회 이야기가 언급되는 등 약 1,000년 전부터 우리 생선회 식문화가 꾸준히 유지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식적으로 일본은 에도 막부 시절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으니 약 600년 정도의 역사가 된다. 다만 일본이 1964년 도쿄 올림픽 시기에 일본 정부가 음식문화를 외국에 소개하면서 회는 일본의 대표 음식이란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구축하게 됐다. 지금도 해외 한식당에서 회를 팔 때 ‘사시미(sashimi)’라고 메뉴판에 적는다. 사시미가 회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물회는 생선회를 물에 말아 먹는 방식으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독특한 음식이다. 일본에도 물회와 같은 음식은 없다. 서늘한 육수를 자작하게 놓고 전복 회를 넣은 미즈카이(水貝) 정도가 있을 뿐이다.
물회는 어부들이 바다 한가운데 어선에서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다. 불을 피우기 어려운 뱃전에서 날생선을 잘라 물을 부어 국 대신 먹었다고 한다. 육지에서 가져온 식은 밥이나 국수를 말아 술술 들이켜 배를 채웠던 것이 별미로 진화했다.
요즘같이 더운 날 불판 앞에 앉기 싫다면 시원한 물회가 딱이다. 잘게 썬 꼬들한 생선회가 시원하고 매콤달콤한 육수 안에 웅크리고 있다. 밥이나 국수를 말아 마시듯 훌훌 비우면 식사로도 안줏거리로도 제격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동해안 지역에서 물회가 발달했다. 강원도(강릉) 방식과 경상북도(포항) 방식으로 크게 나누는데 남해안인 경남 통영과 전남 장흥, 제주 등에도 각각 고유한 물회 문화가 존재한다.
우선 강릉을 중심으로 영동권에서 먹는 물회는 광어, 도다리, 오징어 등 흰살생선과 채소를 잘게 썰어 그릇에 넣은 후 차가운 육수에 말아 먹는다. 육수는 명태나 생선 우린 것을 주로 쓰고 여기다 동치미나 김칫국물을 넣기도 한다. 동해안에는 오징어 물회와 골뱅이 물회도 있다. 졸깃한 살점이 차가운 육수와 만나면 더욱 존득해지며 진한 풍미와 차진 식감을 낸다.
‘포항식’은 육수가 아닌 맹물에 말아 먹는다. 처음엔 가자미나 등푸른생선회와 밥, 채소에 양념장을 비벼 ‘회밥’이나 ‘무침회’로 먹다가 얼음물을 부어 물회로 먹는 방식이다. 자칫 비릴 수 있는 등푸른생선을 많이 쓰는 것도 포항식, 그중에 ‘북부시장식’ 물회의 특징이다. 청어와 꽁치, 전어, 멸치, 숭어 등 등푸른생선을 주로 쓴다. 막회에 물을 붓는다 생각하면 된다.
제주에선 자리돔이나 한치를 물회로 즐기는데, 아세트산(빙초산)을 넣어 먹는 시큼하게 먹는 것이 특징이다. 테이블마다 빙초산 병이 올라가 있다. 된장 베이스인 자리물회는 제주 사람들의 여름철 별미다. 여름엔 성게를 넣기도 한다. 전남 장흥에선 구수한 된장 베이스의 된장물회를 먹는다. 초고추장처럼 자극적이지 않다. 감칠맛이 졸깃한 생선살에 배어든다. 생선살 대신 한우를 넣은 한우물회 역시 장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이다.
경남 통영은 앞바다에서 주로 양식하는 멍게(우렁쉥이)나 굴 물회를 즐기는 것이 유별나다. 전남 고흥에도 겨울철 잡은 굴을 살짝 삶았다가 멀건 국물에 넣고 떠먹는 피굴이 유명한데 이것도 거의 물회라 할 수 있다.
어부들의 식사 대용이었지만 요즘은 물회가 굉장히 화려해졌다. 일반적인 생선살 말고도 멍게, 성게, 전복 등이 들어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방 약초를 달였다는 육수를 슬러시 형태로 만들어 부어주는 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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