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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사랑을 싣고

홍성교도소 교위 정우성

너무나 평온하고 지루했던 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새침데기 딸이 갑자기 자전거가 타고 싶다 합니다. 아내는 “여자아이라 넘어져 흉터라도 생기면 안 된다고, 요즘같이 차도 많고 위험천만한 세상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자기도 부모님이 그런 이유로 못 타게 했고, 지금까지 타지 않았기 때문에 무사했다며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하는 수 없이 딸에게 조심스레 물어보니, 저를 화장실로 부릅니다. 무슨 큰 비밀인 듯 “아빠, 나는 자신감이 너무 부족해서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세상에서 자전거가 제일 어려워 보이더라. 이것만 성공하면, 나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 그리고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줘” 그리고 “꼭이야”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내뱉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빠는 ‘자식의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과 같은 아빠’라 했습니다. 어떻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 자신감을 찾고 싶다는데, 발 벗고 도와주지 않을 아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기꺼이 그 바람이 되기로 굳게 결심합니다. 그리고 아내와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평온하고 지루한 삶을 스릴러의 삶으로 바꿔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부부싸움 같습니다. 게다가 부부싸움같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맘고생이 최고란 말입니다. 치열했던 1주일간의 부부싸움은 저의 살을 3kg 베어주고, 딸의 자전거를 취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자전거 연습, 저는 딸아이에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으니, 되든 안 되든 10일만 연습해보자 했습니다. 사실 운동신경이 없고 겁도 많은 딸의 성격으로 봤을 때는 많이 부족해 보이긴 합니다. 첫날부터 엉망진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전거 페달에 두발을 올리는 것조차도 못하고 있으니 말 다했습니다. 게다가 뒤에서 자전거를 꽉 붙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신 “아빠? 꽉 잡고 있지? 잡고 있지? 놓으면 안 돼? 절대 놓지 마”를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어쩌다 이런 아빠가 됐을까요? ‘내가 이렇게까지 딸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아빠였었나?’ 하는 자괴감까지 밀려옵니다. 문뜩 지금이 그 믿음을 쌓을 기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신뢰도 쌓고, 자신감까지 선물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내와 딸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립니다. 딸은 약간 까진 무릎을 움켜쥐고서는 아프다고 흘리고, 아내는 빨간약을 발라주며 흘리고는 검은 눈동자 10%, 흰 눈동자 90%의 눈을 하고서는 저를 뚫어져라 쏘아봅니다. 신뢰와 자신감은 그리 쉽게 얻지 못하나 봅니다. 예상대로 저의 저녁은 반전 없는 악몽 같은 스릴러의 하루로 마감하게 됩니다.

며칠 후, 다시 시작된 자전거 연습. 이제부터는 제법 페달은 굴립니다만,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없어 보입니다. “균형을 못 잡겠다. 앞에 큰 돌이 있다. 길이 너무 넓다. 갑자기 경적이 들려 놀랬다. 반대쪽에서 개가 온다. 심지어는 뒤에서 개가 온다” 등등…. 무엇이든 갖다 대기만 하면 핑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겁이 많은 것이 저를 쏙 빼닮았다는 것입니다. 9일째 되는 날, 잘되지 않는다며 울먹이는 딸을 보니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옵니다. 한참을 다독여주며 내일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자 하고 치킨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치킨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10일째,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지금까지 힘든 것을 따지자면 어쩌면 딸보다 제가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딸에게 자신감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에 큰맘 먹고 속임수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딸이 아빠는 어떤 방법으로 자전거를 배웠냐고 묻습니다.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전거는 가까운 땅만 보면 절대로 못 탄다. 중요한 것은 조금 멀리 보며 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단다.” 사실 군산교도소에서 근무하신 배기환 계장님께서 제게 알려주신 멘트인데, 처음부터 알려주면 인생의 깊은 맛을 깨우치지 못할 것 같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물어보다니, 안 물어봤으면 무척 서운했을 법했습니다. 아무튼 딸에겐 별다른 감흥은 없어 보이긴 했습니다만, 이번만큼은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입니다.

“세진아, 이번이 마지막이니 힘차게 페달을 밟아볼까?” 아빠와 딸이 동시에 깊게 숨을 들이켭니다. 여전히 딸은 “아빠, 절대 손 놓지 마”하며 힘차게 페달을 밟고 나갑니다. “응. 절대로 걱정하지 마. 아빠 절대로 안 놔”하고 잡고 가던 손을 살짝 놓았습니다. 이번에는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잡는 척하며 “그래! 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 달려”하고 뛰었습니다. 점점 숨이 차올라 멈췄습니다. 멀리 페달을 굴리며 가는 딸이 작아지며 흐릿하게 번져 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름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 딸, 잘한다. 야호~ 해 냈다~”하고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새침데기 둘째 딸, 이제는 제 품에 둘도 없는 애교쟁이가 되어 안겨 있습니다. 그날 저녁, 자전거 탄 기념으로 치킨을 먹는데, 아내가 딸의 자전거 탄 동영상을 보더니 자기도 타고 싶다며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헐~! 운전도 다른 사람은 가르쳐도, 가족끼리는 가르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지 않던가? 딸의 자전거 연습으로 제법 살이 빠진 저를 보더니 이번 기회에 아내가 다이어트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까요? 이러다 부부싸움 제대로 한판 할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해 옵니다. 자전거 연습이 끝나면 다시 평온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복귀하나 했는데, 아내가 그 틈을 주지 않습니다. 최대한 인내하며 사랑으로 가르쳐 보겠습니다. 언젠가 가족 모두가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 하이킹을 떠나는 그날을 꿈꾸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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