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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쏟아진 칸 영화제의 관심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미 칸 영화제에서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주목 받았던 박찬욱 감독은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이번에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그만큼 이전부터 칸의 총애를 받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어 박찬욱 감독의 수상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헤어질 결심>이 황금종려상이 아닌 감독상을 받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외신들이 쏟아질 정도였다.
산 정상에서 변사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로맨스 멜로물로 고전 형사물을 가져와 그 안에 드라마적 기법으로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러브스토리를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영화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이 작품을 ‘마치 히치콕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든 히치콕 스타일 영화 같다’고 표현했는데, 멜로물에 이런 평가가 나온 건 박찬욱 감독 특유의 장르물을 능숙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이 이 작품에 잘 담겨져 있어서다.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브로커>는 어느 날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몰래 버렸다 다시 찾으러온 엄마 소영(이지은 분), 그 아기를 새 부모를 만나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팔려는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가 함께 여정을 떠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브로커>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일종의 ‘인신매매범’일 수 있는 이들이지만 여정을 함께 하면서 아기를 중심으로 마치 가족 같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서로를 위로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어찌 보면 범죄자지만 자세히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뜻한 인물인 상현이 사실상 이 영화의 주제이고, 그걸 복합적인 심리표현으로 담아낸 송강호의 연기가 주목된 작품이다. 이미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복수 수상이 불가한 이유 때문에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이번 수상에도 더해졌을 거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송강호의 연기는 이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상황이 됐다.
한편 비경쟁부문으로 초청된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헌트> 역시 칸에서 화제가 됐다.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평호(이정재 분)와 정도(정우성 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물이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된 이정재의 첫 연출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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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콘텐츠 시대, 한국영화의 달라진 위상
이미 칸 영화제는 한국영화가 가진 우수성을 여러 수상작들을 통해 드러낸 바 있다. 2002년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았고, 그 후에도 <올드보이>(심사위원 대상), <밀양>(여우주연상), <박쥐>(심사위원상), <시>(각본상), <기생충>(황금종려상)에게 상을 줬다. 그래서 이번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이나 송강호의 남우주연상은 이런 일련의 성과들이 축적되며 쌓인 한국영화에 대한 국제적인 위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수상작에는 이러한 위상만큼 하나의 도드라지는 특징이 엿보인다. 그것은 ‘다국적’ 영화라는 점이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지만 중국배우 탕웨이가 주연으로 연기했고, <브로커>는 송강호를 비롯해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이 열연한 작품이지만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 제작한 한국영화지만 감독이나 연기 부문에서 이제는 글로벌 협업이 일상적인 일이 됐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이번 칸 영화제에는 다국적 영화가 다수 등장했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올 더 피플 아일 네버 비>에서는 김선영, 오광록이 주연을 맡았지만 캄보디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데비 슈 감독이 연출한 다국적 영화다. 또 다르덴 형제 감독의 <토리와 로키타>나 알리 아바시 감독의 <성스러운 거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미래의 범죄>,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같은 작품들 모두 감독, 배우, 프로듀서 등에 여러 국가가 참여했다. 영화계에 다국적 협업의 흐름은 이미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노매드랜드>나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미나리>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시장이 이미 글로벌화 됐기에 제작 자체가 어느 로컬에 한정되지 않는 글로벌을 지향하게 됐다.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동시에 담아내거나 제작에 있어서 협업을 하는 건 해당 국가들의 대중들을 끌어들이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지향의 색깔을 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미나리>나 Apple TV+<파친코>처럼 여러 국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디아스포라(특정 민족이 자의 타의로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집단을 형성해 살아가는 것)’가 이런 변화된 환경 속에서 주요 콘텐츠 소재로 떠오른 건 그래서다.
중요한 건 이처럼 ‘글로벌 협업’으로 다국적 콘텐츠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현재 K-콘텐츠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 국가의 특성이면서 한국전쟁 이후 분단된 상황에서 서구와 전통을 빠른 속도로 결합해온 우리 문화의 특징들이 글로벌 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힘으로 작용되고 있다. 서구에서 배운 장르라는 전 세계 공통의 영상문법에 능수능란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로컬 색깔을 분명히 녹여내 차별적이고 독특한 작품. 이것이 다국적 콘텐츠 시대에 한국영화가 가진 세계적인 위상의 이유다.